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낯선 너를 이름으로 부른다!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나 봄

by 다시봄

열두 살의 봄*


얼굴이 하얗고 재밌고 똑똑한 남자아이를 짝사랑했다. 보고만 있어도 신비한 기운을 뿜는 그는 유니콘 같았다. 유니콘을 멀리서 감상만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아이를 구박하고 때리고 못 되게 굴었다. 그는 아마 무식한 나를 싫어했을 것이다. 한편, 나를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내 세상 뒤편에 있던 그는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교생이 다 알게 떠들고 다녔다. 그 덕에 내 미움을 샀다.


고등학생이 되어 우연히 두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유니콘은 여전히 뽀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나도 너 좋아했었어.” 그후 서울로 전학을 가 보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한마디는 어린 내 가슴에 콕 박혔다. 날 짝사랑한 그는 “넌 내가 왜 싫은데?”라고 했다. 여전히 일방통행.


십 대의 봄날은 그렇게 세 뿔이 끊어진 삼각관계로 끝났다.


스물두 살의 봄*


PC통신으로 대화가 통하는 남자를 만났다. 좋은 음악과 영화를 추천해주는 다정하고 귀여운 동갑내기였다.


우리는 그가 사는 경주에서 첫만남을 하기로 약속했다.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가보는 경주였다. 얼마나 가슴이 뛰는지 소리가 들릴까 봐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한껏 기대를 하고 나갔는데 그곳엔 아주 작고 까무잡잡한 못난이 인형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외모에 살짝 실망하긴 했지만 그동안 우리가 나눴던 교감의 시간들까지 무너뜨릴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고 실망한 티가 역력했다. 그가 수없이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나 보다. 몇 날 며칠을 구웠을 음악과 영화 CD를 선물로 주면서도 주는 이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겨우 1시간 동안 경주시내를 드라이브한 후 헤어졌다. 그는 갑자기 급한 약속이 생겼다는 뻔하고 어이없는 변명을 해대며 경주역에 나를 떨구고 갔다. 못난이가 끝까지 못난 짓을 한 거다.


난생 처음으로 달리는 기차를 붙잡아 탔다. 막차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무리해서 기차를 탄 건 경주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모욕감도 수치심 때문도 아니었다. 그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밤들이, 그간의 대화가 한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돼 버린 게 너무 화가 났다. 우리는 충분히 좋은 친구였는데 적어도 나는 그랬는데 그는 예쁜 여자 친구가 필요했었나 보다.


살랑이던 마음은 그렇게 기차와 함께 떠났다.


서른두 살의 봄*


방송작가 일을 잠시 접고 취재원이 있는 태안으로 갔다. 태안 기름 유출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던 때였다. 그곳에서 한 달간 자원봉사를 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스물두 살의 못난이와는 다르게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작가와 취재원으로 통화할 때는 나이 많은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숨이 멎는 줄 알았다고… 내 말이 아니라 그 남자는 날 보자마자 정말 그렇게 말했다.


아이처럼 나만 졸졸 쫓아다니는 그는 애송이였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고백을 했다. 꽃게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려주고, 자원봉사를 하러 바다에 나가면 내 옆에 꼭 붙어서 땀을 닦아주고, 노래방에서 내 눈을 보며 ‘누난 내 여자니까’를 부르고, 생일에 책 선물을 해줬더니 자기가 꿈꾸던 이상형이라며 들이댔다. 내가 좋다는 사람에게 당연히 신경이 쓰였고 그러다 보니 그를 다시 보게 됐고 결국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게 마지막 봄날이 될 줄 그땐 몰랐다.


마흔두 살의 봄*


열한살 연하, 모델처럼 큰 키, 잘생긴 얼굴을 한 남자가 애프터 신청을 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마흔이 넘어서 그렇게 젊은 남자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알고보니 결혼한지 6개월만에 이혼을 한 돌싱이었고, 소문난 바람둥이였다. 자기를 보고 안 좋아하는 여자가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며 양다리 삼다리 열다리도 걸치고 다니는 문어발이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나 만날 것이지 왜 나이많은 노처녀 가슴에 불을 지르고 간 건지… 나쁜 놈!


황당한 썸은 그렇게 불씨만 흩뿌린 채 사라졌다.



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봄에는 낯선 너를 이름으로 부른다.
봄은 지나가는 풍경을 붙잡는 멈춤의 순간이다.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봄날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내게 온 사랑은 자주 엇나가고 엉뚱하고 어색하고 이불킥의 주범이 되기도 했지만 더할 나위없이 따뜻했고 특별했고 가슴을 울렸다. 그래서 봄은 내게 상처로 남지 않았다.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추억선물세트가 됐다.


겨울을 견뎠기에 이 더 빛나는 것처럼 다가올 봄날도 그렇게 ‘반짝’ 하길!



알록달록 글씨는 ‘모두맑음’ 작가님 따라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