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매일매일 버리며 걷기
일정표 상의 오늘 코스를 살펴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걷기 시작한지 한달이 넘었고, 어제 힘든 길을 오랜 시간 걸어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루이틀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500-600킬로를 걷고 몸이 피곤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루하루의 삶도 힘들다. 그래도 계속 걸어가야 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몸이 매우 지친 상태였지만, 큰 굴곡 없는 길이라 무리없이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는데 아침부터 다리가 너무 무겁다. 가방은 더 무겁다. 한달을 끊임없이 걸었다. 순례자길 시작하기 전 거쳤던 여행까지 합치면, 두달여를 걷고 있는 셈이다. 여행의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고, 하루하루의 피로감은 점점 쌓여만 간다. 즐겁기만 한 여행은 없다. 행복하기만 한 여행도 없다. 제자리로 돌아가면 힘든 기억조차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 여행이기에 종종 착각한다. 여행의 매순간이 행복에 겨운 줄로. 그런 여행은 없다.
높은 오르막도 없는 평평한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데, 오늘은 순례를 시작한 이후로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든 날이다. 한발 한발 내딛기가 이렇게 힘든 날은 없었다. 발목이나 무릎이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닌데, 온몸이 한없이 가라앉는다. 누구에게나 쉬운 길이 내겐 어려울 수도 있다. 내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삶을 재단한다. 그 정도면 만족하고 살아라든가, 너 정도면 모가 불만이냐. 왜 그렇게 힘들어 하냐. 인생처럼, 같은 길도 모두 다르게 걷게 되는 길, 순례자길이다.
가야할 길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어가기만 하는 길임에도 나아가기가 이렇게 힘이 든다. 그럼에도 왜 멈추지 않고 꾸역꾸역 걷고 있는지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고집스러운건지, 미련한건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려 도착한 카카발로스(Cacabalos)는 꽤 큰 마을이다.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오래된 성당을 개조한 숙소다. 빈대 걱정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공립 알베르게에서는 가능하면 자지 않으려 했는데, 이미 저녁 7시가 넘었고, 큰 마을이라 숙소를 찾아 둘러보기엔 너무 늦었다. 그리고 한발짝 더 내딛을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가방을 부려놓고, 침대 위에 쓰러진다.
Distance: Molinaseca - Cacabalos (23km)
Time for walking: 9:00 am – 7:00 pm
Stay: 공립 알베르게
A thing to throw away: 반짓고리 (구멍이 나면 난대로 입고 신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