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벗어날 때 어김없이 시련이 찾아온다. 그러나 시련은 시련이 아니다.
드디어 20일이 되었다. 어떤 긴장이나 설렘 따위 없이 집 근처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엄마는 연차까지 써가며 큰아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려고 핸들을 잡았다. 하필 오늘 한파 주의보가 내려 손가락이 금방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엄마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마음만은 포근하게 인천공항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모바일 티켓 QR 코드를 꺼내려 했지만, 휴대폰 화면이 먹통됐다. 종종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하필 지금... 내가 쓰는 아이폰 13프로의 배터리와 액정은 부품을 구매하여 직접 교체하기 때문에 부품이 불량이면 간혹 이런 이슈가 생긴다. 어처구니가 없다. 기사님이 직접 처리한다고 해주셔서 일단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어로 말이 통해서 다행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오후 1시다. 밴쿠버행 비행기는 저녁 6시 55분인데,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찍 왔다. 우리는 1층 햄버거 가게에서 마주 보고 앉아 점심을 먹었고, 그녀에게 깜짝 선물로 노란색 장미꽃 1송이와 손편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다.(인천공항 1층에 꽃집이 있더라)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연인으로 발전한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5개월 전 처음 만난 사람과 무슨 추억이 이리도 많은지.
국제선은 대개 3시간 전부터 체크인을 시작한다. 오후 4시부터 에어캐나다 데스크를 찾아갔는데 이미 엄청난 줄을 이룬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없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줄을 잇는 또다른 줄에 섰다. 오늘 안에 출국을 할 수 있을까?
40분이 지난 후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여자친구과 같이 서 있었기 때문에 직원이 헷갈리지 않도록 '저 혼자 체크인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최종 목적지가 밴쿠버이신가요?"
"네. 아, 아니 밴쿠버를 경유해서 캘거리로 가려고요."
"네? 캘거리요?"
직원에게 미리 인쇄해온 에어캐나다 밴쿠버행, 웨스트젯 캘거리행 탑승권 종이를 내밀었다. 승무원은 20일 밴쿠버, 21일 캘거리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더니 문제 없다며 다음 절차로 넘어갔다. 운항 항공사가 다른데, 같은 날 이동하는 게 어떤 문제가 되는건가? 구체적인 이유를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
"오늘 만석이라 기내 캐비닛 자리가 없을 수도 있어서요. 원하시면 소지하고 계신 수하물을 전부 무료로 위탁수하물 접수해드릴 수 있습니다."
"진짜요? 그럼 이것도 부탁드릴게요."
28인치짜리 캐리어에 이어 20인치짜리 캐리어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렸다.
"안에 전자제품은 없는거죠?"
아차... 카메라, 액션캠 등 모든 전자기기를 20인치 캐리어 안에 욱여 넣었다. 어쩔 수 없이 캐리어를 들고 타겠다고 했다. 흔치 않은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버린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버리고 갈 수는 없다.
여자친구와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출국 절차를 밟으러 보안 검색대로 이동했다. 검색은 5분 만에 끝났다. 이럴거면 그녀와 더 오래 있다가 올 걸...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탑승구 앞 식당에서 저녁으로 사온 타코를 꺼내 먹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야경을 실컷 찍을 수 있다는 만족감도 잠시, 화장실을 가려면 옆의 2명을 제치고 나가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았다.
'다음부터 4시간 이상 비행은 꼭 복도 자리로 가야겠다'
어차피 밤 비행기라 창밖으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잠을 마음껏 잘 수도 없어 뜬 눈으로 10시간을 보낼 생각에 아찔해진다.
머지 않아 저녁 기내식이 나왔다. 분명 아침 식사만 포함이었던 것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니까 일단 받아먹는다. 김치의 청량함이 잊히질 않는다. 처음 맛보는 신선함. 또 먹고 싶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20일 저녁 6시 55분에 떠났는데, 캐나다 밴쿠버의 시계는 20일 오후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과거로 날아온 듯한 기묘한 기분이다. 커뮤니티에서 미리 접했던 정보를 토대로 'Immigration'이라는 표지판을 찾아다녔다. 공항 직원들에게 길을 물어 그들이 가리키는대로 따라가다가 입국 심사대 앞에 섰다. 어라, 이게 맞나? 나 같은 워홀러들은 별도의 줄을 서는 게 아니었나? 당황스럽다.
