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atman Jun 28. 2020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28

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Day 28 순례자의 기도


 

어제 저녁 큰 수퍼마켓에서 이것저것 먹을 거리를 샀다. 작은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을 잔뜩 산 것이다. 그동안 못먹었던 생우유, 각가지 빵과 채소, 과일. 1리터짜리 요거트, 1.5리터 물 한병, 복숭아, 사과, 바나나, 에너지 바 여러개, 살라미, 치즈. 어림잡아도 3-4킬로는 되어 보인다. 이 모든 걸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길을 나선다. 내 욕심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좀 덜 먹어도 여지껏 잘 걸어왔는데. 무거우면 가다가 버리면 되지 싶지만, 막상 걷다 보면 그렇게 쉽게 버려지지도 않는다. 내 어깨와 다리가 온종일 고생할 것이 뻔하다. 길 위에서 하루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음식은 물과 바게뜨, 살리미, 복숭아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아침부터 가방 무게에 어깨가 아프기 시작한다. 어제 긴장을 풀고 잠이 든 탓인지 늦게 일어나 길을 나서니 다른 순례자들은 보이지 않고, 갈랫길에서 순례자 사인을 놓쳐서 길을 한시간 가량 헤맸다. 다행히 내 뒤를 따라 걷던 젊은 남성이 순레자길은 반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준 덕분에 더 오래 해메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순례자길 화살표를 찾아서 한두시간쯤 걸었을까.  Murias란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인데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이지만,  집이며 담장이며 단단하게 잘 지어져 있고 관리도 빈틈없이 잘 되어 있다.  땅바닥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고 휴양지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하루쯤 이곳에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곳에도 순례자 숙소가 있다. 마을처럼 숙소도 깔끔하겠지. 우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생각해 보자. 마을 끝지점에 레스토랑 한두개와 카페 하나가 마주하고 있다. 작은 카페로 들어서니 깊은 커피향이 카페에 가득하다.  회색 머리칼의 여주인은 반갑게 눈인사를 건넨다. 

카페콘라체를 시키고 야외에 마련된 파라솔 아래 앉는다. 잠시 후 여주인이 가져다 준 커피. 정말 깊고 그윽한 커피향이다. 내가 마신 커피 중 최고다. 저녁에 순례자 메뉴도 제공하는 이 카페가 무척 맘에 든다. 저 여주인의 고향이 이 마을이었을까. 젊은 시절 외지로 나가 일도 했을 것이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중년을 넘어서서 그런 삶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혼자 이 가게를 차렸을 것 같은 여주인과 여주인을 닮은 카페다.

건너편 레스토랑 파라솔 아래 노부부가 앉아서 쉬고 있다.  멋쟁이 모자를 쓴 할아버지, 그리고 호리호리한 체구에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지닌 할머니. 여유가 느껴진다.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일도 없다. 그저 걷다 지치면 그늘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고, 걷다가 갈증이 나면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노년의 삶이 저렇다면 늙는다는 것이 결코 피하고 싶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길을 걸어낼 수 있는 건강과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을 수 있는 파트너, 마음과 금전적 여유까지 갖춘다면 최고의 노년이지 않을까. 그들의 얼굴엔 젊은 순례자 얼굴에 보이는 조급함, 불안감, 지나친 열정은 없다. 그저 편안히 파라솔 아래서의 휴식과 대화가 있을 뿐이다. 


휴양지에서 쉬듯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싶지만, 막상 걷는 것을 멈추고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왠지 숙제를 미루고 노는 아이처럼. 정해진 일정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5시 넘어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Rabanal del camino라는 마을은 순례를 위해 형성된 마을 같아 보일 정도로 순례자 숙소가 잔뜩 모여 있었다. 숙소뿐만이 아니라 순례자들을 위한 레스토랑, 카페, 수퍼를 운영하는 사람들 외에는 이 마을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 보니 어떤 숙소를 골라야할지 더 모르겠다. 

많은 순례자들은 이미 도착해서 이곳저곳 숙소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빈대에 대해 찾아보다가 이 마을에 빈대에 물린 순례자들을 치료해주고 짐까지 소독해주는 숙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그런 숙소라면 빈대가 있더라도 편하게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제처럼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듯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숙소의 이름은 Gaucellmo Alberge. 문앞에 서니 큰 교회 같아 보인다. 들어갈까말까 입구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백인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숙소를 찾아 왔나요?’

‘네...’

‘그럼 어서 들어와요. 여긴 영국 교회에서 운영하는 순례자 숙소랍니다.’

‘네…’


접수대에는 그녀와 비슷한 인상의 남성이 막 도착한 또다른 순례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있다.


‘어서 와요!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요.’

‘아 그래요. 한국 사람들이 요즘 참 많이 오네요.’

‘나는 Keith라고 하고, 입구에 서서 안내를 하고 있는 여인은 제 아내 Clara에요. 우리는 영국에서 은퇴를 한 뒤 여러나라의 다양한 도시를 돌아다니며 순례자들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스페인에서 이주씩 여러 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돕고 있지요.’

‘그러시군요. 두 분 모두 참 즐거워 보이세요.’

‘그럼요.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긴 여행길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그리고 교회들이 이곳처럼 모두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어요. 그래서 이 주라고 해도 짧게 느껴질 정도지요. 나와 내 아내, 그리고 David라는 친구 셋이서 이 큰 숙소를 관리하지만 전혀 힘들지 않아요.’

