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평생 안 늙을 것 같습니까?
의사 선생님은 자유로운 환자가 부럽다
엄마 차를 빌려 40분 거리에 있는 피부과에 갔다. 2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방문하는 곳이다. 아버지쪽의 유전인 듯하다. 최근 6개월 동안 2번 방문해서 3개월 치 분량의 약만 받아갔다. 3일 전 그 약을 다 먹기도 했고, 어차피 다음 달이면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야 하므로 1년 치 약을 처방 받을 마음 가짐으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상태는 좀 어때?"
"머리가 많이 빠지는 건 똑같은 거 같아요. 그런데 유독 정수리가 좀 비어보여서요. 두피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의자에서 일어나 내 옆에 있는 마이크로비디오의 전원을 켜서 내 두피에 카메라를 밀착시킨다. 화면에 나오는 건 반들거리는 뾰족한 머리카락(같은 것)과 어느 행성의 지면을 닮은 듯한 투박한 하얀 표면.
선생님은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면서 두피 상태에는 문제가 없고, 머리카락 밀도 역시 평범하다고 했다. 다만 내가 걱정한 대로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의 굵기가 얇다는 소견을 주셨다. 달리 방법이 없다. 먹던 약을 꾸준히 먹을 수밖에.
"1년치 처방 부탁드립니다."
"왜???"
3개월 치만 받아가던 환자가 갑자기 1년 치를 달라고 하니 놀라셨나보다.
"다음 달에 캐나다로 가거든요. 워홀로 2년 동안."
"캐나다는 1년 아니야?"
"작년부터 바뀌었어요. 이제 캐나다 워홀 비자 기간은 2년이에요."
"나도 캐나다로 1년 동안 워홀 갔었거든. 바뀌었구나... 부럽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듯한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보면서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여 진료 차트를 작성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사교적인 사람이라 대화할 때 편한 분위기를 금방 형성해주셔서 고민거리(탈모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 탓인지 어른보다는 똑똑한 동네 형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실제로 젊기도 하시고.
세계여행 후 진료를 받으러 꾸준히 왔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부러움을 표출한 적은 없으셨다. 그때 인도에서 받은 스트레스 탓에 탈모가 가속화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소견을 주시며, 약도 바꿔보고, 병원 샴푸도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극적인 효과를 보지 못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혹시 약이 다 떨어지면 해외배송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건 어렵다'는 간단한 제스쳐를 취했다. 아마 처방전은 환자 본인이 직접 받아야 한다는 법적인, 이른바 '어른들의 사정' 때문일 것이다.
"이틀에 한 알씩 먹어. 만약 거기서 약을 구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고."
나름 편법이다. 물론 탈모약은 호르몬제라서 원래대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1알씩 먹는 게 제일 효율이 좋을 터다. 2년 동안 한국에 한 번도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대답을 듣고 그가 전해준 꿀팁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가서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자체가 없기 때문에, 한국에 한 번이라도 돌아오는 게 과연 경제적으로 허용이 될까? 명절에 맞춰 가족들 얼굴을 보러와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차라리 깊게 집중하고 크게 성장해서 돌아오는 게 서로에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내면에서 계속 충돌하는 중이다.
탈모약 3개월 할부
같은 건물 1층에 위치한 약국에 가서 처방전을 내밀었다. 매번 오는 곳이다.
"알죠? 헌혈만 하지 마세요."
여기 약사 선생님은 심플해서 좋다. 신용카드를 꺼내 6개월 무이자 할부 결제가 가능한지 물었지만, 직원은 확답을 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3개월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은 했지만 그 역시 믿을 수 없다. 달리 선택지가 없으므로 3개월로 요청한다. 한 박스에 90알이 담긴 탈모약 4박스를 봉투에 담아 약국을 나온다. 차근차근 떠날 준비를 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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