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당신의 과거가 도착했습니다.

by 아나타

용건이 있어 D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화가 마무리될 때쯤, 그 집에 남아있던 내 물건을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도착한 묵직한 박스에는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 사용한 업무노트부터 브랜드 런칭 준비 때 썼던 디자인 스케치북, 심지어 대학교 때 일기장도 있었다.

갑작스레 마주하게 된 과거. 집도 좁은데 그냥 버려달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스멀스멀, 혹여나 그가 봤을까 싶어 민망한 마음도 약간, 무엇이 더 우세한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뒤로하고 일기장부터 들췄다.

단단한 종이로 만들어진 케이스를 열어 검은색 PVC 커버의 일기장을 꺼내니 그 밑에 깔려있던 케케묵은 영화 티켓들이 쏟아졌다. 인쇄된 글자가 반쯤 날아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영화 제목들과 6000원이라 찍혀있는 티켓 가격을 보니 지나간 세월이 실감 났다.

일기장 안에는 대학 시절 내내 똘똘 뭉쳐 지냈던 친구들 이야기부터 대학 생활에서 비롯된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일기를 끝내는 말미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없이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는 20살의 내가 있었다.

자책의 이유는 복잡하게 적어놨지만 사실 간단했다.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가. 누군가의 최우선 순위가 되길 바랐지만 그러질 못했고 그걸 핑계로 스스로를 잘못 판단하고 깎아내린다.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주는 관심과 사랑만으로도 괜찮았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충족되지 못한 애정을 학교에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는 달랐다. 여중, 여고를 나온 나는 남자들이 낯설었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라 한참을 헤매었었다.

나의 여성스럽지 못한 외모도 한몫했다. 여자로서 사랑받는데 자격이 필요한 것처럼, 스스로를 부적격하다고 여겨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바라고만 있을 게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했어야 했는데 그때의 나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미처 몰랐다.


씁쓸해진 입안을 다시며 알록달록한 하드 커버의 스프링 노트를 펼친다. 모양새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첫 업무노트다. 첫 회사를 들어갔을 때 썼던 그 노트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회 초년생이 있었다. 처음 접하는, 공장에서 쓰이는 현장 용어들과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주의 사항들은 특별히 별모양 포스트잇에 기록되었다. 노트에 적힌 업체명이나 그날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보고 있자니 서래마을에 있던 사무실의 전경과 그 안을 채웠던 답답한 공기가 곧바로 소환된다. 작은 실수가 곧바로 금전적 손실로 갈 수 있다는 책임의 무게를 느끼며, 이 무서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경외심을 느낀 날도 기억난다.

각종 영수증을 빼곡히 붙여놓은 노트에서는 첫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을 나가기 위해 지출했던 자재비, 샘플제작비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가방 제작의 0부터 10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경험했고 의뢰받은 디자인을 수행하는 가운데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더랬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내 가방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때의 전시를 계기로 정말로 가고 싶었던 회사에 스카웃되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1년을 못 다녔다. 그때의 답답함과 내 디자인에 대한 열망으로 결국 브랜드까지 만들게 되었고 첫 해외 페어를 나갔던 초창기 자료와 기록들이 지금 내 눈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무모하지만 재기 발랄한 스케치 사이사이에 낙서처럼 끄적여놓은 다짐들이 있었다.

나는 세계적인 가방 디자이너가 된다,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 뭐 그런 글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시간을 먹고 다른 형태로 자라났다. 나는 누군가의 최우선을 넘어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많이 성공하고 싶었다. 내 디자인과 브랜드로 보란 듯이 성취하고 싶었다. 그 꿈을 사랑하기도 했지만 집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넷째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서 넘볼 수 없는 결과를 이뤘다는 걸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가치 있음을 인정받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토록 바랬던 꿈이었지만 나에겐 '세계적인 디자이너'에 대한 자기 정의가 없었다. 이토록 두리뭉실하고 허술한 꿈이라니.

저 멀리 별은 빛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 내가 정말 그곳까지 갈 수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막연한 빛을 바라보며, 매일 걸어도 좀처럼 가닿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았다. 죄책감, 조바심, 채찍질은 훈장처럼 따라붙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았다.


가방 디자이너가 아니면 나를 설명할 수 없던 시간이었다. 내가 만든 브랜드가 곧 나라고 여겼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은 조바심과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늘 마음 깊은 곳에서 끓고 있었다. 겉으론 차분해 보여도 속은 용암 같았다.

내가 대단해서 1000일이 넘도록 매일 108배를 하고 명상을 해온 게 아니다. 나는 이 뜨겁고 어리석은 마음을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살 수 있었고 그 마음을 견디고 다루기 위해 그만한 수행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상해 본다.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실망할까? 아니면 환호할까?


아마 둘 다 아닐 것이다.

대신 의아해하지 않을까. 그토록 바깥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던 사람이 그 모든 걸 내려놓고, 이제는 매일 아침 절을 하고, 조용히 앉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다 이내 안도할 것 같다. 예전처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대신, 이제는 조건 없이 나를 가장 먼저 응원하고 보듬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결국 나니까, 고마워하지 않을까.



*매주 수요일,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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