"Work permit here?"
직원들에게 여러 번 물어 안내받은 줄 위에 섰다. 심사관에게 여권과 Work permit 서류를 보여주니 어떤 영수증에 도장을 찍어주며 Immigration Center로 가라고 했다.
다시 길을 헤매이다 경비복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Immigration이 어딘지 물었더니, 그가 지키고 있던 등 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문지기였던 것이다. 문 너머에는 4명의 심사관과 그 앞의 벤치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남자 1명이 있었다. 나는 그의 옆옆옆 자리에 앉았다. 생김새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눈치껏 행동했다. 잠시 후 저 멀리 있는 심사관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심사관에게 여권, work permit, biometric 서류를 내밀었다. 긴장됐다. 왜냐하면 모든 서류를 챙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금증명서'를 빼먹었다. 커뮤니티에서도 이걸 요구하는 심사관은 본 적 없다는 후기를 많이 봤지만, 만약 내게 그 일이 일어나면 난감하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심사관의 말에 최대한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듣긴 어렵지만, 'Phone, address'만큼은 명확히 들린다. 내일 캘거리로 이동할거라는 내 말을 들은 심사관은 잠시 기다리라며 여권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옆자리 심사관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 캘거리 가?"
"내일 새벽 비행기로 갈 거예요."
예정대로 밴쿠버에서 공항 노숙을 하고 내일 새벽 5:30 비행기로 캘거리에 갈 예정이었다.
"듣자하니 너도 한국인 같은데, 내가 하는 말을 이 사람한테 좀 전해줄래?"
심사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더니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정쩡하게 난 수염에 빼짝 마른 몸매.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보이는 한국인 남성이었다.
"한국인이세요?"
"네. 제가 영어를 못 해서요. 이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심사관이 길게 말해대는 바람에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센터 내의 Work permit을 발급해주는 프린터가 고장난 상태라 2시간 뒤에 다시 확인하러 오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만약 그때도 Work permit을 받지 못하면 7일 이내로 이메일 또는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들은 말을 나름 의역해서 그에게 전달해줬다. 안타깝게도 뭔가 복잡한 상황에 빠진 듯하다. 그는 혼란에 빠진 듯하다. 참 안 됐다. 그때 나를 담당하는 심사관이 돌아오더니 말했다.
"너도 똑같아."
"네?"
물에 빠진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도 물에 빠진 처지였던 것이다. 센터의 프린터 이슈로 Work permit을 받을 수 없었다. 심사관에게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Tim holten 매장 옆의 Border 어쩌고를 2시간 뒤에 가서 확인해보라는 답을 받았다. 아니면 내일 밴쿠버 공항으로 다시 와야 하거나 또는 기재한 집 주소에서 우편으로 받거나 선택하란다.
"It's up to you."
자신은 알 바 아니라는 무책임한 그의 태도가 얄밉다. 그러면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너네 친구 아니야? ㅋㅋ"라는 농담섞인 심사관의 말투에 꿀밤을 쥐어박아버리고 싶었지만, 캐나다 입국 여부가 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드럽게 웃으며 "아니, 오늘 처음 만났는데?"라고 넘겨야 했다.
나는 내일 새벽 비행기로 떠나야 하고, 옆자리 남자는 4시간 뒤에 캘거리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렇게 입국 심사장을 나왔다. 여권에 아무런 스탬프가 찍혀 있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온라인으로 모든 입국 절차가 처리되었다는 심사관의 믿기 애매한 답변을 믿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새로 발급 받은 여권과 eTA에 대한 것을 깐깐하게 묻지 않았다는 것. 2024년 인비테이션을 신청할 때 사용한 여권의 만료 기한이 2026년 12월이었던 탓에 급하게 새로운 여권으로 발급 받은 뒤 7$를 지불하고 새로 eTA를 등록한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심사관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특히 자금증명서는 힙색 안에 소지하고 있는 1,000 CAD가 전부였으므로, 만약 해당 서류를 요청하면 굉장히 난감해질 뻔 했다. 가끔은 이런 배짱이 필요한 때도 있다.
