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3
나는 흥미로운 존재를 발견하면 모든 것을 멈추고 그 세계에 빠져든다.
최근 3년 동안 유튜브의 몇몇 채널에 푹 빠져 살았고, 그 결과 올 한 해의 나는 이렇게 요약되었다.
경이로움을 찾는 탐구자
“기상천외한 능력을 보여주는 경이로운 콘텐츠를 좋아합니다.”
나와 잘 맞는 유형은 “모험가, 유쾌한 낙관주의자.”
어느새 화면 속에서 건네온 이 말들은 내가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되었다.
나는 자주 글을 쓰는 이유를 생각한다.
지금 쓰는 글, 쓰고 싶은 글, 마음속에서만 오래 바라보던 글들을 떠올리며 ‘나는 어떤 글로 나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 동안의 나는 유튜브가 말해준 것처럼 경이로운 세계를 찾아 헤매는 탐구자의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다.
경이로움을 발견하면 온몸으로 흡수하고, 나만의 리듬으로 되새기고, 마침내 그 본질을 글로 끌어올리는 일.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모험을 좋아하고, 유쾌한 낙관주의자와 연결되고 싶은 나의 마음도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사는 나 역시 분명 존재한다.
세금을 계산하고, 관리비를 줄이고,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철저히 현실적인 나.
그래서일까.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현실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완전히 잊지는 않더라도 그 틈 사이로 스며드는 아름다움만큼은 끝까지 붙잡고 싶어서
눈을 반쯤 감은 채 세상을 바라본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
모험을 통해 경이로움을 찾고, 본질을 끄집어내어, 결국 아름다움을 남기려 애쓰는 이 글쓰기의 방식이 나쁘지 않다.
유튜브에서 단 몇 개의 채널을 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2025년의 나를 꿰뚫어본 그 알고리즘이 왠지 모르게 고맙고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나를 누군가 정확히 불러준 것 같아서.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또 누군가는 또 다른 방식의 창작으로 세상을 표현하듯
나는 글로써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오래도록 기록하며 살아가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삶을 쓰며 살고 있는가?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덕분에, 살았습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목 [덕분에, 살았습니다]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일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