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9_출국 한 달 전의 이야기

한 달짜리라서 일을 안 주시는 건가요?

by 안승환

25년 12월은 작가, 포토그래퍼 활동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새로 만난 인연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워홀 준비에 미흡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멋지게 변명하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300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는 것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미래의 돈을 끌어다 쓴 것이기 때문에 해결책은 절대 아니었다. 급한 불을 꺼뜨렸을 뿐. 나의 목표는 분명했다.

'일단 캐나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왜냐하면 캐나다 역시 경제 불황을 피하지 못해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가 카페에서 많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2주 동안 이력서 80개를 돌렸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해 귀국하게 됐다는 후기를 보며 가슴이 철렁인다.


IMG_4890.jpg 직접 가서 방을 보겠다고 했지만 신분증, 보증금을 계속 요구하는 홈스테이 집주인

숙소라도 먼저 확정되면 정말 좋을텐데. 일자리를 구하는 것만큼 머무를 곳을 정하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감도 장난 아니다. 연락하는 집주인들이 전부 사기꾼 같아보인다. 차마 신분증과 보증금을 미리 보낼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뷰잉 약속만 잡아놓고 캐나다에 가서 직접 둘러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뚱뚱한 백팩과 무거운 캐리어 2개를 양손에 쥐고 캐나다를 휘젓고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 팔이 아파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게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단순해져 해야할 일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정신 승리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계획 같은 계획(?)을 세우니 목표가 확실해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


IMG_4438.JPG 출근 버스에서 내리면 항상 보이던 골목

그래서 12월 말부터 단기간으로 할 수 있는 알바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알바천국, 알바몬, 당근마켓 등등. 당연하게도 한 달짜리 알바생을 써주는 곳은 없었고, 일일 알바라도 10만 원조차 벌어들일 수 있는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집에서 버스로 1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물류센터에 운 좋게 일일 알바로 갈 수 있었다. 12월 22일 월요일이었고 크리스마스가 껴 있던 주였다.




IMG_4408.JPG 센터에서 지급하는 안전화지만 다 헐었고, 깔창이 딱딱해서 다리가 금방 아파진다

일일 알바였지만 근무 투입 2시간 만에 현장에 찾아온 인사담당자가 "승환씨 내일 출근 가능하세요?"라는 질문에 "네, 가능해요."라는 대답을 반복하는 것으로 2주 동안 일을 할 수 있었다. 12월 5째주부터 1월 1째주까지 평일만 10일 근무해서 100만 원을 벌었다. 당연히 12월 25일 크리스마스, 1월 1일 신정에도 출근한 덕분에 얻을 수 있던 기회였다. 2주를 더 일하면 100만 원을 추가로 벌 수 있으므로 자금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터였다.


IMG_4427.JPG 버스정류장에서 옆 사람이 깜빡하고 갈아신지 않은 안전화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나의 시선

저녁 6시 30분 퇴근하고 버스가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올라타면 7시 50분 쯤 집에 도착한다.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배가 너무 고픈 상태라 과식을 피할 수 없다.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다음 날 낑낑대며 아침 6시쯤 눈을 뜬다. 7시 45분 버스를 타야 제시간에 물류센터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주 동안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주말은 지인들과의 선약을 지켜야 하므로 근무를 할 수 없으니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했다.


IMG_4410.JPG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주는데도 사람들은 밥맛이 없다고 불평한다

2026년 1월 1일부터 물류센터를 담당하는 업체가 바뀌면서 사소한 변화가 인 듯 했다. 다음 주에도 출근할 수 있냐고 먼저 물어오던 인사담당자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일을 잘하지는 않았지만 못한 것도 아니었다. 딱 신입만큼 했다. 오죽하면 현장 사람들이 "승환씨 이쪽 분야에 소질 있네~"라고 칭찬해주었을까.

물류센터의 연락을 무한정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쉽지 않다는 쿠팡 알바에 도전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원서를 넣었지만 매번 탈락했다. TO 선착순 안에 들어야 근무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라는 문자를 받아야 했다. 일을 하고 싶다고 열심히 어필하는데 아무도 내 시간을 사 가려고 하지 않는다. 남은 2주 동안 우연히 연락을 받은 동일한 물류센터에서 근무 1회, 샤브샤브 매장 저녁 설거지 알바 1회에 그쳤다.

나는 이 애매한 1달이 정말 짜증났다.(짜증이 짜증을 낳는다는 말을 해주신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여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이것만큼 당시 내 심정을 토로할 완벽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3개월이라도 남았더라면 공장 알바라도 해볼텐데. 공장에서조차 1월 혹은 2월까지 쭉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인종, 나이, 학력 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로 일할 수 없는 현 상황이 답답했다. 오죽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을까.




대출 승인 이후 나는 모든 게 편안해졌다. 300만 원이면 숙소를 구하고 그 전에 잡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것을 해탈한 듯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은.

스물아홉 살 때 처음 떠난 세계여행을 떠올려보면 모든 게 낯설고, 언어의 장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다. 시작점이었던 인도 뉴델리의 작은 마을 마히팔퍼에 도착했을 때, 한글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돌이켜보면 엉성하더라도 당시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겨놓으려고 했던 게 정말 잘 했던 것 같다. 글쓰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일기조차 쓰지 않았다. 영상 PD로 일을 하다가 퇴사했기 때문에 그 경험을 살려 유튜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떡락한 재미없는 유튜브 영상이었지만, 덕분에 시간이 지나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는 소스로 적극 활용할 수 있었다.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간다는걸 새삼 깨닫는다.


