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푸른 눈의 사무라이
사람을 미워해본 적 있나요?
전 종교는 없습니다만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는 우리 속담처럼 우리는 늘 용서와 관용을 미덕이라 배웠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프레드 러스킨(Fred Luskin) 박사의 '용서 프로젝트' 연구에 따르면,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혈압을 높이고 심혈관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결국 용서는 이타적인 행동인 것 같지만 사실 내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이고도 이로운 전략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요. 내 몸과 마음을 위해서라도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만, 이미 심어진 분노와 미움은 내 마음대로 다스려지는 종족들이 아닙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활활 불타올라 내 마음과 몸이 상하는지도 모르고 모든 걸 태워버리죠.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미움이란 감정은, 어쩌면 사회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게는 필연적인 통증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감정들을 다스리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론도 참 많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거리 두기를 하고,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라는 조언들 말이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마치 온종일 소리 지르며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앉혀놓고, 순식간에 조용하고 순종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아마 시중에 나와 있는 육아서들도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겠죠.
저 또한 미움에 사로잡혀 누군가의 불행을 바란 적이 있습니다. 그간 다양한 미움의 대상이 존재했지만 그 시작은 중학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단짝 친구와 쌍둥이처럼 붙어 지냈는데, 어느 순간 그 친구가 무리를 만들더니 저를 은근하게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제가 예민한 탓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근한 따돌림이 점차 분명 해지더군요.
어느 날 상황을 감지하신 학원 선생님께서 저를 집으로 데려다주시며 슬쩍 말씀하셨죠. "친구라고 해서 끝까지 옆에 둘 필요는 없다. 함께할 이유가 없다면 그 관계는 유지하지 않아도 괜찮아"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 아님을 알게 되어 안도하면서도 그 친구가 원망스러운 마음에 집에 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 친구 사이의 끈은 과감히 놓았지만, 그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은 제 마음 한편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안녕이 아닌 불행을 바랐죠. 꽤 오랜 시간 동안이요.
심리학에서는 용서를 불안과 우울을 낮추는 고차원적인 치료라고 말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우리의 날것 그대로의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대변해 주는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있습니다. 바로 2024년 에미상(Emmy Awards)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포함해 4관왕을 차지하고, 애니상(Annie Awards) 6개 부문을 휩쓸었던 넷플릭스의 <푸른 눈의 사무라이>입니다.
17세기 에도 시대, 일본은 외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쇄국 정책의 시대였습니다. 그곳에서 푸른 눈의 혼혈인으로 태어난 주인공 '미즈'는 존재 자체로 '악마'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려집니다. 미즈의 친부는 자신의 욕망만을 찾아 떠나고, 버려진 미즈는 여린 아이의 몸으로 거친 삶을 겨우 버텨냅니다. 그 삶 속에서 미즈는 자신의 삶을 처절하고 비참하게 만든 친부를 향한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그녀의 여정은, 마음속 일그러진 분노를 품고 사는 우리를 대신해 주는 것만 같습니다. 복수를 향해 불타는 그녀의 마음은 가련하면서도 동시에 지독하게 강인합니다.
매회 펼쳐지는 감각적인 액션과 피가 낭자한 자극적인 장면들은, 응어리만 지고 있던 우리의 분노를 대신 씻어주는 듯한 묘한 해방감을 줍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필터 덕분에 그 잔인함은 역하기보다 오히려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다가옵니다. 동시에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강렬함과 시각적 압도감은 웬만한 영화를 훌쩍 넘어섭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간접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대리적 정서 처리'라고 설명하더군요. 주인공이 복수에 몰입할 때, 우리의 뇌는 마치 직접 감정을 표출하는 것과 유사한 영역을 활성화한다고 합니다. 현실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잘 짜인 복수극은 우리 안에 갇힌 분노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죠.
단번에 미워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주인공의 복수 여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우아한 복수극 한 편이 백 권의 심리학 책 보다 나를 더 깊이 치유해 주기도 하니까요.
오늘도 마음속 괴물을 진정시키느라 힘드셨던 분들께 <푸른 눈의 사무라이>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