어쩔 도리가 없으니 안내 받은 장소로 이동했다. BSD 어쩌고 였는데 information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Canada Border Services Agency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창구 직원을 통해 우리의 Work permit 서류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심사관에게 언제 Work permit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까?"
그녀는 내게 따지듯 물었다. 벽 위에 걸린 시계는 12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입국심사대를 떠난 지 고작 15분이 지났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2시간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때도 없으면 7일 이내에 우편으로 받아야 한다고.
옆자리 남자는 내게 감사하다며 자신이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워홀러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진 않아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의점 커피를 부탁했다. 그러나 밴쿠버 공항에서 어떤 편의점도 찾을 수 없었다.
커피를 놓고 마주 앉아 통성명을 했다. 종환님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나보다는 형인 듯했다. 한국 사람들이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문화가 내게는 어색하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할 생각으로 왔다고 한다. 건설 현장은 체력만 쓰면 되니까 영어는 상관없지 않겠냐고 한다. 나보다 더 용감한 것 같다.
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오늘 밴쿠버 공항에 갇혔을 거라며 고맙다고 했다. 연락처를 교환한 뒤 공항 WiFi를 연결해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미리 신청한 캐나다 통신사 연결을 마무리하자마자, 커뮤니티에 '만약 Work permit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라는 질문 글을 올렸다.
내가 계획한 일정은 아래와 같다.
1. 밴쿠버 공항 입국
ㄴ Work Permit 수령
ㄴ SIN Card 발급
2. 밴쿠버 Downtown으로 가서 TD Bank 은행 계좌 및 카드 개설
3. 지인과 저녁 식사
4. 밴쿠버 공항 노숙
5. 캘거리 도착
6. 숙소 계약
7. 운전면허증 및 도서관 카드 발급
8. 잡 오퍼
SIN Card는 일을 구할 때 고용주에게 제출하는 외국인 등록번호 같은 것이다. 근로계약을 할 때 Work Permit과 SIN Card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Work permit이 있어야 SIN Card를 발급 받을 수 있다. 만약 오늘 Work Permit을 받지 못하면, 우편으로 받을 때까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꼬인다. 종환님과 나는 적은 자금으로 워홀을 떠나온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커뮤니티에 올린 질문 글에 답글이 달렸다. 종종 입국심사 센터의 프린터가 고장나서 발생하는 이슈라고 한다. 7일 이내 우편으로 Work permit을 받을 수는 있지만, 최선의 방법은 2시간 후에 Work Permit을 직접 받아보는 거라고 했다. 감사의 댓글을 남기고 이 사실을 종환님에게 말했다.
"종교는 없지만 모든 신께 빌어보죠."
그가 바짓가랑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했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러는 와중에 백팩을 열고 닫다가 지퍼가 터져 버렸다. 짐을 무리하게 많이 넣은 탓이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도 문제가 생겼다. 메인폰, 서브폰을 한 개씩 가져왔다. 주로 사용하는 아이폰 13 Pro의 액정이 가끔 먹통이 되는 이슈가 있어, 서브로 사용하는 아이폰 11 Pro에 eSIM 통신사 등록을 했다. 그런데 서브폰마저 얼마 못 가 배터리가 광탈하는 문제가 생겨 전원이 꺼져 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종환님의 손재주가 좋아 백팩의 지퍼는 금방 고칠 수 있었다.
오후 2시 20분이 되어서야 다시 Agency로 갔다. 아까와 다른 직원이 말을 건다. 여권을 건네주며 Work permit을 찾으러 왔다고 한 뒤 벤치에 앉았다. 유리창으로 분리돼 있어 직원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직원은 어떤 서류가 한가득 담긴 파일철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 여권을 대조해가면서 서류들을 훑어나갔다. 나는 종환님과 마른 침을 꼴깍삼키며 그녀의 행동을 주시했다.
한참 후 그녀가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내 것일까? 종환님의 것일까? 나도 사람인지라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내 서류였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한 장을 더 꺼내든다. 그러더니 뒤를 돌아 우리를 부른다.
