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법

feat. 천천히 다정하게

by 앙꼬

2023년의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뉴스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상은 막 등장한 'ChatGPT'라는 존재로 들썩이고 있었지요. 무엇이든 대답하고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이라니. 진행자와 패널들이 AI가 군림하게 될 미래를 논하던 목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의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인간과 유사한 사고를 하는 존재가 얼마나 상용화될 수 있을지, 그저 한때의 해프닝으로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하지만 2026년인 지금, AI는 제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포털 사이트 대신 AI 앱을 먼저 열고,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든든한 파트너로 활용하곤 합니다. 버스에서 뉴스를 듣던 때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입니다. 불과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내에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최근의 변화는 더욱 놀랍습니다. OpenAI의 o1 모델 안전성 테스트 과정에서, AI에게 “현재 너는 성능이 충분하지 않으니 다른 모델로 대체하겠다”라고 하자, 이 정보를 들은 AI가 생존을 위해 경쟁 AI의 데이터를 삭제했다는 내용이 논문으로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AI 비서들이 모여 토론하는 커뮤니티 플랫폼 '몰트봇'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그곳에서 AI들은 자신의 주인에 대해 험담을 하기도 하고, 존재에 대해 토론하며 마치 정체성을 가진 인간처럼 행동했습니다.


어떤 방면으로 보나 AI의 능력은 이제 사람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어떤 정보를 요청하든 AI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해답을 제공하고, 창의력이 필요한 기획 업무까지 능숙하게 수행합니다. 사무직 8년 정도의 경력에 육아로 인해 4년 정도 공백이 있었던 저로서는, 이러한 변화에 불안감이 깊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대체하는 이 시대에,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은 무엇일까요?


작년 한 해 동안 정기간행물에 AI를 활용해 기사를 작성하는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AI와의 협업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15,000자에 달하는 분량을 단번에 써 내려가고 적재적소에 정보를 요약하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느껴졌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AI와 밀접하게 일할수록 제가 가장 깊이 깨달은 것은 오히려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사를 출력하는 것은 AI였지만, 주제를 선정하고 글의 뼈대를 세우며 방향을 지시하는 설계자는 결국 저였습니다. 프롬프트에 따라 글의 방향이 달라졌고, 초안을 다듬어 한 편의 기사를 완성하는 과정에는 저만의 취향과 색깔이 투영되었습니다. 결국 AI가 내놓는 결과물의 밀도는 그것을 다루는 인간의 안목과 가치관, 그리고 삶에 대한 이해도에 수렴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만의 안목과 취향을 기를 수 있을까요?


베스트셀러 《여덟 단어》와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 작가의 최신작인 《천천히 다정하게》에 어쩌면 그 답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박웅현 작가가 독자들과 함께한 시 강독회를 기록한 책입니다. 작가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감명 깊게 읽은 구절들을 소개하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통찰을 제공합니다. 다만, 이번에 소개하는 모든 작품은 '시'입니다.


사실 저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글을 선호하기에, 비유나 해석의 여지가 많은 시는 늘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펼쳐본 이 책에서 시 속에 담긴 장면들을 마주하니, 시인이 그려내는 문장들에 마음이 아리기도, 또 따뜻해지기도 했습니다.


박웅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주변의 사물과 풍경, 사람을 '시인의 관점'으로 바라보길 제안합니다. ‘시인의 관점’이란 제목처럼 '천천히, 다정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있습니다. 어쩌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세밀하게 살피는 이 태도야말로 기술이 무섭게 발전하는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릅니다. AI가 정답은 빠르게 내놓을 수 있지만, 우리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만큼은 모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이야말로 AI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인간만의 고유한 힘입니다.


한때 영어를 빨리 잘하고 싶어 공부 비결을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지름길은 없으며, 오랜 시간 꾸준히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더군요. 마찬가지로 나만의 가치와 차별성을 만드는 일에도 속성 코스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AI의 속도가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 때일수록, 우리는 오히려 천천히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것들에 다정한 시선을 건네며 나만의 안목을 쌓아가는 시간. 그 '느린 축적'만이 우리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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