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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tman Jun 01. 2020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11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11 투우 경기



누구에게나 시간이 공평하게 흘러가듯, 이 순례자길의 여정도 공평하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다 똑같이 걸어내야하고,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다 똑같이 맞아야 한다. 버스나 택시를 타는 편법을 쓰지 않는한 목적지에 당도하는 시간도 사실 다 비슷비슷하다. 물론 몇시간, 며칠의 시간차가 생기겠지만, 전 여정을 고려하면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그러니 두 다리를 가지고 걸어가는 이 길을 빨리 걷는들, 느리게 걷는들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같은 길이고 같은 시간이지만, 누구에게는 힘겨움의 연속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쁨의 연속이다. 그건 오직 내 몸과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무언가에 현혹되어 있으면 이 길에서 마주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내 몸을 잘 관리하고, 마음 속 짐들을 잘 정리하거나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 무언가를 맞아들일 공간이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길이 모두에게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오늘 내가 가진 불만이 과연 누구를 탓할 문제인지를 먼저 생각해본다. 내 마음가짐, 내 몸의 상태가 나쁜건 아닌지. 길이 너무 험하다고 불평하기 이전에, 운동부족으로 체력이 약해져 있는 건 아닌지. 왜 이리 지루하게 똑같은 풍경만 보이냐고 불평하기 이전에, 눈을 돌려 하늘을, 그리고 푸른 나무색의 미묘한 차이를 주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 아닌지를. 그렇게 나를, 내 안을 살펴볼 일이다. 공평하게 주어진 이 길에 대한 불평 대신, 난 내 안의 불만과 불평, 그리고 불안을 살핀다.

오늘은 12킬로만 걷기로 했다. 숙소의 위치를 고려해서 걸을 거리를 정하기에, 더 걷고 싶어도 다음 숙소가 너무 멀면 그날은 조금 덜 걷고 쉬면서 여유있게 마을 구경을 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다음 숙소가 있는 곳까지는 15킬로는 더 가야하니, 오늘은 그냥 반나절만 걷고 오후에는 푹 쉬어야겠다. 그리 먼거리가 아니니, 산을 오르는 길이라고 해도 5시간 정도면 도착할 거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는데, 시작부터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걷다보면 크고작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어제의 그런 선택들이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이끈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은 앞뒤 선택의 연결고리가 된다. 그러니 한번의 선택이라고 해도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도 있다. 양갈래길에서 선택해야할 때가 많다. 오늘도 그런 이정표 앞에 섰다. 짧지만 힘든 길과 마을을 거쳐 돌아가는 조금 수월한 길. 조금 더 험한 길이라도 짧은 길을 선택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 길을 걸어보면 안다. 길이 짧다고, 더 빨리 도착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따라서 길을 선택할 때, 시간은 내게 그리 중요한 선택 기준이 아니다. 마침 동네 어르신 한분이 지나가다가 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내게 마을을 거쳐 조금 돌아가는, 쉽지만 더 긴 길을 권한다. 저쪽 길은 험해서 힘들거라고. 멋진 풍광을 볼 수 있긴 하지만. 


할아버지 말씀에 나는 힘들고 짧은 길을 선택했다. 짧기 때문이 아니고, 힘들지만 더 멋진 경관이 있다는 말에. 시간은 어쩌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산을 타야하니까. 얼마나 험한 산일지, 얼마나 급격한 경사를 올라야 하는지는 모른다. 쉬운 길만 선택하다보면, 작은 경사도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그런 길만 가다보면 조금 높은 산만 나와도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무조건 어려운 선택만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할 때는 두가지 마음에서다. 그 어려움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그것을 겪는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이 성장한다는 믿음. 이 길을 걸으면서 힘든 일이란 대부분 육체적인 힘겨움이다. 물론 그 육체적인 힘겨움이 극에 달하면 정신적 고통으로 전이되지만, 이 순례길에서 그 정도의 고통을 마주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한, 대부분 견딜 수 있을만큼의 고통이라는 말이다. 