2년이라는 캐나다로 떠나지만 전혀 떨리거나 두려운 마음이 없다. 분명 처음 가는 워킹 홀리데이인데. 서투른 영어 실력으로 떠나는 영어권 국가인데 왜 그럴까? 서른 살이 넘어서 그런가? 아니면 세계여행을 통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깨달아버린 탓일까?

바라던 만큼 영어 공부를 하지 못한 건 분명 크게 아쉬운 점이지만, 이제 와서 급하게 준비한다고 한들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더 이상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반복해 듣는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연설 영상을 꾸준히 시청한다. 내용이 좋아서 달달 외우다보니 15분짜리 전체 영상의 60%를 그의 입모양에 맞춰 따라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있어 성서 같은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나를 오염시키려 들 때마다, 그의 인생담을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따라 외우는 것은 자신감을 형성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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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어깨 수술을 해서 입원해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엄마와 급하게 대구로 향했다. 댁에 먼저 가서 할아버지와 점심 식사를 하고 혼자 계실 할머니 병실로 향했다. 할머니가 몸져 누워 계실거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혼자서 걸어다니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보이셨다. 오래 전 오른쪽 어깨에 수술을 받았는데 그게 안 좋은 증상으로 되살아난 것이라고 했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캐나다 안 가면 안되겠나?"

3일 후 캐나다로 떠난다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옆에서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물으셨다.

"네."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씁쓸해하셨고, 할머니는 애써 괜찮다며 나의 앞날을 응원해주셨다. 하필 떠나기 전에 할머니 건강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어 나도 당황스럽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내가 반드시 떠나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관계에 얽혀 정신적으로 만족할 만한 여유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가족들과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영어를 능숙하게 익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고, 한국을 벗어나도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세계여행을 통해 경험했다.

나는 낯선 환경이라도 악착 같이 살아남아 미래의 내 시간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기 위해 떠나야만 한다. 연락을 자주 드리겠다는 약속을 끝으로 집으로 향했다. 엄마와 단 둘이 차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IMG_4708.JPG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출국일을 기다려왔다

출국일이 코 앞에 두고 여자친구가 생겼다. 배울 점이 많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다. 나를 정말 좋아해준다. 그녀에게 정말 감사한 것은 자신이 살아온 경험에 빗대어, 오히려 멀리 떠나는 나를 응원해준다는 것이다. 깊은 생각에 따른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그녀의 모습에 반했다.

대신 안심할 수 있도록 꾸준히 연락만 해달라고 했다. 이럴 때만큼은 약간의 거짓말을 해도 좋으련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여자친구가 조금 서운할 것을 알면서도 "캐나다 입국해서 처음에는 정신이 없을 것 같아요. 많이는 아니지만 저도 자주 연락하려고 노력할게요."라고 말했다. 그거면 된다고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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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으로 어질러진 방, 28인치 캐리어(위탁수하물), 20인치 캐리어(기내수하물)

19일이 되어서야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출국인데 싸야할 짐이 산더미다. 장롱에서 세계여행 때 썼던 50L 배낭을 꺼내 진공포장한 이불, 전기장판, 방한용품 등을 넣었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크게 당황하고, 독립출판 북페어 때 열심히 던 28인치 캐리어를 가져와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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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적지는 캘거리다. 밴쿠버를 경유해 국내선을 타고 이동한다. 20일 저녁 6시 55분에 에어캐나다를 타고 인천공항(ICN)에서 밴쿠버 국제공항(YVR)로 향한다. 이유 모를 원인으로 5분 지연되었다는 사전 안내를 받고 괜시리 걱정된다. 몇 달 전 에어캐나다 파업으로 몇몇 워홀러들이 지대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카페에서 접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하려고 아둥바둥하지 않는다. No plan is the best plan인 것이다.

시차 탓에 캐나다 밴쿠버 현지 시간으로는 20일 오전 11시 50분에 도착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다. 짐을 싸다가 뜬금없이 날아온 항공사의 온라인 사전 체크인 요청을 받고 급하게 처리한다. 세계여행 할 때 프랑스->모로코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체크인을 하지 않아서 현장 수수료를 부과했던 뼈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캐나다 밴쿠버행 사전 체크인을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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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세계여행 할 때 경유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공항 노숙을 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그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마침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때 나는 정말 자유로웠다.(이제서야 그게 자유였다는 걸 깨닫는다) 먼지가 풀풀 풍기는 땅바닥에 침낭 덮고 피곤에 찌들어 눈꺼풀이 감겼던 비위생적인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금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밴쿠버에서 공항 노숙을 해보자!'

설렌다. 20일 밴쿠버에서 바로 캘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공항 노숙을 하기 위해 21일 새벽 05:30 캘거리행 웨스트젯의 항공권을 끊었다.(최저가 항공권이기도 하고, 1일치 숙박비를 아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캘거리행 비행기는 추가금을 내고 위탁수하물을 별도로 추가해야 했는데, 항공권 10만원과 동일한 가격이었다. 놀라웠다.

위탁수하물 때문에 쓰는 돈이 아까워서 짐을 포기할까 했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 같은 불행이 너무나 선명해서 당근에서 급하게 구매한 20인치짜리 기내용 캐리어에 짐을 꾹꾹 눌러담기 시작한다. 캐리어가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잘 하고 있는 짓인지 모르겠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빠트린 짐은 없는지 재차 확인한다. 욕심을 비우고 필수품만 담았는데, 몇 번을 확인해도 모든 게 필수품으로 보인다. 놀라운 심리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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