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앞두고 집안 곳곳을 청소했다. 수술이 잘못되면 다시 청소를 못할 것이고 설사 수술이 잘 되더라도 회복 기간에는 평소처럼 청소나 빨래에 신경 쓸 수 없는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욕실 수납장 속을 다 끄집어내서 소독하고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냉장고, 싱크대, 옷장, 베란다, 하다 못해 서재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하나하나까지 쓸고 닦고 소독을 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나의 발자취를 정리하듯 열과 성을 다해 청소를 했다. 청소를 다하고 뿌연 거울을 닦는데 파마를 한 지 7개월이나 된 길고 컬이 다 풀린 머리가 거슬렸다. 이 참에 산뜻하게 다듬어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혹시나 수술 시 제거하는 혹이 암 덩어리라면 머리를 예쁘게 해 봤자 뭔 소용이겠는가. 정리 안 된 지저분한 머리와 큐티클 그득한 손톱까지, 멋 부리기 좋아하는 내가 왜 이렇게 인생 포기한 듯 이러는 건지.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고 후회가 됐다. 20, 30대 돈 아끼느라 제대로 못 먹고 안 쓰고 살다가 이제야 숨 돌릴 여유가 조금 생겼는데 왜 나는 배에 칼자국을 내야 할까. 이제야 명품도 사보고 네일도 받으러 다니는데. 왜 나한테 이래. ㅜㅜ 누가 보면 꼴값을 떤다고 비웃었을 만큼 찐한 신파 드라마 한 편을 찍었다.
그리고 유언장을 준비했다. 지금은 이 행동이 아주 제대로 꼴값질이라고 생각한다. 뭔 시한부도 아니고 유언장까지 쓴 건지. ㅜㅜ 미쳤었다. 그때의 나란 여자.
인터넷으로 ‘유언장 작성 방법’을 찾아보니 유언자는 주소와 유언 내용, 날짜, 성명 등을 직접 자필로 작성한 후에 서명을 하면 안 되고 반드시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언 내용에서 유산 분배에 관하여 기재하지 않으면 법적 상속 규정에 따라 배분된다기에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남편, 친정집 식구 등에 나눌 방법을 상세히 적었다. 혹시나 내가 죽고 난 후 누구도 싸우지 않기 위해 부동산, 동산, 보험까지 정리해서 문서화했다.
누군가는 고작 자궁 적출하면서 뭔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27살에 이미 난소낭종과 자궁내막증으로 복강경 수술하고 또다시 수술대에 오르는 나는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수술 후에 느꼈던 추위와 아픔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그때보다 많이 늙었고, 더 큰 수술이며 혹시나 암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난 너무 불안했고 뒷 일을 생각해야 했다.
남편도 내 행동에 장난처럼 웃기는 했지만 수술 후 먹을 환자식을 준비하고 잠자리가 편한 토퍼까지 해외 직구를 하는 걸 보면 그도 긴장하고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매일매일 달력의 숫자와 입원을 위해 준비한 캐리어 가방을 보며 나는 생전 찾지 않았던 신을 찾았다.
제발, 별문제 없이 깨끗하게 수술이 끝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