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화할 수 없던, 내 안에 남은 진짜 소중한 것들
우리는 흔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말하지만, 그 속도감은 우리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정신없이 바쁘게 산 것도, 의식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느새 봄의 중턱에 서있다.
지난 두 달,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 거 맞나?'라는 막연한 불안 속에 자주 놓였다. 개인 프로젝트를 돌린 지도 2달, 그 간의 회고를 하며 돌아보니 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가치로 충만한’ 시기로 남아있었다. 이 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 것만 같아 천천히 다시 되짚어 보려한다.
월요일마다 내 개인 아지트인 <별도자양>으로 찾아오는 한의사 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평일마다 찾아와 '커리어 코칭'을 부탁한 취업 준비생 분. 내가 그렇게 원하던 함께 또 따로 일하는 팀원이 생긴 것. 우리는 그렇게 독특한 팀이 되어 있었다. 루틴이란 게 꼭 엄격한 시간표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시작할 땐 몰랐지만 그들 덕분에 한 주의 리듬을 찾아갈 수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리게 됐다. 내가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있다니? 정말 새로운 깨달음이어서 적잖이 놀라웠다. '코치'라는 이름 하에 초보 선생님 역할을 하며 누군가의 성장을 도왔을 때, 내 안에서도 기쁨이 자주 피어난걸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보람찬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을 케어하는 것에는 익숙해진 반면,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케어하면서 잘 성장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남의 문제는 잘 보이고, 남의 고민은 그렇게도 잘 들어주는데 정작 나에게는 왜 그토록 어려운지...
두 달 동안 약 30팀이 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별도자양>을 두드려 주셨다. 각자 다른 이야기, 다른 에너지, 다른 감정을 안고 찾아온 이들은 이 공간에 많은 온기를 남기고 갔다. 시간 내어 방문해 준 인연들 덕분에 우리가 만든 별도자양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다. 오며 가며 나눈 대화, 함께 지은 웃음, 공유한 고민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손님들이 떠난 뒤 그들이 던진 말 한마디에서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과 가능성을 발견하곤 했다.
직접 방문해 주신 분들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이어진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 연결의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을 통해 기회가 피어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기도 한 시간들.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발행한다는 것. 그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제로 겪어보니 깨닫게 됐다. 현재는 1인 크리에이터의 일을 돕고 있다. 그 과정 속에 있어보면서, 정작 내가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다.
그럼에도 작게, 가볍게, 뭐라도 올리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늘고 있다는 감각을 건질 수 있었다. 어디 도망가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부디 이런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다른 크리에이터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
지난 두 달 수입은 '0원'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역대급으로 가치적으로 달성한 것들이 많았던 두 달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기본소득 없는 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내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돈 버는 방법을 왜 이리도 모르는지에 대한 좌절감이 종 종 찾아왔다.
내 주변엔 정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사랑을 주고받고 있는데도 그 불안함이 자꾸만 내 시야를 가린다. 현실적인 불안과 자존감 사이에서의 아슬 아슬한 줄다리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방법만 알면 잘할 수 있다"는 근자감도 조금씩 자랐다. 나의 가능성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이 경험을 40대에 안 하고, 지금 시작해서 천만다행이란 낙천적 생각을 하며..)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60일이었지만, 가치 없는 시간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바로 숫자로 환산되진 않아도 이 시간은 내 안에 다양한 방식으로 축적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했던 것은 "나 혼자만의 고민과 어려움이 아니라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실제 지난 두 달은 진심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지금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한 작은 손 편지처럼 남겨두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4월에도 순간순간을 성실히 모아 나를 잘 길러내 봐야지. 다독이면서 어찌저찌 잘 생존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