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의 시간이 나만의 이야기로만 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행 과정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글쓰기란 고통스러운 일인 동시에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잘 쓰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생각과 감정, 경험을 언어로 바꾸는 일. 가장 적확한 단어를 고르고, 조사를 바꿔가며 뉘앙스를 조절하고, 표현을 다듬어 문장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분명 희열이 있다.
그런데도 글을 쓰려고 앉으면 마음 저 아래에서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올라왔다. 노트북 앞에 앉아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다 보면, 갑자기 화면 위에 쌓인 먼지가 보인다. 티슈를 뽑아 닦다가 키보드 먼지를 털고, 너저분한 바탕화면까지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책장에 제멋대로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렇게 쓸고 닦고 정리하다 보면 집이 깨끗해진다. 덩달아 화면 속 페이지도 여전히 깨끗한 상태.
마감이 글을 쓰게 하고, 글은 엉덩이가 쓴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에겐 약속된 마감도 없고 인내심 있는 엉덩이는 더더욱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강제된 마감, 써야만 하는 이유.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좋아하는 작가님이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 공고를 보게 되었다. 회차가 길어 약간은 부담되었던 수업,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매번 망설이다 놓치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이거다 싶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쓰는 10주의 수업. 듣기만 해도 빡센 기운이 감돌았지만,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런 강제성 일 테다. 빠르게 마감되는 편이라 마음먹은 김에 바로 신청했고, 한 달여 뒤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작가님은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게 힘들면 2주에 한 번이라도 제출하길 권했다. 아주 엄격한 의미의 강제성은 아니었지만, 나는 수행하듯 매주 한 편의 글을 썼다. 원래 목표는 수행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우선은 매주 한 편씩 완성하며 글쓰기에 습관을 들이자는 쪽으로 방향이 기울었다.
함께한 학인들과 선생님 덕분이었다. 나는 매번 같은 주제로 그들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함께 읽은 책들을 관통하는 수업의 주제는 ‘디아스포라’였다.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감응한 나 역시, 책이 가진 문제의식과 맞닿은 내 이야기들을 길어 올렸다. 매주 새로운 책을 나누고 세 편의 글을 합평하는 세 시간의 수업은 그 밀도가 무척 높았다. 그래서인지 A4 한 장 반 남짓한 분량이라도 그 글을 써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니, 일주일 내내 글하나를 붙들고 쓰는 과정은 사실 고통에 가까웠다.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써야 하나 자괴감이 몰려올 때도 있었고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마주하며 감정의 파도에 휩쓸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안전하다는 감각과 글쓰기를 북돋는 사람들, 정성스러운 피드백들이 어떻게든 글을 쓰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괴롭다가도 글로 옮기고 나면 고통의 일부가 내 몸에서 분리되는 것 같았다. 가볍고 후련했다. 학인들이 쓰는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도 내 시야를 한 뼘 넓히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큰 추동이 되었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숱한 수정을 거쳐 끝내 퇴고하는 아홉 번의 경험. 108배를 계속하니 허벅지가 단단해진 것처럼, 물컹거리던 글쓰기 근육도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떠오르면 얼른 메모를 남겼고, 거기에 살을 붙이고 구조를 만들다 보면 그 짧은 메모가 어느새 문장이 되고 문단을 이루었다.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짧게 자주 고쳤고, 노트북과 휴대폰이 연동되는 앱에 글을 써두고 짬이 나거나 이동할 때 거듭 고치고 또 고쳤다. 그리고 수업 전 날 한두 시간 집중해 끝을 낸다. 그 한 주의 리듬이 몸에 남아,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는 체력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완전히 공개된 여기에서 나는 다시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꾸 겉핥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 앞에서 서성이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기분이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매일 108배를 하고 명상을 했는지, 왜 나는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는지. 그 이야기가 빠지면 내가 전하고 싶은 수행의 메시지도 힘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무엇이 나아졌는지만 말하는 것으로는, 애초에 내가 이 글을 쓰려했던 이유에 결코 가닿을 수 없다는 것도.
그래서 이제 미뤄왔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해보려 한다.
아마도 그 시간들을 제대로 마주해야, 비로소 지금의 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