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맥도날드는 왜 빨간색이 아닐까

교토의 경관 규제가 도시를 만드는 방식

by 멸치아몬드

교토의 거리를 걷다 보면 누구나 시각적인 편안함을 느낀다. 높고 위압적인 빌딩도, 시선을 강하게 끄는 화려한 간판도, 유명 연예인의 얼굴이 인쇄된 대형 광고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지막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 튀지 않는 차분한 색의 간판들, 그리고 산과 하늘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토다움’은 아마 이런 풍경일 것이다.


교토는 일본에서도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경관 규제를 시행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교토의 스카이라인과 색채는 2007년에 도입된 신경관정책(新景観政策)의 결과물이다. 건축물 최고 높이 31미터, 원색 사용 금지, 옥상 간판 금지 등이 핵심이다. 이러한 규제는 때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토를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고 있다.


왜 하필 31미터인가


과거 교토는 일부 상업지역에서 건축물 높이를 최대 60미터까지 허용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준을 대폭 강화해 대부분의 지역에서 31미터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구의 성격에 따라 12·15·20·25·31미터로 세분화해 관리한다.


31미터라는 숫자는 임의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첫 번째 기준은 “현대식 8층 건물이 가능한가”였다. 일반적인 층고를 고려하면, 약 31미터는 되어야 무리 없이 8층을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기존 고도지구 체계에 이미 31미터라는 단계가 존재했다는 행정적 연속성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경관이다. 31미터는 교토고쇼와 니조성을 비롯한 주요 사찰과 신사의 건축물 높이(대략 15~25미터)를 크게 넘지 않으면서, 시내 어디에서든 주변 산의 능선을 가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다.


고도 기준이 강화된 데에는 교토타워와 교토역사의 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세워진 교토타워(131미터)는 설계 단계부터 시민사회와 학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건물’이 아닌 굴뚝이나 전주와 같은 ‘공작물’로 등록하면서 높이 제한을 피해 갔다. 1997년 헤이안 천도 1,200주년을 기념해 완공된 교토역사(약 60미터) 역시 시가 해당 지역을 특례지구로 지정하면서 가능했다.


두 건물은 건설 과정에서 큰 논란과 사회적 갈등을 남겼다. 오늘날 교토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불리는 이 두 건물이 동시에 교토의 스카이라인을 깨뜨린 사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세로만큼이나 엄격한 ‘가로’


교토의 규제는 높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건축물의 가로 폭, 즉 너비에 대한 규제 역시 엄격하다. 이는 교토를 상징하는 전통 주거 형태인 ‘쿄마치야’가 만들어온 독특한 가로 경관을 지키기 위한 장치다.


과거 교토에서는 집의 너비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었다. 이 때문에 도로에 면한 폭은 좁고, 안쪽으로 깊숙이 이어지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이를 ‘장어의 침대(우나기노네도코)’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도 현대식 건물이 이 흐름을 단절하지 못하도록 규제가 이어지고 있다.


대형 건물을 지을 때 하나의 긴 벽면을 통째로 세우는 것은 제한된다. 가로 폭이 일정 길이(대략 10~15미터)를 넘으면 외벽을 물리적으로 꺾거나, 재질을 바꾸거나, 수직 요소를 추가해 여러 채의 작은 건물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해야 한다. 여러 필지를 합쳐 개발한 경우에도 저층부만큼은 기존 필지의 리듬을 살려 디자인을 분절하도록 유도한다. 보행자가 느끼는 압박감을 줄이고, 교토 특유의 잘게 쪼개진 가로 경관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물리적으로는 길어지더라도, 시각적으로는 반드시 좁은 집들의 집합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규제의 핵심이다.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규칙, 색채


교토의 색채 규제는 “튀는 색을 쓰지 말라”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교토시는 먼셀 색 체계(Munsell color system)를 기준으로 색채의 허용 범위를 정교하게 관리한다. 색상, 명도, 채도의 세 요소를 조합해 모든 건축물과 옥외 광고물의 색을 규정한다.


