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아침 일찍 부르고스(Burgos)로 향하는 버스를 알아보니, 직행으로 가는 차가 없어서 빌바오에서 갈아타고 가야한다. 차로 두세시간이면 갈 거리를 일주일 넘게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차로 하루면 갈 거리를 한달 넘게 걸으니, 시간의 효율성을 따진다면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돈의 효용과 상관없이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모든 기준을 돈과 시간의 효용가치로 따지며 사는 것은 더 미친 짓이 아닐까.
빌바오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부르고스에 도착하니 점심무렵이다. 곧 시에스타가 시작하니, 그 전에 순례자 숙소를 찾아가는게 좋겠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 출구를 나서니, 여지껏 마주친 마을과는 규모가 다르다. 게르니카나 팜플로나보다 휠씬 더 큰 규모며,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신시가지가 펼쳐진다. 이 정도 규모면 지도없이 숙소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물어물어 가야하는데,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걱정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온다. 다시 내륙으로 돌어온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북쪽 해안지방보다 십도쯤 더 높은 기온, 그리고 더 뜨거운 태양. 차로 불과 두세시간 거리인데 날씨는 매우 다르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물어 삼사십분을 헤맨 끝에 순례자 숙소를 찾았다.
큰 도시답게 순례자 숙소 건물 또한 매우 크다. 들어서니 젊은 남녀 학생 두 명이 접수를 받고 있다. 문을 새로 연건지, 리노베이션을 한건지, 아무튼 무척 크고 깨끗한 건물이다. 침대 배정을 받고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두고 (순례자 숙소에는 등산화를 넣어두는 신발장이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온갖 먼지와 가축의 분비물이 묻은 등산화를 침대 옆에 두지 않는다), 배정받은 침대를 찾아가보니 큰 공간에 수십개의 침대가 놓여져 있다. 샤워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짐을 침대 곁에 내려두고 샤워실로 향햐려는데, 뒤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와 너무 반갑다!’
‘응 나도!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돌아보니, 미라브가 서 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길을 걸은지 이틀째 되던 날, 작은 마을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녀는 처음 보는 내게 스스럼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넸었다. 다짜고짜 내 나이를 먼저 물은 것도 그녀였고,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이 곳을 찾았다는 말도 덤덤하게 했었다. 그리고 함께 묵은 숙소의 이층 침대 아래 위에서 잠이 들었었다. 다음날 아침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했고, 그 다음날 난 북쪽길로 떠났다. 그리고 이주가 지나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키가 작고 마른 체형에 까만 커트 머리를 한 그녀는 나와 동갑내기로 이스라엘에서 왔다. 담배를 연신 피워대던 그녀는 조금 시니컬해 보이기도 했고 조금 어두워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주 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피부가 조금 더 까매지고, 얼굴은 약간 더 야위어 있었지만,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이 길을 왜 걷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clear my mind’라고 대답했다. 마음을 비워내고 싶다고. 마음 속의 무언가를 치워버리고 싶은 그 마음. 알 것 같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든, 내 과오로 인한 힘든 과거든,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든, 어딘가로 떠나 보내지 못한 마음 속 짐들을 정리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도 충분히 알겠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마음 속에서 비워내고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일까. 이 길에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여행 경험이 많은 그녀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나와 비슷했다. 긴 여행이지만,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고 몸만 쓰면 되는 여정.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오랜 기간 여행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익숙했던 것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큰 위험없이 지낼 수 있는 것.
그녀는 매우 독립적이고, 강단있는 모습이었다. 비록 이별의 아픔으로 조금 의기소침한 기색이 보였지만,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살아온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얼굴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 학생들은 그녀처럼 길러진다고 한다.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르바이트나 일자리를 구해 돈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몇달이든 몇년이든, 국내든 국외든,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대학을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그것을 찾기 위해서 그들은 몇년 동안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세상을 구경하면서 20대 초반을 보낸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20대 중후반에 대학을 간다. 공부가 싫다면, 그동안 쌓아온 경력으로 일을 계속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다. 그녀도 26살에 대학을 갔다. 그리고 졸업후 육칠년 열심히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중이다.
