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킨 노래

feat. 앨범 <사랑>

by 앙꼬

여러분은 음악을 들을 때 어디에 먼저 마음이 가시나요? 멜로디인가요, 아니면 가사인가요?


​저는 단연코 멜로디파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들을 만큼 좋아하는 노래도 가사 내용은 한참 뒤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거든요. 가사를 곱씹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비트를 즐기는 편이라 팝송도 즐겨 듣습니다. 영어가 음악을 즐기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템포가 느린 곡보다는 비트가 확실하고 리듬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선호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취향과는 조금 다르게, 참 오랫동안 좋아해 온 가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적입니다. 부산에 살고 있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챙겨가다 보니 벌써 두어 번은 다녀온 것 같네요. 어떤 날은 그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분이 제발 오래오래 건강해서 오랫동안 음악을 해줬으면 좋겠다’라고요.


​그의 음악에 처음 빠진 건 초등학생 시절, <왼손잡이>와 <하늘을 달리다>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때는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그 신나는 리듬이 어찌나 매력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이 곡들을 부르고 나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죠. 그 어린 나이에도 나름대로 답답한 일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 후 10대에는 에이브릴 라빈과 같은 펑키한 팝송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러다 20대가 되어 처음 사귄 사람과 이별을 겪으며 다시 이적의 노래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곁을 지켜준 것이 바로 3집 <사랑> 앨범입니다.


​3년간의 첫 연애가 끝난 뒤, 저는 백지영의 노래 제목 '총 맞은 것처럼'이 단연코 과한 비유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보이지는 않지만 가슴에 총알이 지나간 것 같은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실제로 심리학적으로도 연인과 헤어지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내 일부를 떼어 놓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연애를 하면 그 사람의 우주를 만난다"는 말이 있지요. 그만큼 우리는 깊은 관계를 맺고 상대의 정체성, 가치관, 관점 등을 내밀하게 받아들이면서 내 세상이 더 큰 우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합니다. 하지만 이별을 하면 그 확장된 우주의 한 축을 강제로 도려내야 합니다. 그러니 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극심한 상실감을 겪는 것이 심리학적으로도 당연한 것이었죠.


​한동안 그 공허함을 부여잡고 일상을 버티는 게 꽤 힘들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대변해 준 것이 <사랑> 앨범의 수록곡들이었습니다.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난 어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수록곡 <빨래>


​이 앨범의 수록곡 10곡은 전부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은 인류가 노래를 시작한 이래 가장 흔한 주제라 자칫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적의 이 앨범만큼은 결코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내 이야기처럼 낯설지 않은 진심이 느껴집니다. 제 마음을 통째로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네가 없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한꺼번에 왈칵 쏟아져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눈을 가리고 돌아와 그대여 돌아와 그대여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 무력한 외침이" 수록곡 <네가 없는>


이별의 후유증으로 밤잠을 설치던 그때, 누군가 내 마음을 정확하게 대변해 주니,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저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노래는 멜로디 위주로만 듣던 제가 유독 이적의 노래만큼은 유독 가사가 먼저 들립니다. 박진영이 표현한 것처럼 멜로디가 있지만 마치 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요.


​이후의 행보에서도 그의 가사는 여전히 아름답고도 슬픕니다.


​“그리 오래 좇아온 것들 먼지처럼 부서지고 내가 알던 말들과 굳게 믿은 약속이 더는 아무 의미 없다고 서슴없이 버려지면 넌 어떡하겠니 난 어쩌면 좋겠니” <혼자였다>


"어쩌면 헛된 걸 좇듯이 허겁지겁 달려온 그날들은 어찌나 그리도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는지" <쉼표(From "영화 소울")>


​누구나 겪어본 듯한 슬픔과 아픔을 보편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언어로 길어 올리는 것. 그것이 이적 음악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인생의 단면들을 식상하지 않게 그려내는 그의 곡들을 듣고 있으면, 소란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음악이 가진 힘은 늘 놀랍습니다. 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겠지요. 세상에 없던 멜로디와 이야기에 보편적인 정서를 입혀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부산에는 비가 꽤 많이 내립니다. 우산 위로 토닥토닥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저의 옛 친구 같은 <사랑> 앨범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수십 번 반복해 듣던 그 시절에는 우울함 속에 허우적댔지만, 지금은 기분 좋은 차분함과 나른함이 느껴집니다.


​이적의 팬으로서 추천하고 싶은 곡은 참 많지만, 오늘은 <사랑> 앨범과 더불어 그 전작인 3집 <나무로 만든 노래>를 함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다행이다'가 수록된 이 앨범은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만큼 음악성을 인정받은 앨범입니다. 지금도 음원 사이트인 멜론에서 '명반' 배지가 붙어 있을 정도로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앨범이죠. 오늘 저녁, 이 두 앨범을 이어 들으며 감성 가득한 분위기로 하루를 마무리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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