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하는 육아, 왜 나만 힘들까?

feat. 늑대아이

by 앙꼬

'남들은 다 잘만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육아를 하다 보면 작아지는 순간들이 있죠. 그럴 때면 저는 영화 <늑대아이> 속 엄마 '하나'를 떠올립니다.

​평범한 여대생 '하나'는 대학 수업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납니다.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지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고백합니다.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하나는 그의 비밀까지 보듬어 안으며 행복한 가정을 꾸립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맞이하죠.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하나에겐 남편을 닮아 늑대로 변할 수 있는 두 아이만 남겨집니다. <시간을 달리다>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 <늑대아이>는 홀로 남겨진 하나가 두 명의 늑대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결혼 전, 저는 아이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조카들이 자라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엄마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했죠. 임신 기간마저 평탄했던 덕분에 출산 직전까지도 육아에 대한 낭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꽤 잘 해낼 거야"라고 자만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확신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아이를 낳은 후, 남편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독박 육아'가 시작된 것이지요. 밤낮없이 우는 아이를 붙잡고 같이 울기도 하고, 밥 먹을 시간이 없어 하루 종일 굶다가 아이가 잠든 후에야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잠이 부족하니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덕분에 아기띠는 제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운전이 서툴러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장소가 제한되어 있었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외로움은 점점 커졌습니다. 집 앞 편의점 사장님의 짧은 인사마저도 반가울 정도였으니까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해야 마땅한데 왜 이토록 힘에 부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예민해진 감정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아 제 자신이 점점 싫어지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자기 결정성 이론’을 통해 행복과 동기부여의 핵심 요소로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을 꼽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면 이 세 가지 욕구를 채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선,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는 사소한 일상조차 아이의 생체 리듬에 맞춰야 합니다. 결국 나의 ‘자율성’은 사라지게 되죠. 두 번째로 육아는 끝없는 반복의 연속입니다. 수천 번 훈육을 해도 아이는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죠. 집안일은 끝이 없고, 공들여 치운 거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됩니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내가 잘하고 있다는 '유능성'을 느끼기도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종일 말 못 하는 아이와 씨름하며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성'마저 희박해집니다. 아이와 '함께' 있지만 지독한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인 거죠. 이렇게 심리학자들이 강조한 행복을 위한 요소 중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않으니,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 저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풍요로워졌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간 사이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지금처럼 아이가 옆에 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자율성을 되찾았으니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 모진 시간들을 견뎌내고, 이제는 제법 자란 아이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웃는 순간이 늘어났을 거라 생각됩니다.

​힘들었던 그 시절, 남편에게 서운함을 토로했을 때 "남들 다 하는 육아를 왜 너만 유독 힘들어하느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 본 적 없으니 저의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들도 다 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모두가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가족과의 이별을 겪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요. 우리가 해낸 일은 ‘보통의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잃어가는 불안 속에서도 오직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그 시간을 버텨내는 위대한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하나 역시 인간의 몸으로 아이들의 늑대 본성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웃의 눈총을 피해야 했고, 병원조차 마음 편히 가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여렸던 여대생 하나는 비로소 단단한 '엄마'로 성장합니다. 사실 늑대인간이라는 설정은 영화적 장치일 뿐,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어느 광고에는 여름방학 내내 집안을 어지럽히는 '공룡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 엄마는 전쟁 같은 소란 속에서도 점심을 차리고, 식탁에 앉은 공룡들은 이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우리 아이가 늑대이든 공룡이든, 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매일 하나와 같은 인내를 발휘하고 있는 셈이죠.

​때로는 부족한 엄마인 것 같아 자책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도 우울함을 느끼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은 우리가 부모로 성장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겠죠. 그 고통을 통과하며 비로소 우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여전히 육아의 파도를 넘으며 버티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영화를 건네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경이로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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