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히든 포텐셜
학교 다니는 내내 가장 싫어한 과목은 영어였습니다. 단어 암기는 지루했고 난해한 문법 설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죠.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지만 성적이 아주 좋진 않아 고민이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걸 쫓자니 등수가 밀릴 것 같고, 등수를 올리자니 싫어하는 과목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영어를 피해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1년 내내 친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시다 보니 현타가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망치듯 어학연수를 결심했습니다. 영어가 싫어 이과를 택했던 제가 아는 말이라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가 전부였는데 말이죠.
그렇게 도착한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편의점이나 홈스테이 집에서 나누는 짧은 대화조차 버거웠습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어학원이었습니다. 내향적인 제게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곤욕이었지만,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 속에서 저는 철저히 ‘영어’라는 잣대로만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스트레스였습니다. 비슷한 실력끼리 그룹이 지어지는 그곳에서, 평생 피해 다니기만 했던 영어가 이제는 저를 정의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어디에나 타고난 이들은 있습니다. 처음부터 막힘없이 대화하는 친구들을 보면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는 걸 절감합니다. 하지만 저를 더 주눅 들게 한 건 영어를 못해도 자신감 있게 다가가는 친구들이었습니다.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과 부딪히며 말을 건네는 친구들은 무서운 속도로 실력이 늘었습니다. 낯을 가리는 데다 자존심까지 강해 실수를 부끄러워하던 제게는 정말 부러운 모습이었죠. 저는 도서관에 박혀 단어와 문법을 파고들었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친구들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반에서 시작했음에도 벌어지는 격차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친구들은 내가 다시 태어나야 가질 수 있는 언어적 감각을 타고난 걸까?’
그 의문은 한동안 답을 찾지 못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비록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어보니, 당시 제가 가졌던 의문의 답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학원에 오면 학습 역량을 확인하기 위해 입학 테스트를 봅니다. 요즘 워낙 어릴 때부터 선행을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학부모님들은 아이가 늦게 시작한 건 아닌지 늘 불안해하시지만, 막상 수업을 시작하면 테스트 점수는 금세 의미를 잃습니다.
기초는 조금 부족해도 매 수업 내용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자기만의 궤도를 찾아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금방 어려운 책으로 넘어가며 눈부신 성장을 보여줍니다. 이 차이는 단지 머리가 좋아서일까요?
아담 그랜트의 저서 《히든 포텐셜》에서는 이를 ‘품성 기량(Character Skills)’으로 설명합니다. 인지적 능력보다 성공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주도력, 협력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친화력, 충동을 억제하고 집중하는 자제력,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보여주는 결의. 이 네 가지가 핵심입니다.
책은 머리 좋은 영재들만 모인 팀들을 꺾고, 우승한 할렘가 공립학교 체스팀의 사례를 가장 먼저 보여줍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체스팀의 우승 비결은 어려운 환경 속에 숨어있던 아이들의 천재성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코치는 천재적인 아이들을 선발하는 대신 품성기량이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했고, 훈련도 실수를 대하는 태도나 압박감 속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법, 즉 품성 기량을 기르는 데에 집중했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잠재력의 실체는 바로 이 품성 기량이었던 셈입니다.
어학원에서 빠르게 성장하던 친구들도 돌아보면 그랬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주어진 숙제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영어를 배울 기회를 찾아 나섰고,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갔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수업엔 빠지는 법이 없었고, 실수를 무서워하지 않고, 틀려도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해냈죠.
수학 성적이 눈에 띄게 오르는 아이들도 비슷합니다. 교우 관계가 원만하고 수업에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질문하는 데 주저함이 없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혼자서 다시 한번 풀어볼게요"라고 말하는 단단함이 있죠. 저는 이제 이해력이 조금 느리더라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끈기를 가진 학생들의 잠재력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똑똑한 친구는 지금은 앞설지 몰라도, 배움이라는 길고 긴 여정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쪽은 이런 품성 기량이 우수한 친구들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학부모님들과 상담할 때 문제집을 더 풀라는 조언 대신, 아이가 주도적으로 학습 계획을 세우고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붙들 수 있도록, 질책하기보다 격려하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실수해도 격려받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의 기량은 비로소 자라나니까요.
《히든 포텐셜》은 품성기량은 성인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갈고닦을 수 있으며, 내가 어떤 어려움을 딛고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를 성과로 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 시절 친구들에 비하면 여전히 영어가 부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안부만 겨우 묻던 21살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훨씬 ‘뻔뻔하게’ 제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다는 점에서, 저 역시 성공한 셈이라 믿습니다.
이 책이 지닌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어떤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실천법과 따뜻한 위로를 동시에 건네준다는 점이죠. 개인의 마음가짐부터 교육 환경과 사회 시스템까지, 시야가 넓은 책인데도 챕터마다 실제 사례가 촘촘해서 생각보다 술술 읽힙니다.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 분들,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이 책의 메시지가 다정한 이정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