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에서 9조까지: 도로에 새겨진 역사
교토 시내를 여행하거나 지도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도로가 참 네모반듯하네.”
가로 길과 세로 길이 직각으로 교차하며 마치 바둑판처럼 격자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교토는 8세기 말 조성된 헤이안쿄(平安京) 시절부터 정교하게 설계된 계획도시였다. 당시 수도 건설의 모델은 중국 당나라의 장안이었고, 그 도시 구상이 오늘날까지 교토의 기본 골격으로 남아 있다.
교토의 도로는 방향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다르다. 동서 방향으로 뻗은 가로 길에는 숫자와 ‘조(条)’라는 이름이 붙는다. 북쪽에서부터 이치조(一条), 니조(二条), 산조(三条)… 하는 식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며 숫자가 커진다.
이 숫자는 단순한 표기가 아니다. 천황의 거처를 기준으로 한 거리이자, 공간의 위계를 나타내는 기준이었다.
헤이안쿄 초기, 이치조와 산조 사이는 귀족들의 거주지역이었고, 시조(四条)와 고조(五条) 일대에는 서민들의 생활권과 상업지역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교토 최대의 번화가인 가와라마치는 산조와 시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헤이안쿄의 가로 길은 1조부터 9조까지였다. 현재의 10조는 처음부터 존재하던 길이 아니다. 도시가 남쪽으로 확장되면서 후대에 만들어진 도로다.
교토의 1조부터 9조까지를 보면 서울의 종로 1가부터 6가가 떠오른다. 숫자가 붙은 도로라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조선시대의 종로는 ‘가(街)’라는 숫자가 붙지 않은 하나의 긴 거리였다. 이름은 운종가(雲從街), 즉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상업 중심지였다. 지금의 종로 1~6가는 일제가 행정 편의를 위해 하나의 길을 여러 구간으로 나눈 것이다. 반면 교토의 1조부터 9조까지는 처음부터 각각 독립된 도로로 설계되었다.
같은 숫자 도로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길을 나눈 것인지, 애초에 여러 개로 만든 것인지에서 차이가 난다.
남북 방향의 세로 길에는 이런 숫자 규칙이 없다. 가라스마도리, 가와라마치도리처럼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세로 길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가로 길이 ‘조’로 나뉘었듯, 세로 길은 ‘보(坊)’라는 단위로 구분되었다. 도시의 중심축인 주작대로에서 멀어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체계는 오래 가지 않았다. 서쪽 지역이 쇠퇴하고 새로운 길이 추가되면서, 이러한 구분은 점차 사라졌다.
헤이안쿄에는 1조부터 9조까지 아홉 개의 가로 대로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교토 시내를 걸어 보면 존재감이 뚜렷한 길은 3조, 4조, 5조, 7조, 9조 정도다. 이들은 왕복 차선이 있는 넓은 도로인 반면, 1조, 2조, 6조, 8조는 폭이 좁은 생활도로이거나 골목길에 가깝다.
지금도 널찍하게 남아 있는 길들은 교토의 교통과 상업, 관광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4조는 교토 최고의 번화가이자 야사카 신사와 기온을 잇는 중심 거리다. 5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기요미즈데라 참배를 위해 확장한 이후, 현재는 국도 1호선이 지나는 간선도로가 되었다.
반대로 존재감이 희미해진 길들도 있다. 1조는 한때 궁궐의 북쪽 경계였지만, 도시가 북쪽으로 확장되면서 지금은 조용한 주택가 도로로 남았다. 2조는 니조성이 들어서면서 길의 연속성이 끊겼다. 8조는 교토역과 철로가 들어서며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일부만 남아 있다.
헤이안 시대의 도시 설계에서 1조부터 9조까지의 가로 길은 모두 24미터 이상의 폭을 가진 넓은 대로였다. 그 사이를 잇는 길들은 상대적으로 좁은 도로였다. 같은 대로였던 길들이 오늘날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이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주거 환경의 변화다. 교토 서쪽 지역은 지대가 낮아 가쓰라강이 자주 범람했고 배수에도 문제가 있었다. 점차 살기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은 떠났고, 도시 기능은 동쪽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도로는 논밭으로 변했다.
여기에 역사적 격변도 겹쳤다. 15세기 오닌의 난으로 도시가 크게 파괴되자,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 대로 위에 집이 들어섰다. 넓었던 길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좁아졌다.
마지막으로 근대 도시계획의 선택이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근대화 과정에서 교통량이 많고 상업적 가치가 높은 도로만을 골라 확장했다. 그 결과 일부 길만이 넓은 간선도로로 남게 되었다.
교토의 가로 길들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지만, 이후의 역사와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교토에서 가장 넓고 번듯한 가로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숫자가 붙어 있지 않다. 2조와 3조 사이에 놓인 오이케도리(御池通り)다.
이 길은 원래 좁은 도로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소방도로 확보 과정에서 대규모 철거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교토시청 앞을 지나는 대표적인 대로로 바뀌었다.
바둑판처럼 반듯한 격자와 숫자가 붙은 교토의 가로 길에는, 수도를 계획하고 통치하려 했던 권력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같은 폭으로 시작한 길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은 과정에서는 전쟁과 재난, 그리고 선택의 흔적이 보인다.
지금의 모습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삶과 권력, 경제와 교통이 겹겹이 쌓인 결과다. 교토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시간이 남긴 흔적 위를 걷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