이 가운데 가장 엄격하게 관리되는 것은 채도다. 원색에 가까운 높은 채도의 색은 대부분의 구역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건물의 넓은 면적은 무채색이나 저채도로 제한하고, 강조색은 더 작은 면적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비율까지 정해 둔다. 그래서 교토의 거리에서는 익숙한 프랜차이즈 간판조차 낯설게 보인다. 맥도날드는 빨간색 대신 갈색 계열을 사용했고, 편의점 로손은 파란색 배경을 흰색이나 검정색으로 바꿨다.

역사적 경관 보전지구인 기온 일대에서는 규제가 더욱 엄격하다. 흙벽의 색감,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원칙이며, 채도 2를 넘는 유채색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도심부의 현대적인 빌딩 밀집 지역에서도 회색과 베이지 계열이 기본값처럼 적용된다.


색뿐만 아니라 그 색을 만들어내는 ‘소재’도 규제 대상이다. 반짝이는 금속이나 거울 유리는 빛 반사를 유발하기 때문에 반사율 수치가 엄격히 제한된다. 가능하다면 페인트보다는 나무, 돌, 흙 같은 천연 재료 본연의 색을 쓰도록 유도한다.



교토에 스며든 글로벌 브랜드들


강력한 규제 속에서도 일부 글로벌 브랜드는 교토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영리하게 적응했다. 이들은 규제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규제를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타벅스 교토 니넨자카 야사카차야점’이다. 100년이 넘은 쿄마치야를 거의 그대로 활용했고, 초록색 대신 갈색 로고를 목재 간판에 새겼다. 내부에는 다다미 공간을 두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교토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스타벅스”라는 희소성을 만들었고, 매장은 곧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난젠지 인근의 ‘블루 보틀 커피 교토 카페’ 역시 전통 건물의 외형을 유지한 채 리노베이션했다. 낡은 기둥과 기와, 흙벽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주택가 경관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브랜드의 상징인 ‘파란 병’ 로고는 아주 미니멀하게 배치됐다. 화려한 간판을 금지하는 규제가 브랜드의 정체성인 ‘단순함’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사례다.


기온 하나미코지에 자리한 ‘라이카 교토점’도 인상적이다. 과거 오차야로 쓰이던 2층 목조 가옥을 그대로 사용했고, 격자창까지 전통 방식으로 복원했다. 멀리서 보면 카메라 매장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정도다. 강렬한 빨간 로고는 외벽에 크게 붙어 있지 않다. 입구의 짙은 감색 노렌에 작게 새겨져 있을 뿐이다.


시조도리 중심부의 애플 교토는 규제를 해석하는 또 다른 해법을 보여준다. 전통 가옥의 격자창과 종이등에서 착안한 외관은 밤이 되면 은은하게 빛난다. 네온사인을 금지한 규제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건물 자체를 하나의 조명처럼 만든 것이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드러내지 않음’이다. 규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가장 교토다운 공간에서 가장 현대적인 제품을 만난다”는 감각은 이러한 경관 규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규제는 도시의 미래 자산


우리가 교토를 ‘교토답다’고 느끼는 이유 뒤에는 일본에서 가장 치밀하게 설계된 경관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건물 높이의 1미터, 간판의 미세한 채도 차이까지 관리한 결과다.


지금 우리가 보는 교토의 풍경은 전통과 현대가 치열하게 벌인 협상의 결과물이다. 경관 규제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교토에서 가장 잘 지어진 건물은 눈에 띄는 건물이 아니다. 주변 건물과 눈높이를 맞추고, 도시의 색 속에 기꺼이 자신을 숨긴 건물이다.



교토 번화가인 시조도리 (높고 위압적인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폭이 좁은 전통 가옥들 (폭이 넓은 건물을 지을 때도 작은 건물들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한다)


니넨자카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간판에 초록색 대신 갈색 로고를 사용했다)


교토의 거리 풍경 (시선을 끄는 화려한 간판이 없어 차분한 느낌이 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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