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프로젝트 헤일메리
저는 최근 꽤 오래 미뤄왔던 결정을 내렸습니다.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는 확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더는 나를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결정을 내린 후 마음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싶을 때 친구를 만났습니다. 꽤 차분해졌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꺼냈는데,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 스스로에게조차 숨기고 있던 진심이, 친구 앞에서야 비로소 솔직해진 것이었죠.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지금, 사실 모든 게 두렵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통과해야만 성장도 발전도 있는 것이겠지요.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도전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갈수록 그 용기는 조금씩 증발해 버리고 두려움만 몸집을 불려 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안전한 우주선 안에만 머물다가 처음 우주복을 입고 밖으로 한 발짝 내딛는 기분이랄까요.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숨이 막힐 것 같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하지만 내 한 걸음에 '생존'이 달렸다면 어떨까요? 연료도 식량도 바닥난 우주선 안에만 머문다면 다른 희망을 기대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될 겁니다. 반면 밖으로 나간다면 위험하고 고통스럽겠지만,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기적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나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 그레이스는 광활한 우주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료들은 모두 사망했고, 설상가상으로 그가 탄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편도용.
그가 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떠나온 이유는 인류의 생존 때문입니다.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행성들은 외계 미생물이 의해 죽어갈 위기에 처합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행성에 가서 생존을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 파견된 것이죠.
인류를 구할 단서를 찾아야 하지만 홀로 남아 자포자기한 그의 앞에 외계 생명체 '로키'가 나타납니다. 나를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우주 한가운데서 만난 미지의 존재. 그레이스는 처음엔 두려움에 도망치지만, 로키 역시 자신의 행성을 살리기 위해 우주로 떠나왔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미지의 존재를 만나보기로 결심한 그레이스는 우주선 밖으로 나가기로 합니다. 우주선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고, 스스로 '용기 유전자'가 없다고 말하던 사람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 외계인 로키와 마주하게 되죠.
같은 목적을 가진 그레이스와 로키는 강력한 연대 의식과 함께 우정을 쌓아갑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매력은 주인공의 천재적 능력이 아닌 '협력'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레이스는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좌절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보통의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로키와 함께 고군분투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성공 여부도 알 수 없는 무모한 여정 속에서, 결과가 확실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해지곤 합니다.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일까?" "계속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까?" 의문이 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오겠지요. 만약 그레이스가 혼자였다면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들이 나눈 우정과 연대가,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하버드의 조직심리학자 리처드 해크먼은 CIA 등 미국 정보기관 분석팀을 오랜 기간 연구한 결과, 개인의 지능이나 경력보다 팀이 어떻게 협력하고 서로를 지원하는지가 성과를 훨씬 더 잘 설명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개인의 탁월함보다 함께 키워가는 집단역량이 불확실한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된다는 것이죠.
전 힘들 때면 주로 혼자만의 동굴로 파고듭니다. 하지만 친구 앞에서 터진 눈물은 이제 모든 걸 혼자 감내하기보다 누군가에게 솔직해져도 괜찮다는 걸 깨닫게 했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후 저는 친구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내린 결정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이 여정에서 나를 응원해 달라고. 혹여 지쳐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달라고. 마치 그레이스와 로키처럼요. 다행히 그들처럼 인류의 생사가 달린 거창한 일은 아니니, 그나마 한결 가볍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영화 <마션>의 원작으로 알려진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어쩌면 우정과 연대, 미지의 세계로의 용기라는 소재는 뻔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50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무색할 만큼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우주라는 아름다운 배경, 적재적소에 딱 들어맞는 음악,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적인 연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저는 영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아 원작 소설을 찾아 남아있는 감동을 이어가 보려 합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강렬한 여운을 경험하고 싶은 분이라면, 그리고 지금 혼자 너무 많은 걸 감당하고 있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 추천드립니다. 우주복을 입고 문을 열어 누군가를 만나는 일,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