쉬운 길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몸에도 마음에도 어떠한 자국을 남기지 못한다. 힘든 길을 걷노라면,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그 근육의 힘을 만들기 위해 피는 더 빨리 더 많이 흘러보내져야 한다. 그렇게 내 몸이 온전히 살아 돌아가는 느낌이 온몸에 새겨진다. 생명체로서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힘들수록 더 잘 기억되고, 또 그만큼 몸은 강건해진다.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에 짧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힘든 과정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선택한다. 

그 선택으로 인해, 오늘 12킬로를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매우 힘들게 걸었다. 높은 산을 거의 손으로 짚으며 타다시피했고,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었으며, 어깨의 통증은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산을 올랐기에 가장 높은 곳에서 한눈에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산 정상에 펼쳐진 아름다운 들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후 늦게 간신히 도착한 데바(Deba)가 더 반갑고 감사했다. 여러 산을 오르고 내리고를 하루종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오른 산.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데바 (Deba)는 연초록 바다를 온몸으로 품은, 붉은 지붕들이 촘촘히 붙어있는 해안 마을이었다. 연초록 해안가에는 형형색색의 파라솔, 알록달록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래사장과 바닷가에서 뜨거운 햇볕 아래 한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천천히 산을 내려오니, 햇볕은 여전히 뜨겁고 나도 빨리 저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벌써 오후 3시가 넘었으니, 순례자 숙소를 먼저 찾아야한다. 자세한 지도가 없어서 물어물어 찾아가야하는 상황. 바닷가 근처 경찰관 두 명이 서 있다. 


‘올라. 순례자 숙소를 찾고 있는데요. 길을 잘 몰라서요.’

‘아 그래요? 여기 지도가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혀 있던, 손때가 잔뜩 묻은 마을 지도를 꺼내 보여 주며 서툰 영어지만 친절하게 순례자 숙소가 있는 위치를 설명한다.


‘우선 바닷가 반대 방향으로 쭉 가다보면 굴다리가 나오고 그 곳을 빠져 나가서 십분쯤 큰길을 따라가면 광장이 나와요. 그리고 그 광장을 가로질러 직전해서 500미터쯤 가면 엘리베이터가 나오고...그리고…’


지도는 낡아서 잘 보이지 않았고, 그의 설명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마을 한가운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라니…잘못 들은 것 같아 두세번 되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다 알아들은 건 아니지만, 십분 넘게 최선을 다해 설명해준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그가 가르킨 방향으로 걸어간다. 광장 근처에 관광 안내소가 있다고 하니 헤깔리면 거기 가서 다시 물어보면 되겠지. 시에스타라 문을 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다보니 그의 말대로 굴다리가 나오고 조금 더 걸아가니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뻗쳐나가는 길이 여러갈래라 도통 어디가 맞는 길인지 모르겠다. 광장 근처 관광안내소 표지를 따라 찾아가보니 아니나다를까 시에스타라 문이 닫혀있고, 길거리에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 다정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제가 순례자 숙소를 찾고 있는데 혹시 어디인지 아세요?’

‘dfdfdkfjldifdielflieageefkfei’


고운 화장에 잘 손질한 은빛 머리칼, 알이 굵은 진주목걸이에 아이보리색 정장을 멋스럽게 차려입은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머금고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르키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스페인어로. 

그리고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앞서 걸어가신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돌아보며,


‘여보, 내가 이 아가씨 순례자 숙소에 데려다 주고 올테니 여기서 좀 기다리고 계시우.’

‘그래 저쪽 위로 쭉 올라가면 있는 거 알지?’

‘그럼 당연히 알지요. 내가 이 마을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그려…어서 댕겨와.’


그들이 스페인어로 나눈 대화를 짐작해본다. 분명 저런 말들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가면서 계속해서 말을 거신다.


‘어디서 왔누?’

‘꼬레아 (Corea)’

‘멀리서 왔군 그래. 얼마나 걷고 있는 거야?’