그토록 갖고 싶던 Work Permit 이었다. 커뮤니티 사람들의 조언대로 만료일이 2년인지, 내 이름과 출생 정보 등이 잘 적혀 있는지 모두 확인했다. 종환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하다. 직원에게 감사를 전했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크하게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커뮤니티에서 미리 찾아온 정보를 토대로 화요일은 SIN Card를 밴쿠버 공항에서 발급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SIN Card는 Service Canada에서 처리하는데, 공항 내 담당 창구는 SUCCESS라는 이름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 왜 창구 이름을 연관성 없는 것으로 지었을까. 우리 같은 워홀러들로 엄청난 줄이 있을 거라 걱정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늦게 와서 그런 것일까?
오후 3시. 직원에게 주의사항을 듣고 그가 내미는 종이에 부모님 성함, 캐나다 현지 주소를 적는 것으로 10분 만에 SIN Card 발급 절차가 끝났다. 종환님은 내게 다시 한 번 큰 신세를 졌다고 감사를 전하며 캘거리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
밴쿠버에 나도 모르는 지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현경씨. 예전 직장 다닐 때 그녀가 우연히 대표님을 만나러 한국에 왔었는데, 단 몇 시간 같이 있었던 게 전부였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해본 기억도 없다. 그래서 그녀가 나를 기억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2달 전, 내가 책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듣고 먼저 연락을 해주었다. 게다가 구매를 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했다고 한다. 밴쿠버에 오면 일자리를 알아봐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캘거리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아쉬워했다.
단순히 공항 노숙할 생각으로 캘거리행 비행기를 조금 늦춘 거였는데, 뜻밖의 기회가 닿아 현경씨와 잠깐 만날 수 있게 됐다. 티켓을 사려고 자판기를 두드렸는데 Zone 1, 2, 3가 뭔지도 모르겠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므로 마음 편하게 DayPass를 구매했다.
Work Permit 때문에 정신이 없던 나를 위해 현경씨가 TD Bank 예약을 해주었다. 약속 시간인 4시에 맞춰 Oakridge 41st Avenue 역 앞의 TD Bank 지점에 갔다. 로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키 작은 동양인 한 명이 웃으며 다가와 미팅 룸으로 안내했다. April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한국어를 쓰지 않는다. 왜지? April은 태국인으로 캐나다에 영주권을 따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어째서 현경씨가 한인 텔러로 예약하지 않은 것인지 원망스러워진다.
현경씨가 내 사정을 April에게 미리 설명한 덕분인지, 아니면 내가 첫 만남부터 '저 영어 잘 못해요.'라고 자수한 탓인지 April은 걱정 말라고 했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밴쿠버의 첫 인상은 어땠는지 등 그녀와의 스몰 토크가 시작됐다.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고 자수하듯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April이 하는 말을 이해하고 대답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아니, 밴쿠버 공항에 입국해서 심사를 받을 때도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내 영어 실력이 그 사이에 늘었나? 그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미드나 영화 등 영어로 된 콘텐츠를 보지 않았다. 그나마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교 연설 영상을 반복해서 본 것뿐인데. 진짜 모르겠다.
캐나다와 한국의 은행 시스템은 차이가 있었다. 한국은 계좌 1개에 여러 카드가 연동되지만, 캐나다는 반대였다. 카드 1개에 여러 계좌가 연동되는 것이다. 통장의 저축액을 사용하는 Debit Card와 신용 점수로 사용하는 Credit Card가 있다. 계좌도 2종류인데 매일 필요한 만큼 편하게 사용하는 Chequing Account, 4%대의 높은 이율로 금리를 우대해주는 Saving account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마침 TD Bank에서 500$를 제공해주는 프로모션도 있는데, 이에 대해 빠짐없이 설명을 들었다. 솔직히 April이 친절히 설명해줘도 전부 이해를 못할 뿐더러, 충족 조건이 정해져 있어서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라고 하니 April이 말했다.
"너 영어 잘 해. 전혀 걱정하지마. 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봤지만, 너처럼 내 말을 이해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어. 넌 분명 잘 할 거야. 걱정 마."
Debit Card의 비밀번호 설정을 위해 April을 따라 프런트 데스크로 향했다. 그때 벤치에 앉아있던 현경씨와 그녀가 데리고 온 일본인 친구를 발견하고 급하게 인사했다. 그때가 오후 5시였는데 미팅 룸에 다시 들어가 April과 나머지 절차를 마무리하고 나왔더니 오후 5시 50분이 되었다.
April은 만약 은행이나 캐나다 생활하다가 어렵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명함과 왓츠앱 번호를 알려주었다. 나의 첫 캐나다 계좌 개설은 2시간이 걸려서야 끝났다.
