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얼마 전 김창완 콘서트를 진행했던 모마 K 갤러리에서 촬영한 필름 사진을 인화했다.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처음 사용해봤기에 초점은 잘 맞는지, 노출은 어떤지, 화질은 선명한지 등등 종합적인 체크가 반드시 필요했다.
아래 사진 2장은 요리조리 돌아다니며 LIFE 일회용 필름 카메라(박살 나기 전)로 촬영한 사진들이다.
고저스. 하나도 보이지가 않아. 행사 당일 같이 촬영했고, 필름 현상을 대신 맡아준 작가님이 조언해주셨다.
"다음부터 실내에서는 꼭 플래시를 쓰세요."
가수가 공연하고 있는데 옆자리까지 가서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5걸음이면 서로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플래시를 터트려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공연에 방해가 되면 관람객들이 죽일 듯한 기세로 나를 쏘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번도 써보지 않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 스펙이 어느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필름 카메라의 특성상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어 어떻게 촬영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커피로 필름을 현상하기에는 아직 카메라와 친밀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일반 현상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던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괜찮다. 누구나 처음이 있으니.
일회용 필카는 어두운 실내에서 쓸 게 못 된다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도 발견했다. 카메라 렌즈 일부를 손가락으로 막거나, 초점 거리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거나 하는 등의 자잘한 이슈들. 이 모든 것들은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해소될 것들이라 크게 개의치 않도록 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손이 너무 많이 간다. 번거롭다. 귀찮다. 남들이 안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름의 감성이 있을 수는 있으나,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라 난감하다.
LIFE 일회용 카메라를 박살 냈으므로 이를 대체할 장비가 필요했다. 코닥 펀세이버가 열고 닫기 편리하며, 구하기 쉽다는 의견이 많아 중고장터에서 빠르게 구매했다.
필름을 적출한 카메라 바디만 남은 것들을 개당 2,500원에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메라와 좀 더 빠르게 친해지고 싶어 스펙을 찾아봤다.
코닥 펀세이버 스펙(예상)
조리개 : f8~10
셔터스피드 : 1/80 ~ 1/125
ISO : 200~800(필름 사양에 따라 다름)
제대로 된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코닥 공식 사이트에서조차 명확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 블로거들의 의견을 종합해 내린 결론이다.
빛이 없는 실내에서 촬영하면 어둠 + 노이즈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빛이 많은 장소 한정으로 쓸만한 카메라라는 결론이 난다. 물론 어떤 의도를 띄느냐에 따라 사진의 가치가 달라지겠지만.
선물 받은 코닥 36롤 200짜리 필름을 모두 사용했기에, 인터넷에서 새로 구매한 똑같은 필름이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현재 시간은 오후 1시 30분. 집 안 곳곳을 누벼대는 햇살 때문에 마음 놓고 필름을 교체할 곳이 없다. 유튜버 중 한 명이 '불 꺼진 화장실에서 필름을 교체하면 상당히 무섭다'는 경험담이 떠오른다.
(sound only)불 꺼진 화장실에서 필름 교체하기
https://youtube.com/shorts/6sem2nCO5Cw?feature=share
적외선 투시 안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카메라 바디를 열고, 새 필름을 꺼내 롤러에 끼우는 작업을 하는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해서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아직 필름 현상이라는 장벽이 남아 있으므로 획기적으로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사고가 터졌다. 내가 사용할 필름은 1통에 36롤인데, 필름 카운터가 39에 가 있어 수동으로 돌려댔다. 필름통의 모든 필름을 끝까지 빼내 롤러에 감은 후, 카메라 바디를 닫기 전에 와인딩을 해보았다.
그런데 와인딩이 끝나질 않는다. 카메라 바디를 닫고 해야 됐던가? 그럼 필름이 제대로 장착됐는지 어떻게 체크해야 되는거지? 머리가 아파온다.
암실에서 열심히 만지작대다가 땅바닥에 뭔가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꺼운 한숨을 내쉰다. 롤링하던 필름을 다급히 주머니에 넣는다. 화장실 문을 열어 창문 너머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으로 암실을 밝혔다.
필름 카운터를 지탱해주는 고리가 부숴진 거였다. 그때부터 와인딩을 죽어라 해도 '타닥 타닥' 필름이 롤러에 걸리는 저항 소리가 나지 않는다. 롤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여분 카메라 바디를 꺼내 다시 암실로 들어간다. 10분 가량 사투 끝에 해낸다. 알고보니 카메라 바디를 닫고 와인딩을 해야 했던 것이다.
새로운 이슈가 발생했다. 필름 카운터를 36에 설정하고 필름을 교체했는데, 셔터를 한 번 눌렀을 뿐인데 숫자는 33을 가리키고 있다. 초기값을 39에 두고 필름을 교체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