‘…’

‘그래도 이렇게 작은 마을까지 찾아오고 기특하구만. 나는 저 아래 골목에 살아. 시집와서 지금까지 50년을 살았지…’

‘…’

십여분을 걸어가면서 할머니는 쉬지 않고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표정과 몸짓으로 그녀의 말들을 알아듣는다. 내가 대답을 못해 우물쭈물하는데도 그녀는 계속에서 손녀에게 얘기하듯 말씀하신다. 광장을 가로질러 꽤 먼 곳까지 걸어왔다. 여러번 손짓으로 문앞까지 데려다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내 손을 잡고 계속 걸어가신다. 그리고 저 앞에, 경찰관 아저씨가 말해준 엘레베이터가, 정말 이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다! 


날씨는 무덥고 햇볕은 뜨겁고 양장까지 차려입은 할머니도 무척 더우실텐데 십분 넘게 나와 걷고 있다. 그만 돌아가셔도 좋다고, 여기서부터는 찾아갈 수 있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누른다. 이 마을은 한국의 달동네처럼 언덕배기에 집들이 층층히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지그재그로 나 있는 언덕 둘레길을 걸어서 돌아돌아 올라가거나,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뿅하고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구나. 참 좋은 아이디어다. 


거짓말처럼 몇초만에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할머니는 몇십미터 떨어진 건물을 가르키며 저기가 순례자 숙소라고 일러 주신다. 이런 친절 앞에, 말도 통하지 않는 분에게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좋을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니, 아무것도 아니란듯이 그저 내 두손을 꼭 잡아주신다.


‘건강하게 순례 잘 마치길 바래…’


할머니의 눈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 하지만 오늘 할머니와 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무사히 순례자 숙소에 도착했다. 


순례자 숙소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오늘 12킬로를 9시간 동안 걸었다. 거리가 잘못 표시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힘들고 먼 길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지 오래다. 빨리 샤워하고 한숨 자고 싶다. 오래된 학교 건물을 숙소로 만든 곳, 복도 곳곳엔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져 있고 몇개의 교실에는 어린이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져 있다. 교실 서너개가 순례자 숙소로 쓰이고 있었다. 공립 숙소의 경우 접수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 숙소에서 접수를 맡고 있는 60세 전후로 보이는 여성도 카톨릭 교회 봉사 단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녀는 매우 유창한 영국식 영어로 마을 지도와 몇가지 안내 자료를 건네주며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말을 덧붙인다.


‘오늘 이 마을에서 투우경기가 열려요. 관심 있으면 마을 중앙에 있는 광장 근처로 가봐요.’


투우경기라고?? 그래 여기는 스페인이지. 스페인하면, 투우사, 황소, 빨간색. 오늘 이곳에서 투우경기가 열린다니. 어쩐지, 시에스타인데도 광장 근처 몇몇 레스토랑에 단체로 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흰 바지와 흰 셔츠에 빨간 마후라. 투우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구나.


사실 너무 피곤했다. 오늘따라 발과 다리가 무지 아팠고, 지금부터 아침까지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오늘 아니면 내 평생 투우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있을까. 5시 반이라고 하니 한시간쯤 남았다. 표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오늘만 하는건지, 내일도 경기가 열리는 건지 자세한 건 아무것도 모른다. 우선 샤워를 하고 마을 아래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보자. 샤워를 마치고 짐을 대충 풀어놓고, 서둘러 마을로 내려간다. 씨에스타가 끝나서인지 아까와는 달리 사람들이 북적인다. 마을 광장에 들어서니 다들 하얀 옷에 빨간 손수건을 목에 둘렀다. 투우경기를 관람하는 이들의 복장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붙어있는 투우 경기 포스터가 눈에 띈다.   


광장 코너에 회색 플레이트 패널로 높은 담장이 쳐져 있고, 그 뒷편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고, 그들 중 몇몇은 하얀 티켓을 손에 쥐고 있다. 반대편에는 티켓 판매를 위한 작은 창구가 보이고, 그 앞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아직 매진은 아닌가보다. 나도 줄 맨 뒤로 가 선다. 운이 좋은 날이다. 스페인이라고 해도 아무데서나 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열리지도 않는다고 하니. 그래서 현지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이 경기를 보러 이 작은 마을까지 찾아왔나보다.

