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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7. 2020

5. 입원 2시간 전까지 수업한 독한 년

입원 당일이 되었다.

아침 10시부터 2시간씩 3개의 수업을 진행했다. 수술이 금요일인데 주말 수업이 제일 많은 나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덜 주기 위해 주말 수업들을 주중에 당겨서 미리 했다. 근데 8개나 되는 수업을 분배하려다 보니 입원 당일인 목요일까지도 수업을 해야 했다. 수업을 하면서도 내 정신은 온통 내일 받을 수술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수업을 했다. 수술 잘 받고 걱정 말고 빨리 돌아오라는 위로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수업을 다시 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혹이 크고 여러 개라니, 개복수술이라니. 무섭고 두려웠다. 기혼이지만 출산 경험이 없는 40대 여자가 자궁적출을 앞두고 두려움에 떤다는 것. 폐경 전까지 나를 괴롭힐 줄 알았던 자궁과 헤어지는 게 왜 두려울까? 여성성을 잃는다고 생각해서? 그건 전혀 아니었다. 그냥 내 배를 가르고 꼬매고 그런 과정이 낯설 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러 캐리어를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캐리어 속에는 근종 힐링카페에서 얻은 온갖 준비물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멀티탭(진짜 유용하게 잘 썼다. 핸드폰, 노트북, 가습기 등 연결할 게 은근히 많다.)

빨대, 뚜껑 있는 컵(누워서, 비스듬히 앉아서 물을 마시니 꼭 필요하다.)

물티슈(순한 제품으로는 세수 못할 때 얼굴도 닦고 손도 닦고 했다.)

세면도구(머리 감기 힘들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수건(땀도 닦고 가제 수건은 물 못 먹게 할 때 입술에 올려두고 건조한 걸 좀 가시게 했다.)

가습기(이건 없어도 된다.)

입는 생리대(난 하나도 안 씀, 분비물 안 나왔음)

슬리퍼(필수)

마스크(필수)

속옷, 갈아입을 옷


그리고 보호자가 있을 수 있는 병원이라 보호자가 쓸 것들도 챙겼다. 담요, 베개 같은 거.


병원에 도착하고 입원 수속을 밟고 운 좋게도 1인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병원은 1인실이 워낙 싼 편이기에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거지 내가 부자라 그런 건 아님! 하루에 15만 원 정도니 다른 병원에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리고 진짜 편했다. 예전에 6인실에 입원했을 때 시끄럽고 자꾸 다른 환자나 보호자가 말을 시키는 것이 귀찮았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정말 좋았다.


여성병원 전용 펑퍼짐 한 원피스 환자복을 입고 온갖 짐들을 쓰기 편하게 세팅하고 나니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수술 전 꼭 해야 하는 관장과 제모, 그리고 주사를 잡는다는 그것, 그 무시무시한 주삿바늘을 꽂으러 오셨다. 집에서 제모를 이미 하고 왔지만 확인을 좀 하겠다더니 완전 민둥산을 만들어 주셨고 관장은 먹는 약이 아니라 똥꼬에 뭔가를 넣어주셨다. 그리고 15분을 참으라는데 절대 참을 수가 없는 긴 시간이었다. 1인실이라 개인 화장실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똥녀라고 병원 내에 소문날 뻔했다.


수술을 위해 굵은 주사 바늘이 왼 팔뚝에 들어갔고 이렇게 잠들기 힘든 밤을 맞이했다. 물론 우리 남편은 푹 자는 것 같았지만. 그래 너라도 자라. 누구 하나 정신 제대로 차리고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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