‘이렇게 깔끔하게 관리하시니 순례자들이 편하게 쉬다 갈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침대가 있는 방까지 직접 안내해 준다. 청결을 위해 침대 커버까지 무료로 나눠 준다. 이곳은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는 숙소라서 무료다. 원하는 만큼 기부함에 돈을 넣으면 된다. 침대가 있는 방에 들어서니 방이라기보다는, 오래전 예배당으로 쓰였을법한 돌건물 한켠에 이층 침대 여러개가 양쪽 벽에 쭉 놓여 있다. 건물 입구에는 빈대에 대한 프린트물이 붙어 있다. 계절별로 박멸작업을 하고, 빈대에 물린 사람은 소지품을 가지고 오면 소독을 해준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 빈대가 나온 적은 없나요?’

‘내가 있는 동안 나온 적은 없어요. 계절마다 숙소 주변까지 모두 소독을 한답니다.’


침대 옆문으로 나가보니 아주 넓은 교회 뒷마당이 나온다. 빨랫줄도 걸려있고, 사과나무와 자두나무에는 열매가 가득 열려 있다. 깔끔하고 평화로운 숙소. 친절한 분들. 마음이 편안해진다. 샤워를 하고 동네 구경을 나서려는데, Keith가 나를 불러 세운다. 


‘한국에서 온 부부가 있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이 좀 어려우니, 오늘 저녁에 숙소 맞은편 성당에서 미사가 있다는 말을 좀 전해줘요. 그리고 몇가지 숙소 규칙도 설명해 주면 좋겠어요.’


나이 지긋한 한국인 부부가 접수를 하고 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Keith가 알려준 몇가지를 설명해주고, 7시에 미사가 있으니 원하면 요 앞 성당으로 오시라는 말도 함께 전한다.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Keith가 다시 나를 부르더니, 미사 때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성경 구절을 각국의 언어로 읽는 시간이 있는데, 한국에서 온 사람 대표로 내가 좀 읽어줄 수 있냐는 것이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본 적은 있지만 그저 맨 뒷자리에서 앉아서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성가를 듣는 정도였다. 카톨릭 신자도 아닌 내가 성경 구절을 읽는다는게 왠지 어색하게 느껴져서 조심스럽게 거절을 하고 문을 나서는데,


‘그래도 한번 해보는게 어때요? 성경 구절을 잠깐 읽는 것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함께 읽으며 기도하고, 신부님의 말씀을 바로 옆에서 듣는 건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동네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자, 기다렸다는듯이 Keith는 한글로 씌여진 성경책을 내게 건네며, 오늘 읽어야할 성경 구절을 알려준다. 이렇게까지 권하는데 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성경책을 받아 든다. 곧 미사 시작이다. 성경책을 들고 부랴부랴 성당으로 들어서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이삼십명의 순례자들이 작은 성당 안을 가득 메웠다. 성당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어진지 수천년은 되어 보이는 돌건물. 여기저기 부서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계단과 재단, 마리아 상마저도 군데군데 부서진 모습 그대로 서 있다. 


나를 포함해 성경 구절을 읽을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신부님 재단 양쪽 의자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린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에서 온 순례자들, 그리고 나.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책을 들고 한명한명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에 대고 같은 성경 구절을 읽어 나간다. 


“We must always give thanks to God for you, brothers and sisters beloved by the Lord, because God chose you as the first fruit for salvation through sanctification by the Sprit and through belief in the truth. For this purpose, he called you through our proclamation of the good news, so that you may obtain the glory of our Lord Jesus Christ.”


오래된 성당 안. 마이크를 통해 내가 한글로 읽는 성경 구절이 울려퍼진다. 낮게 깔려 울리는 내 목소리가 다시 내 귀로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경건해진다. 자리로 돌아와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린다. 


있는 그대로 제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 주십시오. 과거에 일어난 일들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십시오. 극심한 저항도 극심한 슬픔과 우울도 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있는 그대로를 겸허히 받아들여 평온함을 갖게 해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말들이다. 그리고 곧이어 신부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큰 키에 까만 신부복을 입은 신부님의 목소리가 낮고 굵다. 독일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천천히 설교를 하신다. 


The pilgrims come from all the different countries and backgrounds and they are not always good. You may dislike others who seem unrightful to your eyes, but just let the evil grow in order to live together. In the spiritual garden, there are always good and bad. However, it will be difficult for a perfectionist to accept the fact.


세상사에서 한걸음 물러나 살아왔을 것 같은 신부님. 하지만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 겪어낸 듯한 눈빛으로 설교를 이어 나간다. 세상을 내 눈으로 재단하려 하지 말 것. 설사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해도 내 힘으로 함부로 바꾸려 들지 말 것. 세상에 존재하는 선과 악을 있는 그대로 놔둘 것. 완벽주의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라며 좌중을 한번 둘러보신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는 것은 자만심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 내 생각이 전부 옳고 그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원하니 좌절과 실망을 피해갈 수 없다. 그렇다고 패배주의자나 회의론자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수수방관자로 살라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 이상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거나 예기치 않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한다. 그 실망과 고통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가정이 있었기에 생기는 마음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의의 사고가 내게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다.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내가 모두 취사선택할 수는 없다.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그것을 바라보는 내 태도 뿐이다. 그 태도에 따라 고통을 통해 더 성숙해지기도 하고, 더 비참해지기도 한다. 일어난 일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인가를 되새길 수 있는 여유와 성숙한 시각만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전부다. 


Distance: Astorga – Rabanal del camino ( 25km)
Time for walking:  10:00 am – 5:00 pm 
Stay: 공립 알베르게 
A thing to throw away: 얇고 긴 training 바지




작가의 이전글 순례자의 시작과 끝 Day 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