표를 사서 경기장 안으로 우루루 밀려 들어가니 곧 사람들로 가득찬다. 건물로 사방이 에워싸진 곳에 흙모래로 땅이 고르게 정돈되어 있고,  모래판 가장자리에는 붉은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철제 담벼락과 긴 의자가 층층히 놓여 있다. TV나 영화에서 봤던 원형 경기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래서 더 가까이 볼 수 있고 사람들의 흥분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투우경기를 제대로 본적이 없다. 스페인하면 투우경기, 스페인에서 신랑감으로 가장 인기 좋다는 투우사 정도가 생각날 뿐. 투우경기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다. 경기장 안을 가득메운 사람들. 다들 상기된 표정들이다. 경기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 테라스에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6시가 되자 악단이 연주하면서 입장한다. 보라색 셔츠에 흰바지, 그리고 빨간 손수건을 목에 둘렀다. 연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따따딴따~따따따~’ 연주에 맞춰 노래한다. 투우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다. 악단까지 자리를 잡고 앉자, 이번에는 까만 망토를 입은 15세 정도 되는 남자 아이가 까만 말을 타고 등장한다. 경기장을 몇바퀴를 돌고 모자를 벗어 청중에게 인사한다. 검은 말이 퇴장하자, 곧이어 빨간 철문이 열리고 황소가 거세게 뛰쳐나온다. 처음 등장한 투우사는 작은 키에 단단한 몸매, 하얀 피부의 미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빛 장식이 달린 빨간색 투우복이 매우 잘 어울리는 잘생긴 청년. 스페인에서 투우사가 신랑감으로 인기가 좋다는데, 작은 체구지만 온몸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군중 앞에서 이 큰 무대를 장악해야하고 동시에 소도 제압히야하니, 그 카리스마가 어디 보통이겠나.


이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소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 TV에서 본 것도, 빨간 망토를 요리조리 흔들며 소와 쇼하듯 자세를 취하는 투우사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들의 운명 같은건 생각해본 적 없다. 소가 투우장에 들어서자 마구 날뛴다. 소는 투우장에 들어오기 전 24시간 동안 깜깜한 방 안에 갇힌다.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소는 그래서 붉은 색을 보면 마구 달려드는 것이다. 투우장에는 황소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메인 투우사와 6명의 보조 투우사가 있다. 보조 투우사는 메인 투우사와의 일대일 대결 전에 황소의 힘을 빼는 역할을 한다. 그 중 두 명은 화살촉이 달린 막대를 던진다. 화살촉이 박히자 황소 등줄기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급기야 오줌을 질질 싼다. 내 몸에 소름이 돋는다. 순간 황소 등줄기의 고통이 찌릿하게 전해져 온다. 

이제 십여분의 괴롭힘을 당한 황소와 메인 투우사의 일대일 대결이다. 물레타라는 빨간 망토를 이리저리 흔들어 소를 유인하고, 황소는 공중을 향해 뿔을 들이대지만, 힘만 빠질 뿐이다. 소가 투우사를 향해 뿔을 들이미는 순간, 투우사는 뒷걸음쳐 몸을 날렵하게 뺀다. 그 순간 투우사의 신발이 벗겨져 발을 헛디디며 주춤한다. 황소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투우사를 공격한다. 황소의 뿔이 투우사 허리춤을 스쳐 지나간다. 관중의 환호성이 극에 달한다. 


눈을 뜨고 보기 어렵다. 아슬아슬 투우사와 황소의 목숨을 건 싸움이다. 보조 투우사들이 뛰어와 분홍 망토로 황급히 황소를 다른 쪽으로 유인한다. 투우사가 크게 다치진 않은 듯하다. 천천히 일어나 양쪽 신발을 벗어버리고, 다시 투우장 한복판으로 나선다. 작은 체구에 소를 꿰뚫듯한 눈빛을 지녔다. 망토 속에 감춰뒀던 검을 서서히 휘든다. 한손에 빨간 망토를, 다른 한손엔 중세시대 결투에서 쓰였을법한 검이 강렬한 태양빛에 번쩍거린다. 악단의 낮고 느린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하고, 서서히 투우사는 황소에게 빨간 망토의 마지막 유혹을 시작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날카로운 은빛 검의 형체가 사라졌다. 황소 등에 검의 손잡이만이 보일뿐. 그 긴 검이 황소의 등부터 심장까지 관통했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 황소의 무릎은 각목처럼 꺽여져 있고 곧이어 황소는 맥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어차피 투우사가 이기는 싸움이다. 소의 운명은 이미 시작부터 모두 알고 있다. 소가 죽어가는 과정을 목도하기 위해 이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열광한다. 빨간 손수건을 들어 환호하거나 한번에 검을 꽂지 못하면 야유한다. 왜 이들은 소의 죽음에 저리도 열광하는가. 


