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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없는 시간이라 여긴 60일, 내 안에 쌓인 것들

정량화할 수 없던, 내 안에 남은 진짜 소중한 것들

by 안차

우리는 흔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그 속도감은 우리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정신없이 바쁘게 산 것도, 의식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느새 봄의 중턱에 서있다.


지난 두 달,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거 맞나?'라는 막연한 불안 속에 자주 놓였다. 개인 프로젝트를 돌린 지도 2달, 그 간의 회고를 하며 돌아보니 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가치로 충만한’ 시기로 남아있었다. 이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 것만 같아 천천히 다시 되짚어 보려한다.



일상의 리듬을 찾아서

월요일마다 내 개인 아지트인 <별도자양>으로 찾아오는 한의사 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평일마다 찾아와 '커리어 코칭'을 부탁한 취업 준비생 분. 내가 그렇게 원하던 함께 또 따로 일하는 팀원이 생긴 것. 우리는 그렇게 독특한 팀이 되어 있었다. 루틴이란 게 꼭 엄격한 시간표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시작할 땐 몰랐지만 그들 덕분에 한 주의 리듬을 찾아갈 수 있었다.



누군가의 '필요한 귀인'이 되어가는 과정

누군가로부터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리게 됐다. 내가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있다니? 정말 새로운 깨달음이어서 적잖이 놀라웠다. '코치'라는 이름 하에 초보 선생님 역할을 하며 누군가의 성장을 도왔을 때, 내 안에서도 기쁨이 자주 피어난걸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을 케어하는 것에는 익숙해진 반면,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케어하면서 잘 성장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남의 문제는 잘 보이고, 남의 고민은 그렇게도 잘 들어주는데 정작 나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지...



별도자양 무한 연결의 공간

두 달 동안 약 30팀이 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별도자양>을 두드려 주셨다. 각자 다른 이야기, 다른 에너지, 다른 감정을 안고 찾아온 이들은 이 공간에 많은 온기를 남기고 갔다. 시간 내어 방문해 준 인연들 덕분에 우리가 만든 별도자양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다. 오며 가며 나눈 대화, 함께 지은 웃음, 공유한 고민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손님들이 떠난 뒤 그들이 던진 말 한마디에서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곤 했다.


직접 방문해 주신 분들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이어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 연결의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을 통해 기회가 피어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기도 한 시간들.



창작자로서의 꾸준함의 어려움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제로 겪어보니 깨닫게 됐다. 현재는 1인 크리에이터의 일을 돕고 있다. 그 과정 속에 있어보면서, 정작 내가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다.


그럼에도 작게, 가볍게, 뭐라도 올리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늘고 있다는 감각을 건질 수 있었다. 어디 도망가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부디 이런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다른 크리에이터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



내면의 풍요와 경제적 불안 사이에서

지난 두 달 수입은 '0원'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역대급으로 가치적으로 달성한 것들이 많았던 두 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없는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돈 버는 방법을 왜 이리도 모르는지에 대한 좌절감이 종 종 찾아왔다.


내 주변엔 정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사랑을 주고받고 있는데도 그 불안함이 자꾸만 내 시야를 가린다. 현실적인 불안과 자존감 사이에서의 아슬 아슬한 줄다리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방법만 알면 잘할 수 있다"는 근자감도 조금씩 자랐다. 나의 가능성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이 경험을 40대에 안 하고, 지금 시작해서 천만다행이란 낙천적 생각을 하며..)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60일이었지만, 가치 없는 시간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바로 숫자로 환산되진 않아도 이 시간은 내 안에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했던 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과 어려움이 아니라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실제 지난 두 달은 진심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지금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한 작은 손 편지처럼 남겨두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4월에도 순간순간을 성실히 모아 나를 잘 길러내 봐야지. 다독이면서 어찌저찌 잘 생존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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