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편식가의 제멋대로 독서일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하루치씩 쌓아 올린 일상은 어느 순간 견고한 메커니즘이 되어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나치게 익숙해져 알아차리지 못한 수감생활. 하지만 어느 날 그 감옥이 무너진다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흑사병으로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금 일상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흑사병이 발생하고 알제리의 해변도시 오랑은 외부와의 연결이 두절된다. '하늘 아래 감금당한 죄수’(실제로 카뮈는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페스트’가 아닌 ‘수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자 했다.)가 돼버린 오랑시 사람들은 달라진 환경에서 감정의 화학적 변화를 경험한다.
우리들의 생활을 이루고 있던 감정, 더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했다. 배우자를 퍽 끔찍하게 믿어오던 남편들이나 애인들이 문득 질투심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이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긴다고 스스로도 인정하던 남자들이 다시 성실해졌다.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도 거의 어머니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관심하게 살던 아들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어머니 얼굴의 주름살 하나에도 자기들의 모든 불안과 후회를 떠올리는 것이었다.
재앙에 직면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신문 기자 랑베르는 죽음의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자살을 시도했던 코타르는 병으로 모두의 불행지수가 높아지자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 반면 의사 리외를 비롯해 타루, 그랑은 보건대를 조직 있는 힘을 다해 만연한 죽음과 싸운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에게도 희망은 없다는 사실. 이 싸움이 ‘끝없는 패배’임을 알지만 페스트가 생겼으니 막아야 한다는 게 이들이 닿은 뻔한 결론이다.
일상의 감옥은 거대한 감옥 앞에 무력해졌다. 저마다의 고독에 빠져있고,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오랑을 빠져나가려 했던 랑베르는 탈출 기회를 눈앞에 두고 생각을 바꾼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고, 지금 이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결국 모두와 관련된 일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의 괴로움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이 아닌 것이 없으며, 혼자서 고독하게 슬픔을 겪어야 하는 일이 너무나 잦은 세계 속에서 그 같은 사정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에서 참았던 것이다. 『페스트』中
지금 나의 삶에 최적화된 생활패턴. 일상은 어쩌면 효율적이지만 늘 보던 것만 보고, 느끼는 것만 느끼기 쉽다. 익숙하게 굳어져 다름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상태. 자신만의 성에 갇혀 타인과의 접점을 잃어버린 삶. 일상의 감옥은 이런 게 아닐까? 페스트 이전이나 이후나 일상은 건재하다. 다만 그 일상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