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처는 이번이 마지막이길…
마지막 연인과 헤어진 후로 이렇게 서럽게 운 건 처음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우는데, 가끔은 그들의 눈물을 보고 따라 울기는 했지만 내 삶에서 울 일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울 일이 많았다면 내가 더 단단해졌을까?
회사에 입사한 지 10개월.
그동안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많았지만 꾹꾹 참아왔다. 나름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는 사실이 이런 데서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 억울해도 괜찮은 척, 일이 많아도 다 해낼 수 있는 척했다. 그 모든 게 차곡차곡 쌓였었나 보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시스템에서 뒤처리 전담반처럼 쓰레기만 치우고 있다 보니 갖은 욕은 다 먹고 그러면서도 웃어야 하는 게 참 힘들었다. 온전히 내 실책이라면 확실히 사과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겠지만, 고객사와 협력사 중간에 끼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감당해내야 하는 건 정말 못할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원래 그런 거야. 싫은 소리 들어도 한 귀로 흘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계속 싫은 소리 듣고 들을 때마다 잊으라는 얘기인데,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그야말로 넉다운이 된다.
전혀 힘든 티 내지 않던 내가 고객사 담당자와 통화를 끊고 울음을 터트렸다.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동안 여러 번 문제점에 대해 부당함을 토로했는데도 한 귀로 듣고 흘렸던 부장도 긴장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부장이 고객사와 협력사에 전화해 미팅을 소집했다. 협력사의 납기 지연으로 고객사에 납기를 지연시킨 일이므로 우리 회사의 잘못임이 명확했지만 담당자의 무시와 갑질이 도를 넘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만큼은 담당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업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었던 것까지 솔직하게 말했다.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방향성을 고민해 보자며, 감정만 앞세운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는 초콜릿을 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협력사 대표와 실무자들과는 대대적으로 미팅을 했다. 그동안 안일하게 대응했던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납기 지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루아침에 바뀔 시스템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문제를 직시했으니 어느 정도는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모든 미팅이 끝나고 나니 머리가 띵했다. 하루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일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면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명분까지는 아니어도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어야 일을 계속할 수가 있다. 변화되지 않을 시스템이라고 뒷짐 지고 아등바등하기만 했다면 계속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변화의 불씨를 당겼으니 희망이 생긴다. 희망과 함께 업무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놓치고 있던 반복된 실수를 체크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할 일을 찾고, 언제든 스트레스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울었다는 게 회사 내에 소문나자 각 팀의 팀장들이 “많이 힘들지?” 라며 위로했다.
맡고 있는 파트가 유독 까다롭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다면서… 타인의 위로가 익숙하지 않은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그 말 한마디가 힘이 됐다. 최악의 상황이 오히려 변화의 기회가 됐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이지만 나아갔으니 다행인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