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하지만.

by 아나타

2008년 2월 18일은 월요일이었다. 주말이 끝나자마자 사업자를 내러 구청에 갔고, 그때 담당자가 이건희만큼 돈 많이 벌라고 덕담해 준 것이 기억난다. 스물일곱의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겨울 내내 준비했던 가방 브랜드는 브랜딩, 디자인, 샘플링 모든 면에서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곧 상해에서 열리는 해외 패션 페어에 나갈 참이었다. 그때의 나는 언제든 내 브랜드와 비전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할 수 있었고, 그 말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세계적인 가방 브랜드를 만들고,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뉴욕, 파리, 피렌체, 베를린. 꾸준히 해외에서 열리는 수주회에 참가했다.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우리 브랜드는 그 가능성이 보였는지 독일과 일본에 현지 에이전시도 생겼고, 일본의 유명 편집숍 바이어 눈에 띄어 그곳에 입점한 유일한 한국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적지만 분명한 마니아층이 생겨가고 있었다. 꾸준히 잘해간다면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제조업은 만만치 않은 업이었다. 제조 기반의 작은 브랜드가 돈을 버는 일이 얼마나 요원한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제조는 많이 만들어야 큰돈을 벌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걸 되도록 빨리 팔아야 자금이 빠르게 회수된다. 빨리, 많이 팔기 위해서는 마케팅에도 또 돈이 들어간다. 돈이 돈을 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건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잘해서 넘을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조의 문제였다.

게다가 국내 패션 시장은 선주문과 선금을 받고 생산하는 시스템이 아니기에 재고와 판매에 대한 리스크 모두 브랜드와 디자이너에게 가중된다. 가방은 퍼스널 사이즈는 없지만 보통 옷과 신발 다음에야 구매가 이뤄지는 아이템이다. 우리는 유니섹스, 더 나아가 남성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였으니 자금 회전이 쉽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018년에는 여성 가방 브랜드도 런칭했다. 다행히 초반부터 반응이 있었고, 팔리기 시작하자 그 속도는 남성 쪽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재고가 중간에 끊기자 다시 만들어 팔 때는 또 그만큼 나가지 않았다. 잘 나갈 때 끊기지 않게 물량을 밀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돈을 벌려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게다가 여성 쪽은 브랜드 충성도가 낮아 이번 시즌 좋았다고 다음 시즌도 괜찮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한 시즌이 삐끗하자 남성 브랜드가 안 팔릴 때보다 더 힘든 고비들이 찾아왔다.


돈, 돈, 돈. 뭘 하려고 해도 돈이 필요했다.

처음 돈을 빌릴 땐 주저함이 컸다. 하지만 어떻게든 사업을 굴리려 하다 보니 나중엔 빚도 자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엔 매년 연장만 하면 계속 가져갈 수도 있는 기술보증기금에서, 그리고 까다롭게 심사하는 중소기업청에서 ‘2년 거치, 3년 상환’ 같은 저금리 자금을 빌렸다. (중기청에서 빌린 1억을 3년 동안 갚아내는 일은 정말 피 말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월말은 귀신같이 찾아왔고 자금은 늘 부족했다. 거래처에 결제가 늦는다는 전화를 할 때면 심장에 가시 같은 것이 콕콕 박혔다. 밀린 생산비를 내느라 집 보증금을 빼고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들은 늘어갔고, 되는대로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끌어왔다.


우리 브랜드를 향한 장밋빛 말들, 가능성에 대한 칭찬들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참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잘될 거란 희망을 품게 했다. 영광의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를 악물고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그 ‘내일’은 하루가 지나면 또다시 희생해야 할 ‘오늘’이었다. 10년이 넘어가면서 나는 그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점차 깨달았다.


당시 함께 일하던 남편이 말했다.

“우리 이대로 가다간 대출 원금도 못 갚고 인생 끝날 것 같다. 회생 신청하자.”

