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줄스
아직 바람은 차가워서 옷깃을 여며야 하지만, 벌써 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봄 학기를 맞아 누군가에게는 이 새로운 시작이 설렘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굉장한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다가오리란 생각이 듭니다.
전 새로운 반으로 등교를 해야 했던 이맘때즈음 굉장히 예민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새로운 반에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죠.
먼저 다가가지 못해 주저하는 사이, 저만 빼고 다들 자기들만의 무리를 만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은 저를 몹시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저를 ‘친구 하나 없는 아이’라 여길까 봐 전전긍긍했지요.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매일 에너지를 온통 소진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 불안감을 어느 정도 떨쳐냈습니다. 개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니 늘 누군가와 함께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것이지요. 그곳에는 저와 같은 '아웃사이더'들이 꽤 많았고, 그들을 보며 이방인이어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낀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어학연수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 그곳에서 저는 외계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언어와 문화, 에티켓까지 모든 게 다르니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는 것조차 위축되더군요. 자연스러웠던 모든 일상이 눈치 보는 일로 바뀌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지독한 외로움에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성격을 떠나, 사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낯선 이방인’이 되어본 경험을 하기 마련이죠.
최근 본 영화 <줄스>에는 혼자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밥 먹고 TV를 보는 일상이 전부인 그의 마당에 어느 날 우주선이 추락하고, 기진맥진한 외계인이 나타납니다. 할아버지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무도 늙은 노인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습니다.
평소 딸에게조차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기 힘들어하던 무뚝뚝한 노인이었지만, 그는 뒷마당에 쓰러져 있는 외계인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물과 담요를 건네고, 이내 외계인을 집으로 들여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그만의 투박한 따뜻함을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주민회의에서 알게 된 다른 할머니들도 이 여정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외계인에게 티셔츠를 입혀주고 '줄스'라는 이름도 지어줍니다.
영화 속 외계인이란 설정은 어쩌면 황당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주선과 외계인이 등장하고 노인들과 우정을 쌓다니요.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설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따뜻하고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이 여정의 시작에서 외계인을 보고 당황한 할아버지는 마트 직원에게 "외계인(Alien)이 집에 왔다"라고 말하지만, 직원은 "불법 이민자(Alien)냐"라고 묻습니다. 이 대사는 대상만 바뀐 채 영화 내내 반복되지요. 영어 단어 'Alien'은 외계인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방인(타국인)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존재는, 때로 외계인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진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영화 속 노인은 외계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생각엔 그래요. 집에서 멀리 왔으니 겁나는 건 저 친구겠죠."
어쩌면 노인이야말로 세상에서 소외된 이방인이었을지 모릅니다. 유일한 친구가 TV 뿐이었던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진 외계인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외계인을 도왔던 노인들은 외계인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행복을 다시 찾게 됩니다.
인류학자 줄리언 핏-리버스는 인류가 이방인을 적이 아닌 손님으로 환대함으로써 문명을 발전시키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환대'를 뜻하는 영어 단어 'Hospitality'가 '적'을 의미하는 'Hostis'와 어원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지요. 인류는 낯선 존재를 우리를 위협할 잠재적인 적으로 보지만, 사실 적을 배척하고자 고립을 택했던 부족들은 자원 고갈 등으로 사라졌습니다. 반면 잠재적인 적을 오히려 환대하며 외부의 정보와 네트워크를 받아들인 공동체는 생존하고 확장되었습니다. 환대는 인류가 선택한 가장 지혜로운 생존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인류학적 통찰은 오늘날 생물학적 증거로도 명확히 증명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의 발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6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회적 활동이 전혀 없는 경우 활동이 활발한 노인에 비해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 저하 발생 위험이 무려 8배나 높게 나타난 것이지요. 고립이 정서적 쓸쓸함을 넘어, 우리의 뇌와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이방인으로서 견뎌야 했던 시간들 속에도 늘 누군가의 환대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반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던 친구, 길을 잃은 제게 목적지까지 기어코 동행해 주던 타인, 서툰 영어에도 눈을 맞춰주던 이들, 그리고 실수투성이 신입 시절 "괜찮다, 그럴 수 있다"며 어깨를 두드려준 선배까지. 그 따뜻한 찰나들이 이어져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희귀해진 요즘입니다. 심지어 인터넷에 올라오는 콘텐츠조차 AI가 만든 것인지 진짜 사람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지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외계인(Alien)'으로 느끼며 각자의 행성에 고립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살아가는 것이 외롭고 삶이 팍팍하게 느껴진다면, 영화 <줄스> 속 파란 피부의 외계인에 나를 대입하여 노인들의 따뜻함을 느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