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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tman Jun 07. 2020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15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15 다시 프랑스길로


게르니카 학살, 그리고 그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이 두 가지가 떠오르는 도시, 게르니카의 첫 인상은 ‘알록달록’이었다. 오래된 건물들 벽면 곳곳에 밝은 원색으로 그려진 다채로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피카소의 그림도 있고, 학생들의 낙서같은 그림들도 보인다. 관광 안내소 앞에도, 마을 한가운데 광장 앞에도, 회색 골목 사이사이에도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대학살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광장 뒷편에도, 슬픔보다는 오히려 그런 발랄함이 엿보이는 도시다. 그런 대비를 느낄 수 있는 곳. 피카소의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그 그림 못지 않게 도시 곳곳에 예술적인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도시 한켠 작은 공원 안에도 조각과 조형물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 놓여있고, 잘 정돈되어 있는 구시가지는 영화 세트장처럼 깔끔하다. 


난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조용하면서도 경쾌한 이 마을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하루 정도 쉬면서 어디로 걸어갈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이 북쪽길을 계속 걸어갈지, 아니면 내륙의 프랑스길로 돌아갈지. 마을 한복판에 있는 중앙 시장에 가서 먹고 싶은 과일을 한보따리를 사서 펜션으로 돌아왔다. 지친 몸을 충분한 잠과 달콤한 과일로 달랜다.


해안가를 따라 걷던 북쪽길이 게르니카부터는 내륙으로 향한다. 하루이틀 더 걸으면 내가 지난주에 들렀던 빌바오에 도착한다. 북쪽길의 가장 힘든 부분은 끝난 셈이다. 원래 걷고자 했던 프랑스길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두번째 구간을 시작하는 도시인 부르고스(Burgos)부터는 고원지대를 따라 200킬로를 걷는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또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다. 그래서 난 내일 부르고스로 떠나기로 했다. 어디에서 걷든 매일 매일이 낯설고 새롭지만, 가던 길을 따라 걷는 것은 금새 또 익숙해진다. 익숙해진 경로를 다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다. 처음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함께 시작한 사람들도 일정대로라면 부르고스 근처를 걷고 있을 것이다.


온 도시가 조용한 시에스타 시간. 한낮의 공원엔 아무도 없다. 호수를 가득 채우는 큰 아름드리 나무와 새들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루를 쉬고 있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게 멈춰버린 느낌이다. 왠지 계속 어디론가 걸어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 중간에 멈춰 서 버리면 다시 뛰기가 더 힘든 것처럼, 걷는 것에 맞춰진 내 몸이 잠시 앉아 있는 이 순간에 적응이 안되나 보다. 몸이 더 쳐지고 어쩔 줄 몰라 한다. 순례자 숙소보다 훨씬 안락한 이 펜션에서의 휴식도 낯설다. 아무도 내 곁에 있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아 편안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허전하다. 

한번쯤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내가 걸어온 길을, 또 앞으로 나아갈 경로를 살펴보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쉼이 너무 길어지면 몸이 그 멈춤에 길들여져서 다시 걷기까지는 또다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적당한 쉼과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순례자길에서도, 인생길에서도 중요하다. 남에게 끌려가지 않으면서 내 속도로, 내 몸에 맞춰 걸어가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나아가야 한다. 내일부터는 또다른 새로운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Distance: 게르니카 도시 구경 
Time for walking:  10:00 am – 5:00 pm 
Stay: Pension
A thing to throw away: 바스크 가이드북 (빌바오부터 시작된 바스크 컨츄리 여정. 게르니카를 끝으로 이제 다시 프랑스길로 이동한다. 더이상 필요없게 된 바스크 가이드북을 펜션에 두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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