이삼십대가 되어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고 원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그것을 찾는 걸 포기하고 현실에 맞춰 적당히 지내거나 타협하고 산다. 대학을 가기 위해 십여년 죽도록 공부하고, 대학가서는 취직을 위해 공부하고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도 여력도 없다. 남들 하는것만큼은 따라 해야하고, 적당히 해서는 취직이든 창업이든 전문직이든 쉽게 되는 일이 없으니 죽도록 매달려야 한다. 남들이 원하는 좋은 직장을 다니든,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졌든, 그것이 스스로에게 맞는지 아닌지 미쳐 확인해볼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나한테 맞는 일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막상 해보니 안맞네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스라엘 젊은이들과는 정반대다. 그래서 뒤늦은 방황이 많다. 방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아를 찾아가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갈 시기의 방황은 자신의 근본을 좀 더 다지는 일이 되지만, 이미 많은 것이 굳어져 있는 나이에서의 방황은 더 큰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어쩌면 지금 나의 방황도 내가 이십대초에 했어야 했던 방황이지 않았을까.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많은 것들, 공부, 성공, 일, 직장, 돈, 가족, 결혼 등등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협소했던가. 세상은 넓고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 그 다양성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내 사고의 한계를 알아차릴 수 없다. 그리고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를 수 없다. 내 것을 키우고 지켜나가면서도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교류할 수 있어야 내 자리가 어디인지 좀 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일에 지치고, 남자친구와의 결별로 마음이 지친 그녀와 나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둘다 힘겨운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 이 곳을 찾았지만, 사실 몸은 더 힘들고 지친다. 하지만 이 육체적인 힘겨움은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뻐근해지는 몸의 힘겨움과는 다르다. 더 강해지기 위해 몸이 스스로 단련하고 있는 느낌은 고통이 아닌, 건강함으로 내게 전달된다. 발에 잡힌 수많은 물집과 더운 날씨에 힘들다는 그녀의 얼굴에도, 괴로움과 고통보다는 무언가 이겨내고 있는 스스로를 대견해 하는 표정이 비친다. 그런 육체적인 움직임이 내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땀과 함께 내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그래서 힘들지만 힘들지만은 않은 길이다.
시에스타가 끝나고 광장으로 나선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있다. 광장 앞에는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를 목에 건 청동상이 벤치에 앉혀져 있다. 사진 한장을 찍고 사람들 구경을 하던 중 누가 내 어깨를 두들긴다. 뒤돌아 보니 조지 아줌마와 줄리엔 할아버지다. 프랑스길을 걷기 시작한지 이틀째 되는날, 론세스바예스에서 순례자 메뉴를 함께 먹었던 부부다. 나를 보고 얼굴에 함박 웃음이다. 나를 딸처럼 품에 꼭 안는다.
‘여기서 다시 뵙네요!’
‘안그래도 어제 네 생각을 많이 했어. 어디쯤 있는지 통 보이지도 않고 해서 걱정했었지.’
‘네, 저는 북쪽길로 올라가서 걷다가 부르고스로 오늘 왔어요.’
‘그랬구나. 이주 전보다 더 건강해 보여서 좋구나.’
‘두분 몸은 괜찮으세요? 날씨가 살인적으로 덥네요. 저도 더위를 먹은 것처럼 몸이 축 쳐지더라구요.’
‘말도 마. 어제 그제 그 더운 날씨에 30킬로 넘게 걸어서 우리도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 그래서 여기서 내일 하루 더 쉴까 생각중이야.’
‘많이 걸으셨네요.’
‘그렇게 많이 걸을라고 했던 건 아닌데 아침부터 길을 잘못 들어서서 한두시간을 헤매고 다시 처음 지점으로 돌아와 시작하느라고 십킬로는 더 걸었지 모야.’
캐나다 퀘벡에서 온 분들이라 영어가 서툴지만, 그래도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내게 다 전달이 되고도 남는다. 많이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그 연세에, 이 길을, 이 무더운 날씨에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대단한 분들이다. 특히 줄리엔 할아버지는 얼굴에 잡힌 주름까지도 온화한 표정을 담고 있다. 그렇게 손을 꼭 잡고 내게 따뜻한 말들을 건네준 사람들. 한번 본 것이 전부인데 나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참 감사하다.
Distance: 부르고스로 이동, 도시 구경
Time for walking: 1:00 pm – 7:00 pm
Stay: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
A thing to throw away: 긴 등산양발 (등산양말 세 켤레를 사왔다. 하나는 발목까지 오는 것, 두개는 장딴지 중간까지 오는 긴 것. 두툼한 양말이라 부피도 무게도 제법 나간다. 두켤레면 충분하지 싶어 긴 등산양말 한켤레를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