저녁 6시. 현경씨를 따라 그녀의 남자친구가 근무하는 스시 가게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올해 밴쿠버에서 소소하게 결혼식을 올릴 거라는 그녀의 말에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활동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오기도 했으니 생뚱 맞은 제안은 아니었다.
일본인 친구의 이름은 치히로라고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가 맞다고 했다. 너무 순둥순둥해서 사기를 잘 당할 것 같다. 현경씨와 치히로는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것 같은 오래된 연을 맺은 친자매처럼 보였다.
은행에서 계좌 개설했던 일을 이야기했더니 현경씨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아무리 길어도 30분이면 끝날 일을 2시간이나 끌고 있으니 내 신용 정보가 의심스러웠다고 한다. Critical Issue(범죄경력)가 있어서 계좌 개설이 안되는 건지 궁금했다고.
이때서야 April과 현경씨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에 나를 위해 한인 텔러로 찾아봤는데 밴쿠버 공항에서 너무 먼 지점에 있어, 두 손에 무거운 짐을 끌고 있을 내가 불편할까봐 그나마 공항에서 가까운 Oakridge 41st Avenue 역 앞의 지점으로 잡아준 거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고 걱정이 많이 되는 Job 구하기, 레쥬메 작성하기, 마약 피하기 등 꿀팁을 전해들었다. 영주권을 가진 현경씨의 생생한 경험담은 커뮤니티에서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승환씨 영어 진짜 잘 해서 놀랐어요. 거짓말 아니고 워홀러 중에서 상위 30%예요. 대부분의 워홀러들은 아예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주방 말고 서버로 잡 구하셔서 팁 받고 일하세요."
여기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칭찬을 많이 할까. 쑥스러워진다. 동시에 '내가 그 정도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 못하는 상황도 많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장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밴쿠버 공항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은행 방문, 현경씨와 저녁 식사 일정을 잡은 거였는데 정말 잘한 것 같다. 덕분에 큰 용기를 얻었다. 식사 비용은 현경씨가 지불했다. 언젠가 그녀와 친구들에게 멋진 보답을 해주리라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주방에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인사를 했는데,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했다. 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들 친절할까. 그의 말 한마디만으로 이미 마음 속 짐이 녹아내린 기분이다. 감사하다.
저녁 9시가 되어 현경씨 집으로 이동했지만,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미뤄두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20분 정도 집에 머물다가 나왔다. 현경씨가 스시 매장에서 먹다 남은 음식들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려고 한다. WiFi로 잡은 Map을 보며, 현경씨의 집에서 도보로 30분 이상 걸어 지하철 역으로 이돟안다.
아닌 밤 중에 총 33Kg의 캐리어 2개를 끌고 바퀴 소음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잠 자는 사람들을 깨울가봐 부담스러웠다.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간 덕분에, 지하철을 타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내 벤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선점해버렸다. 한참을 헤매다가 공항 구석 ATM 옆에 주인없는 벤치를 발견했다. 떡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쓴 모자에서 시큼한 냄새가 내려오는 듯하다. 이빨은 이틀 째 닦지도 못해 텁텁한 느낌이 난다. 빨리 샤워를 하고 싶지만 정해진 숙소 같은 게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 가서 이빨이라도 닦을까 싶었지만, 어느 캐리어에 칫솔과 치약을 넣었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아 포기했다.
엄마가 비상금으로 쓰라고 조용히 보내준 200만 원을 되돌려 보냈다. 처음부터 엄마가 금전적으로 지원해줄 것 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독립할 나이가 됐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는 내가 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라서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라도 말이다. 늙어가는 엄마의 시간을 더 이상 빨아먹고 싶지 않았다. 내 선택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야 한다.
세계여행 때 경험을 떠올리며 와이어와 자물쇠를 이용해 벤치와 캐리어, 배낭을 한 몸으로 묶었다. 이렇게 했는데도 도난 당하면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3시간 후 체크인을 위해 알람 설정을 해두고, 패딩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수면 안대로 눈을 가렸다. 서서히 졸음이 몰려온다. 이렇게 깨지 않고 깊이 잠들고 싶다. 캘거리에서는 어떤 놀라운 에피소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