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르는 물길, 교토 운하의 역사
교토는 계절마다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벚꽃이 만발하는 봄이 특히 아름답다. 그래서 봄이 되면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교토에는 벚꽃 명소가 유난히 많다. 주로 유명 사찰이나 정원을 찾지만, 물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벚꽃도 인기가 있다. ‘철학의 길’이 대표적이다.
다카세가와(高瀬川)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시내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잔잔한 물길과 주변의 목조 건물들이 벚나무와 어우러져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 남쪽 후시미에서는 배를 타고 벚꽃을 감상하는 유람선, 짓코쿠부네(十石舟)가 운행된다.
이처럼 벚꽃으로 유명한 물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하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운하’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시를 위해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인공 수로인 것이다.
짓코쿠부네가 다니는 후시미 운하의 정식 이름은 호리카와(濠川)다. 이 물길의 기원은 16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계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그는 노년에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은거할 장소로 후시미성을 쌓았다. 그리고 우지강의 물줄기를 끌어와 성의 해자를 만들고, 이를 오사카로 이어지는 요도강과 연결했다. 처음에는 방어를 위한 해자였지만, 에도 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물자가 모이는 강항(河港)으로 발전했다.
후시미는 예부터 ‘후시미즈(伏水)’라 불릴 만큼 지하수가 맑기로 유명했다. 여기에 운하를 통해 일본 각지에서 쌀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양조업이 크게 발달했다. 이곳에서 빚은 사케는 다시 물길을 따라 오사카와 에도(현재의 도쿄)로 운반되었다.
지금도 짓코쿠부네를 타면 검은색 나무 벽의 양조장 창고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이 한때 일본의 핵심 물류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짓코쿠부네라는 이름도 운하의 성격을 말해준다. ‘석(石)’은 쌀의 용량 단위로,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양을 뜻한다. 짓코쿠부네는 쌀 10석을 실을 수 있는 배였다. 오늘날 관광객을 태우는 이 배는 원래 쌀과 술을 나르던 화물선이었다.
후시미 운하가 통치자의 의지로 만들어졌다면, 다카세가와는 상인의 자본으로 탄생한 물길이다.
에도 시대 초기, 후시미까지 배로 들어온 물자를 교토 시내로 옮기려면 육로를 이용해야 했다. 이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교토의 상인 스미노쿠라 료이가 사재를 들여 니조에서 후시미까지 약 10km의 운하를 팠다.
그 덕분에 오사카에서 온 대형 선박의 화물은 후시미에서 작은 배로 옮겨져, 다카세가와를 따라 교토 시내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이 물길은 수심이 얕았기 때문에 바닥이 평평한 배를 사용했다. 돛을 달기 어려워 제방에서 줄을 걸어 인부들이 배를 끌었고, 오전과 오후로 나눠 운행 방향이 바뀌는 방식이었다.
운하를 따라 여러 정박장이 형성되었고, 그 주변으로 쌀과 숯, 목재를 다루는 상점과 창고가 들어섰다. 이것이 오늘날 교토의 번화가인 가와라마치와 폰토초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상인이 만든 물길은 교토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오사카의 도톤보리(道頓堀) 역시 한 상인의 기획에서 시작된 운하다. 야스이 도톤은 도시 남부지역(지금의 난바, 신사이바시 일대)의 물류망을 확장하기 위해 우지강과 히가시요코보리강을 연결하는 수로를 계획했다.
공사는 1612년에 시작되었지만, 그는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후 그의 친족들이 공사를 이어 완성했고, 그의 이름을 따 ‘도톤보리’라 부르게 되었다.
이 운하를 중심으로 상점과 창고가 모여들었고, 남부 지역은 오사카를 대표하는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물길 하나가 도시의 구조를 바꾼 사례였다.
은각사 인근에는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사색에 잠기며 걸었던 ‘철학의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흐르는 물 역시 자연 하천이 아니라 인공 운하다. 시가현의 비와호에서 끌어온 물이다.
1869년, 일본의 수도가 도쿄로 옮겨지면서 교토는 급격히 쇠퇴했다. 인구가 줄고 산업도 위축되었다. 이를 되살리기 위해 추진된 것이 비와호의 물을 교토로 끌어오는 대규모 수로 건설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물길을 잇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기술자 다나베 사쿠로가 중심이 되어 진행된 이 공사는 결국 성공했고, 운하는 완성되었다.
이 물길은 단순히 용수를 공급하고 물자를 나르는 수송로에 그치지 않았다. 운하의 낙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 전기로 교토에는 일본 최초의 노면 전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산업이 다시 움직이고, 도시는 근대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운하는 물자를 옮기는 길을 넘어, 도시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
권력자가 만든 후시미 운하, 상인이 연 다카세가와, 그리고 도시 재생을 이끈 비와호 수로. 이 물길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며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운하의 역할은 달라졌다. 철도와 도로가 물류를 대신하면서, 대부분의 운하는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오늘날 실질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비와호 수로뿐이다.
그러나 기능의 상실이 곧 가치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에 경제를 움직이던 물길은 이제 도시의 풍경이 되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수로는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새로운 자산이 되었고, 도심에 여유를 더하는 공간으로 남았다.
교토의 운하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역할을 바꾸어 여전히 도시와 함께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