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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May 14. 2020

102. 진단서만 있으면 무단결석 아니거든?

수업 중,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오늘 큰 일 날 뻔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덕분에 위기를 넘겨 다행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기에 큰 일인지, 담임까지 나설 일이 뭔지 물으니


오늘 일어나 보니 8시 40분인 거 있죠? ㅎ
담임한테 늦는다고 카톡 하니 무단지각 처리 안 되게 도와줄 테니 병원 가서 진단서 떼어오라더라고요. 그래서 상기도 감염(감기)라고 병명 만들어서 냈어요.


늦잠을 자서 지각이 될 뻔했으나 담임 선생님의 재빠른 대처(?) 덕분에 이 아이는 감기 걸려 병원 다녀오느라 좀 늦은 아이가 됐단다. 왜 이렇게 까지 하며 지각 처리하면 안 되느냐? 그 이유는!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아주 좋은 학교(?)에 들어가셔야 해서 절대로 생기부에 티끌만 한 오점도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평소 선생님들께 예쁨 받는 모범생이었는 데다 고등 입시를 앞둔 아이 챙겨주고 싶었던 우리 다정다감한 담임 선생님의 배려 덕분인지 이 아이는 그토록 원하던 그 학교에 진학했다. 학교가 좀 추운데 있지만 교복은 참 편한 그 학교. 정말 마음먹은 대로 해내고 마는 대단한 아이였다.


사실 이 학생 말고도 진단서를 받아서 조퇴하거나 결석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고 3 자소서 쓰는 기간이면 어김없이 진단서를 제출해서 병결 처리하는 학생이 속출하는데 내가 겪었던 최고로 황당했던 경험이 갑자기 생각난다. ^^


자소서 접수가 일주일도 안 남은 때, 원장이 학생들에게 무조건 학원으로 빨리 와서 자소서 마무리하라고 닦달을 해댔다. 가뜩이나 불안한 아이들을 들쑤셔 놨으니 학교도 안 가고 일단 학원은 왔는데 병결처리를 위해 진단서를 받아야 할 것 아닌가? 근데 병원 가는 시간도 아까우니 가지 말라는 원장! 그럼 어쩌라는 건데?


갑자기 이때 등장한 원장의 술친구이자 이 학원에 애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가 등장했다. (나한테 술주정했던 여자로 진짜 비정상인 여자분이었다.) 노트북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 나를 포함한 여러 애들이 갑자기 등장한 이 분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아주 우아하게 한 마디를 던지는 거다.


우리 남편 병원에서 진단서 받아줄 테니 이름하고 주민번호 적어.


애들은 이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이 어머님의 부군께서 무슨 진료과목을 하고 계신지.


유. 방. 외. 과


유방외과에서 감기 진단서를 떼어온 것이다. ㅎ 진짜 이건 코미디보다 더 웃긴 얘기였다. 아이들도 진단서를 받아 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어쩌겠는가? 병원을 가자니 시간이 아까운 것을. 결국 아이들은 이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했고 담임이 이걸 받으며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남자애한테는 


네가 왜 유방외과를 가냐?


라고 하시며 한심해하셨다고.


오늘 뉴스 기사에 간호사 엄마가 딸을 위해 진단서를 위조했다는 얘기가 실렸다. 생기부 내용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교육 현실이 만든 괴물이 아닐까 싶다. 절대 저런 편법을 봐줘서도 안 되고 그렇게까지 해야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는 이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괴물 어른이 괴물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는 다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어른들이여, 각성하라. 더 이상 괴물을 늘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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