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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6. 2020

3. 한 달 내내 생리대를 찬 여자

자궁적출 수술 전.

로렐린데포주사를 맞고 나니 한 달 내내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생리인 줄 알았던 출혈은 수술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덕분에 수술 한 달 전부터 수술 당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생리대를 차고 있었다. 남들은 이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생리가 끊기고 부종이나 체중 증가 현상이 있다는데 난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부작용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미리 가입해 두었던 근종 힐링카페를 들락거리며 여러 개의 글을 읽어보고 다양한 정보를 얻어보려고 했지만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수술 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절대 해결 불가능한 난제였던 것 같다.


드디어 수술 일주일 전, 외래 진료를 받았다. 수술 전 검사 결과와 입원 시 주의할 사항들을 듣는 시간이었다. 외래 진료를 도와주는 간호사가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입원은 수술 전날 저녁 7시고요. 입원 준비물은 여기 적어드렸어요. 입원 후에는 바로 금식이 시작되니 미리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오세요.


라고 얘기했다. 어찌나 다정하고 예쁘게 얘기하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궁금한 게 있음 물어보라기에 까탈한 내 성격상, 다인실은 매우 불편할 것이 뻔하니 1인실에 입원하고 싶은데 미리 예약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 날 출산하는 산모가 있으면 그들에게 1인실이 우선 배정되야하므로 예약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긴, 제왕절개가 아닌 이상, 날짜를 딱 지정하고 배 속 아이가 뽕 나오는 건 아니니 내가 입원할 날에 1인실이 남아 있을지 확답이 불가능하긴 하지.


모든 진료가 끝나고 병원 밖으로 나오니 11시도 채 되지 않았다. 이 꿀꿀한 기분에 점심까지 혼자 먹긴 싫어 버스를 타고 남편 회사로 찾아갔다. 오늘 진료가 끝나면 남편과 만나고 싶었기에 네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예쁘고 비싼 실크 원피스를 입고  새로 산 명품 가방까지 든 체 남편을 만나러 갔다. 아무리 내가 수술을 앞둔 아프고 늙은 아내이지만, 남편을 창피하게 할 순 없으니까 잔뜩 꾸미고 갔던 것 같다. 직장 동료 분들께 음료수 2박스를 드리며 다소곳이 인사를 하고 남편과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거창할 것 없이 소박하게 김밥에 쫄면, 라면을 먹으며 일주일 후 입원에 대해 얘기했다.


잘 되겠지? 설마 열어봤는데 암 아닐까?


사실 몇 주 전부터 암이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나, 가발도 준비해야 할까. 별 이상한 걱정을 다 해보았었다. 수술을 일주일 앞두니 갑자기 혈압도 오르고 심장도 평소와 달리 빨리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술 일정에 대해 미리 얘기해두긴 했었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다시 한번 수술 후 휴강 계획을 전달했다. 여자들한테는 흔한 수술이라는 얘기, 잘

쉬고 오라는 위로의 말. 사실 그 어떤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배 가르는 수술인데 흔한 수술이고 별 거 아니며 한숨 자고 나면 끝난다느니 이런 말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종이에 손이 베어도 아프다고 난리 칠 사람들이 꼭 남 아픈 데는 별 거 아니라는 말투. 그게 위로라면 난 거부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나의 일주일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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