슬픈건지, 화가 나는건지, 무서운건지, 무언가 병적인 이 느낌이 매우 거북하고 불편하다. 완전히 살아있는 한 생명체가 서서히 생명을 잃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적나라에게 마주한 적이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이들에게 들키기 싶지 않다. 그래도 수백년간 내려온 그들의 전통이고 문화다. 한번 본 경기로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가슴이 먹먹해온다. 황소에 대한 연민만도, 투우사의 목숨을 건 쇼 때문만도 아니다. 인간의 병적인 집착, 인간의 잔인함을 당연하게 용인하는 현장,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을 제압하고 싶어하는 열망, 그리고 약자를 무뤂꿇리고 싶어하는 욕망, 진정한 대결이 아님에도 진짜인듯 스스로 속아버리는 군중, 비장함이 흐르는 악단의 연주. 빨간 철제문, 빨간 망토, 황소의 빨간 피, 투우사의 빨간 투우복, 모든 사람의 목에 메어진 빨간 손수건, 그리고 내가 입은 빨간 바지. 경기장에 들어서서 급하게 마신 맥주 때문인지, 이 붉은 기운 때문인지 머리가 묵직하게 아파온다.


그렇게 6마리의 소가 투우장으로 뛰쳐나와 검을 맞고 쓰러진 후, 말수레에 끌려나갔다. 빨간 투우복을 입은 투우사와 파란 투우복을 입은 메인 투우사 두 명이 번갈아 나와서 소와 대결했다. 세 마리는 한 번에 무릎을 꿇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검이 한번에 꽂히지 않아 여러번 등에 검이 박혀야 했다. 군중의 야유 속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매우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이들에게 축제이자 전통인 투우경기. 투우경기를 위한 소들을 길러내고, 죽음 뒤엔 식용으로 쓰이는 황소의 운명, 또 투우사가 되기위해 5년동안 대학을 다니는 젊은이들. 극도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소 앞에서 무서울 것 하나 없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투우사. 그 기개를 용감하다고 해야할지, 무모하다고 해야할지. 경기가 끝난 직후 투우사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온 몸의 기가 빠진듯 미소년 같았던 얼굴은 초췌해져 있었다. 


경기 중 황소 뿔에 찔려 목숨을 잃는 투우사, 실명을 한 투우사, 반신불구가 된 투우사, 황소가 무서워 도망 쳤다는 투우사의 이야기 등등.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이 투우 경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런지는 모르겠다. 동물 보호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많은 지역에서는 이미 금지되어 더이상 보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어렸을 때부터 이 경기를 보며 자라난 세대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두어시간의 경기가 끝나자 경기장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관중들이 무언가 더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잠시 후 어린 아이들이 우루루 경기장 모래판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검은 황소가 아닌, 노르스름한 털에 작은 뿔을 가진 새끼 황소 한마리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작은 새끼 황소에게 빨간 손수건을 휘두르며 투우사 흉내를 낸다. 어릴적부터 투우경기를 보고 자라고, 이렇게 모래판에서 황소를 마주하는 아이들. 그들의 감성은 붉은 물레타처럼 길러진다. 핏물에 젖어도 티가 나지 않는 빨간 망토처럼. 


Distance: Zumaia - Deba (12km) 
Time for walking:  8:00 am – 5:00 pm 
Stay: 공립 알베르게 
A thing to throw away: 유럽 여행책 (순례길을 끝내고 다른 유럽 나라들을 돌아볼 계획으로 사온 책이다. 꽤 두껍고 무거운 책이지만 유용할 것 같아 들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너무 무겁다. 필요하면 어디선가 또 구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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