모든 대출은 대표인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에, 그 말은 곧 내가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이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 그런 계획은 없었다. 기술보증에 낸 이자만 해도 원금의 반은 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원금은 손도 못 대고 있었고, 은행에서 빌린 돈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손발이 묶인 사람처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새롭고 획기적인 디자인을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돈을 더 끌어와 이 상황을 벗어나기엔 엄청나게 큰돈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었다. 제3금융이 아니고선 더 이상 빌릴 데도 없었다. 결국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방법밖에 없다면.

개인회생은 심사를 거쳐 빚의 일부를 탕감받고, 나머지 금액을 3년 혹은 5년에 걸쳐 매달 분할 상환하는 제도다. 최저생계비를 제외하고 매달 얼마를 갚을 수 있는지 자료와 심사를 통해 결정된다. 변호사를 만났다. 보통은 빚을 감당하지 못해 독촉에 시달리다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미리 찾아와 빠르게 결정한 건 아주 잘한 일이라고 했다. 회생 후에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렇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업까지 접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서류 누락과 보정자료 미흡 같은 방만한 진행으로, 남들은 몇 개월이면 끝낼 과정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사건번호가 취소되고 새로운 사건번호가 나오기 전까지 추심 전화와 문자가 이어졌다. 결국 변호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 회생 건을 다른 법률사무소로 넘겼고, 우리는 그 엄청난 서류 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그러다 새로운 법률사무소에서 회생이 아니라 파산을 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왔다. 사업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면 파산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제안이었다. 파산은 빚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대신 면책 결정 전까지 내 명의의 재산을 유지할 수 없고, 절차도 더 까다롭고 금융 활동에 더 긴 제한이 따른다.


아, 내 브랜드를 접을 수도 있는 거구나. 그러면 족쇄 같던 빚도 사라진다. 나 역시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간다.

15년 동안 한 브랜드를 운영해 오면서 브랜드가 곧 나였던 시간들이 있었다. 브랜드의 성취가 나의 성취였고, 그것이 아니면 나는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했다. 디자인은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고 공장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서러움 같은 것이 올라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세상은 왜 이렇게 가혹할까.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이 문장 하나가 머리에 깊이 박혔다. 내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일 앞에서, 나는 완전히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애초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심낸 것인지도 모른다. 죽을까. 그러면 편할 텐데. 빛 한 점 없고 시간의 감각도 없는 완전한 어둠 안에서 끝없이 떠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눈앞의 풍경이 흐려지다 결국 툭, 눈물이 떨어졌다.


이때쯤 더 본격적으로 마음공부를 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수행을 하면서 나를 참으로 많이 들여다보았다. 불같던 욕망을 꽉 움켜쥐고 그 뜨거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 그리고 그 움켜쥔 손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나는 파산하기로 했다. 빚도 없애고, 사업도 브랜드도 모두 끝내기로 했다.

의정부의 어느 사무실에 앉아 추심 관재인을 기다린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대뜸 나무라듯 물었다. 일본에서 물건 대금으로 들어온 돈을 왜 남편 계좌로 받았냐는 것이었다. 빼돌리려는 의도가 있었냐는 질문을 듣는데, 오히려 긴장이 사라졌다. 앞에 앉은 얼굴들이 보였다. 이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할 뿐이다. 내 계좌는 이미 추심 중이었고, 그래서 남편 계좌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 알게 될 일을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차분히 설명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있는 대로 돈을 빌린 다음 배우자 명의로 돌려놓고 파산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수억의 재산을 은닉하고 파산하는 경우도 있고. 그에 비하면 나는 성실히 사업을 해온 사람이었다. 빌린 돈은 모두 사업에 재투자했고, 그 흔한 명품 하나 산 적도 없고 주식이나 부동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사람임을 그들도 알고 있다. 그저 사업에 능력도 운도 없었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이 제도가 나를 살렸음을. 더 이상 빚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더 이상 15년이라는 긴 시간과 그 많은 경험들을 실패라는 단어 안에 욱여넣지 않는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열심히 해왔다면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지금 눈에 먼저 보이는 건 내 신용 등급일지 모르지만 회복되어 가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실패라고 믿었던 시간의 의미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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