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에디터로 일하던 시기의 어느 주말 밤이었습니다. 다섯 살 아들이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일해야 해?"
순간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일의 가치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전할 수 있을까.
"돈을 벌어야 맛있는 걸 사주지"라는 흔한 대답 대신, 일이 저에게 주는 진짜 의미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놀며 규칙을 배우고, 태권도를 하며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엄마도 일을 하면서 능력을 키우는 거야. 그렇게 엄마가 성장해야 우리 아들도 더 잘 지켜줄 수 있거든."
아이가 100%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진심을 다해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 저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 저는 대학에서 글로벌 연수 사업을 담당했습니다.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을 초청해 한국의 기술과 지식을 전하는 일이었죠. 부서 인력은 교수님 한 분과 저, 그리고 인턴뿐이었습니다. 학교 행정과 예산관리, 보고서 작성과 같은 사업 운영에 필요한 실무는 물론, 연수생들의 한국 생활 적응 돕기, 견학 가이드, 의료 동행까지 맡아야 했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다 보니 변수는 일상이었고, 새벽과 주말을 반납하며 치열하게 일했습니다. 해외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던 제게, 비록 지방 대학이었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일은 나름대로 꿈을 이룬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멋진 커리어 우먼'이 아니라, 끊임없이 실수하고 후회하며 피땀 흘리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죠.
사회 초년생이었던 제게 모든 과정은 버거웠습니다. 연수생들은 각국에서 직책이 있는 공무원들이었고 나이대도 높았습니다. 갓 졸업한 저를 비서처럼 대하며 개인적인 부탁을 해오기도 했죠. 오리엔테이션이라도 있는 날이면 전날부터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설쳤고, 처음 접하는 행정업무는 늘 실수 연발이었습니다. 취업의 기쁨은 잠시였고, 매일 아침 자존감이 깎여 나가는 기분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졌지만, 책임의 무게와 변수의 크기도 함께 커졌습니다. 일이 숙련되면 재미있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지쳐갔습니다.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내가 꿈꾸던 미래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직장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가야 하는 곳, 내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곳이라는 생각뿐이었죠.
그러다 아이를 낳으며 애증의 첫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었지만, 내심 지긋지긋한 사무실을 떠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과연 저는 행복했을까요?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깊은 우울로 가라앉았습니다. 업무 전화도, 까다로운 메일도, 답답한 행정 서류도 없는데. 그런데도 매일 아침 아이와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저 자신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토록 싫어했던 직장이 사실은 월급 이상의 것들을 주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고된 스트레스 뒤에 가려져 있던 성취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미, 한계를 극복해 내는 경험들 말이죠. 저는 긍정적인 보상들은 외면한 채, 힘든 면만 바라보며 "이 일은 하기 싫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취'와 '인정'이 제 삶에 얼마나 중요한 동력이었는지, 저는 일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4년의 경력 단절 끝에 재택근무가 가능한 에디터 자리와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학원 강사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 접하는 분야라 적응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고 업무량도 상당했지만,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 감각 하나가 고된 몸을 버티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와 노는 시간이 전부였던 아들에게, 주말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엄마는 낯설고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왜 일해야 해?"와 같은 질문을 한 것이겠죠.
학생 때는 몸과 지식이 자라며 성장하지만, 사회인이 된 후에는 무엇으로 성장할까요? 저는 '일'을 통해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막대한 시간을 일하며 보냅니다. 그 긴 시간을 그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우리네 인생은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요?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의 저자 최인아 작가는 현재 책방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주 오랜 기간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에서 근무하면서 부사장까지 올랐고, 삼성그룹의 최초 여성임원이라는 화려한 커리어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매 순간 동료들에 비해 부족하다며 자책하고 이 일이 맞는지 고민했다고 고백합니다.
"현실은 마라톤에 가깝고 일터에서의 성취는 시간과의 싸움일 때가 많습니다. 될 듯 될 듯 되지 않고, 절망하는 시간의 연속이죠. 그러다 가늘게 성취와 성장 같은 열매를 맺고요."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 -
그녀는 동료들보다 뛰어난 기발함이나 순발력은 없었을지 몰라도,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하는 '안목'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의 기쁨을 결국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믿었죠.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들이 팀의 승리를 위해 필사적으로 뛰는 모습을 봅니다. 겉으로는 팀을 위한 헌신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선수의 몸값과 내공이 올라갑니다. 직장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간들이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 나만의 '레벨'이 올라가는 것이죠.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당장 큰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혹은 월세를 내기 위한 수단처럼 느껴지더라도,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은 사실 '돈을 받으며 나를 갈고닦는 자기 계발 시간'이기도 한 거죠.
"누누이 강조하지만 일은 자신을 위해 하는 겁니다. 창업가나 자영업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직장인도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거예요. 내가 일의 주인이라 여기는 태도와 노력으로 시간의 밀도를 높이세요. 그럼 그만큼이 자기의 역량, 자산으로 쌓일 겁니다."
-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 -
물론 무조건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느꼈던 답답함은, 자유로운 기획보다 경직된 행정 시스템을 우선시해야 했던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에디터와 지금의 수학 강사 일은 자율성이 크고 아이디어를 즉각 반영할 수 있습니다. 출근하기 싫은 순간에도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훨씬 수월한 건, 아마 그 때문이겠죠. 나와 더 잘 맞는 일이 있고,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걸 직접 경험하고서야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의 시간이 낭비였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 시간 동안 몸소 배웠던 '일을 대하는 태도' 덕분이었습니다. 적재적소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차리는 센스,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눈치와 사회성은 분야가 바뀌어도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안에서 진지하게 버틴 시간은 반드시 어딘가에 쌓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내가 언제 기쁘고, 어떤 가치를 만들 때 신이 나는지 아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다음부터는 스스로를 위해 주체적인 태도로 끝까지 버텨나가야겠죠.
일은 우리 인생에 돈을 초월한 수많은 가치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니 매일 출근길을 고문처럼 여기기보다,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활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저자의 단단한 인생관은 위로가 되는 동시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정하게 보여줍니다. 일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신입부터 열정을 잃어가는 경력자까지,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