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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May 02. 2020

101. 동료 강사에게 반말하는 선생님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소속되어 있던 실험실은 주 업무 이외에 교육대학원 재학생들의 실험을 도와주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 24살. 대학도 졸업했겠다 꼴에 어른인 줄 아는 어설픈 성인이었던 내게 대형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는 31살의 어떤 여자분이 계셨는데 본인 논문에 쓸 실험을 도와주는 네게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거다.


이 실험 언제 마무리되니?


이 언니 뭐야. 학교 선배도 아니고 타 학교 출신에 나랑 처음 보면서 왜 반말인지. 그때의 나는 개념 없는 24세였기에 똑같이 반말로 대답했다.


모르겠는데.


내가 반말을 하니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내가 임신을 해서 자주 학교에 못 나와. 최대한 실험 빨리 끝내줄래? 몸이 너무 힘드네.


지금에 나라면 뭐 저런 언니 정도야 그냥 넘어가 줬을 거다. 임신하고 그 무거운 몸으로 학교에 나오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논문은 써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 임신 기간 안에 얼른 졸업해서 출산 후 임용고사만 보면 되겠다 생각하며 나한테 실험 마무리를 재촉했을 것이다. 같은 여자로서 임신과 출산의 힘든 점은 이해하고도 남지.


그런데! 그 날 처음 본 내게 반말은 좀 아니지 않나? 아무리 내가 본인보다 어려도 그렇지. 무개념 24세였던 나는 톡 쏘는 말투로 그 언니에게 대답을 했다.


내가 이 실험을 도와주는 거야. 언니가 직접 해야 하는 실험 데이터를 내가 해주는 거라고. 근데 지금 나보고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거야?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빚 받으러 왔니?


이 얘기가 끝나자마자 31세 언니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어린 게 반말 찍찍하면서 자기 무시했다더라고. 내가 뭘? 옆 실험실에 있던 선배들이 와서 무슨 일인지 물으니 그 언니는 저 싹수없는 게(24세 무개념 시절 나^^) 자기한테 반말하며 까불었다고 이르기 시작했다. 다들 어이없어하며 나보고 왜 반말을 했냐고 물었다. 나를 혼내는 게 아니게 그냥 이 난리를 빨리 끝내고 싶은 분위기였다.


근데 나는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기보다는  함부로 반말하는 저 언니에게 사과받고 싶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하는 게 당연한 건 아니지 않나? 결국 그 언니는 내 도움 따위는 안 받겠다며 울면서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덕분에 나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건방지게 구는 무개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 40대인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반말을 뱉지 않는다. 수업 중에는 존댓말로 강의를 하고 식당에서든 네일숍이든 나보다 어려 보인다고 함부로 말을 놓진 않는다. 그게 당연한 예의이고 사회생활의 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학원생활 속에서도 반말 찍찍 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24세 무개념이었던 내가 다시 출동하려고 한다. ㅎ


반말이라는 게 친근함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걸 원치 않는 사람도 있는데 왜 나이 좀 있으면 반말을 해대는지. 어떤 원장은 ‘야’라고 나를 부르는 호칭을 대신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 아니냐며 같이 으쌰 으쌰 하자고 했는데 가족이면 좀 잘 챙겨주면서 하던가 내 언니, 오빠시면 용돈이라도 주시던가요. 살림하며 바쁘게 사는 동생 반찬이라도 만들어주셨어요? 그런 것도 아니면서 왜 친한 척 반말이세요?


내가 너보다 몇 살이나 많은 줄 알아? 어린 게 버릇이 없네?


이런 말보다는 존경받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말투부터 개선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이 든 선배 강사가 반말한다고 고민하시는 후배 강사님들께도 한 마디 하자면 그냥 적당히 넘어가 줄 필요도 있으니 맞서지는 맙시다. 잘못하면 나처럼 싹수없는 년(?)으로 낙인 찍일 수 있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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