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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7. 2020

6. 자고 일어나니 난소를 도둑맞았다.

새벽 4시쯤 잠깐 잠이 들었다.

1인실은 온돌바닥도 있고 에어컨도 맘껏 틀 수 있고 거기에 환자 침대가 있는 것이라 침대가 불편했던 나는 보일러를 따뜻하게 틀고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여름이 끝자락. 밖의 날씨는 결코 춥지 않았는데도 왠지 나는 으슬으슬해서 보일러를 틀고 온돌바닥에 눕고 싶었다. 아마도 불안함을 추위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6시가 되자 간호사 선생님들 들어와 체온과 혈압을 체크했다. 체온은 정상인데 자꾸 혈압이 130/85로 높게 나왔다. 평소 최고혈압이 100이 안 되던 내가 너무 긴장을 했는지 맥박수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혈압은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정도니 걱정 말라며 간호사 선생님은 내 등을 쓰다듬어 주고 나가셨다. 남편은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마누라 병간호하려고 회사에 휴가를 낸 남자. 내 수술로 인해 여름휴가 대신 간호를 하게 된 불쌍한 아저씨. 95kg의 거구가 저 좁은 침대에 있는 걸 보니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잠이 깬 김에 세수를 하고 양치도 하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았다. 이래야 수술할 때 좋다는 말에 진짜 오랜만에 양갈래 머리를 한 것 같다. 금식이기 때문에 물도 마실 수 없어 입을 헹구기만 했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왠지 싫었다. 읽으려고 가져온 책도 표지만 빤히 보다가 그냥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다시 들어와 압박스타킹을 신고 속옷 모두 탈의하라고 일러주었다. 수술은 언제쯤 되냐니 11시 반에 시작될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4시간도 더 남았는데 할 일이 없었다. 어느 센가 일어난 남편이 나를 쳐다보기에 밥 좀 먹고 오라고 얘기했다. 저 사람이라도 먹어야지. 그래서 힘내서 내 수발을 들 테니 말이다. 남편을 내보내고 나니 여러 번 간호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수술받은 분들은 어떻게 이런 불안함을 견딜 수 있는 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잠깐 식사하러 간 남편이 보고 싶을 정도로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웠다.


남편이 돌아왔고 11시쯤 수술실로 내려오라고 했다. 여기는 침대에 실려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려가는 게 신기했다. 링거 거치대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내려가 대기 침대에 누워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며 긴장하지 마시라는 말을 해주셨다. 이 병원은 보호자가 수술 대기실에 같이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곧 수술실로 들어가자는 말에 씩씩하게 잘하고 오겠다고 약속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수술대에 누우니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본인의 이름과 마취를 담당한다고 얘기하셨다. 안전하고 최선을 다해 잘하겠고 말씀해주시는데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옆에 서 계시던 수술방 간호사 선생님께서


저 ㅇㅇ 엄마 지인이에요. 잘 부탁드린다고 연락 주셨네요. 저희 선생님 수술 잘하시니 걱정 마세요.


세상에.

이 간호사 선생님, 내가 가르치고 작년에 대학 보낸 학생과 아는 지인이셨던 거다. 이 병원에서 수술한다는 걸 얼핏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수술방 간호사로 들어와 주셨다.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니 이런 배려가 너무나 든든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눈이 떴을 때, 남편이 보였다.


지금 6시가 다 됐어. 수술이 많이 길어졌어. 괜찮아?


2, 3시간을 예상했던 수술을 6시간 동안이나 했다니. 이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수술을 해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의식을 찾은 나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열어보니 너무 엉망이었어요. 자궁도 적출했고 오른쪽 난소도 절제했고 직장도 일부 제거했어요. 아휴, 너무 힘든 수술이었네요.


난소를 절제하다니.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 꺽꺽 눈물이 났다.


자고 일어나니 난소를 도둑맞았다.

다시는 되찾지 못할 나의 난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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