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덮지 않고, 천천히 회복하기로 한 이유
한 장이 끝났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의 설명을 듣지도,
어떤 해석이 달라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모든 일에
마무리의 언어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일은
설명 없이 끝난다.
가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급해졌다.
빨리 다음을 준비해야 했고,
빨리 괜찮아져야 했고,
빨리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보여야 했다.
하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느렸다.
상처는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움직이지만
안에서는 계속 멈춰 있다.
그 상태로 결정을 내리면
속도는 나지만 방향이 흔들린다.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상처를 직면하기로 했다.
억울함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일로 인해
내 기준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구조를 지키는 선택이
사람을 설명하지 않은 채 지나가기도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나의 기준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들을 남겨두셨다.
뜻밖의 위로,
예상하지 못한 격려,
그리고 한 곡의 노래.
“눈물로 지켜낸 자리 위에
심어진 믿음의 씨앗은
이제 다른 길에서도
분명히 자라날 것입니다.”
그 가사를 들으며 알았다.
모든 자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자리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해명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집중한다.
조급함으로 시작하지 않고
회복 위에 다음을 쌓는 사람.
상처를 부정하지 않지만
상처에 머물지도 않는 사람.
가정이 있기 때문에
나는 빨리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늦게 배웠다.
그래서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회복하고,
그 위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