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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May 18. 2020

103. 채점 알바로 시작한 나의 강사 생활

인천에 한 학원강사로 인해 잠잠하지고 있던 코로나 확진가가 늘고 있다. 5월 황금연휴에 이태원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오신 인천 모 대학 4학년 학생이라는 이 분 덕분에 인천시에 있는 학원들은 일주일 동안 휴원을 해야 했다. 책임감도 없고 선생으로서 기본적인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이 젊은 선생님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절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인간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선생을 강사로 쓴 학원, 과외 선생으로 부른 학부모를 보며 왜 그런 분에게 수업을 시켜야 했을까, 설마 돈을 적게 줘도 됐기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처음 학원에 발을 들인 건 대학교 2학년 때로 채점 알바와 자습 감독을 하는 것이었다. 수학 전문학원이다 보니 테스트 채점할 게 생각보다 많았고 자료 복사나 자습 감독도 익숙지 않아 자주 혼이 나기도 했다. 특히 30살 전후 여 선생님들이 ‘야’라고 부르며 믹스커피를 타오라던가 일이 느리다고 할 줄 아는 게 이렇게 없냐고 얘기하면 진짜 때려치워버리고 싶기도 했다.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절대로 알바로 일을 하는 보조 강사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잔심부름을 시키지 않게 됐다.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이 있으면 내가 먼저 복사기 사용법이나 시간표 보는 방법, 학생들 관리 요령들을 일러준다. 어릴 때 나는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혼나면서 스스로 알아가야 했던 게 소름 끼치게 싫었기 때문이지.


여하튼 내가 채점 알바로 일하며 경험한 일이 생각나서 그 얘기를 한번 꺼내볼까 한다. 때는 2000년, 수학 전문학원 중 최고로 인기가 많았던 이 학원에서 주 2회 주말에만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는 줄 알았는데 몇 명의 선생님이 원장에게 항의를 하게 됐고, 채점이나 자습 감독만 하는 것으로 역할이 변경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습 감독이 아니라 질문을 받고 문제까지 풀어주는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이렇다 보니 채점해야 할 시험지들이 쌓이게 되었다.


원장은 내게 제대로 일을 못하냐며 지적을 했고 나는 질문을 받고 문제를 풀어주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원장 왈


문제를 왜 당신이 풀어줘?


그러게. 난 그 강의실 나 말고 딴 선생님이 없는데 질문을 했으니 풀어줬겠지. 안 그래?


물론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자습 감독의 역할이 그것까지인 줄 알았다고 했더니 갑자기 어떤 선생님을 호출하는 거다.


호출된 선생님은 내가 수업하는 걸 반대했던 30살 전후에 여 선생님. 원장은 그 여 선생에게 자습실에 이 알바 선생도 들여보냈는지 물었다. 그러자 절대 아니라며 무슨 소리냐고 얘기하는 이 분. 같이 한 강의실에 있었다며 내 얘기는 거짓말이라고, 저 아르바이트생이 불성실하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고작 21살인 내가 이런 이간질, 거짓말에 어찌 대처를 하겠는가. 그냥 닭똥 같은 눈물만 펑펑 쏟아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 원장은 일단 둘 다 나가서 할 일이나 하라고 우리를 원장실에서 내보냈다. 그 여 선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찬물로 씻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교무실에 있는 내 자리, 자리랄 것도 없이 그냥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로 돌아야 못했던 채점을 하고 있는데 남 선생님 한 분이 말을 거셨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에 원장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얘기해주었다. 그 얘기를 하며 다시 눈물 콧물을 또 쏟아내기는 했지만 이렇게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날, 다시 원장실에 불려 들어갔는데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그 여자분도 함께 호출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원장은 미안하다고 얘기하며 그 여 선생에게도 사과하라고 시키는 거다. 알고 보니  이 여 선생, 자습 시에도 들어와 문제풀이를 해줘야 하는데 번번이 그 시간마다 학원 내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거였다. 그 얘기를 원장에게 얘기해준 것이 남 선생이었던 것.


사과는 받았지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날 째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각날 정도니 진심이 아닌 사과였기 때문이다. 이 여 선생과는 그래도 인연인지 내가 본격적으로 학원 강사를 하게 되며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아 내가 우리의 에피소드를 얘기해주며 말을 걸었지.


그때 기억나세요? 저한테 문제풀이 시키고 식사하러 가셔서 저 원장한테 혼났잖아요. 그 대학생이 저예요.


그때 그 표정은 진짜 직접 봤어야 한다. 똥 씹은 표정이라는 게 저런 건가 싶었으니까. 이 학원에서는 내가 먼저 들어와서 일하는 선생이었고 뭐 담당하는 학생들도 달라 부딪치거나 이간질당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후련한 기분, 복수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지. 그 여 선생님에 대해 다른 분께 얘기하진 않았다. 우리만의 추억(?)은 우리만의 것이니까. ㅋ


잘 지내시나요? 이간질 선생. 이젠 50대시네요.

선생님 우리 잘 삽니다.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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