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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6. 2020

2. 폐경 전, 자궁적출 수술을 결정하다.

아침 8시 45분.

어제 내 혹을 발견해 준 선생님과 CT촬영 전 얘기를 나눴다.


전 오늘 진료가 없는 날입니다. 진단의학과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이 차후에 어떻게 하셔야 할지 알려주실 거예요.


어제 이 병원에서 제일 입김이 약할 것 같은 14과 선생님에서 1과 원장 선생님으로 교체되었다. 뭐 원장이라니 더 잘하겠지. 일단 CT를 찍은 후 얘기하자고 했다.


조영제 넣으려면 제일 두꺼운 바늘을 넣어야 하는데 많이 아플 거예요. 아휴, 혈관이 너무 얇아서 잘 안 되네.


난 불안해서 달달 떨고 있는데 주사 바늘도 제대로 못 꼽고 갈아입으라고 준 가운은 얼마나 큰 걸 준건지 초등학생 같은 가슴이 훤히 다 보일 정도였다. 점점 참기 힘든 짜증이 극한으로 몰려왔지만 내가 이 간호조무사에 무슨 자격으로 울분을 토해내겠는가. 눈 질끈 감고 이 앙 다물며 주사 바늘이 내 팔뚝에 시퍼런 멍을 내도 꾹 참았다. 조영제가 들어가는 순간 오줌을 싸는듯한 이상야릇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촬영 기사는 앵무새처럼 


조영제 부작용이 있어요. 일시적인 거예요. 저희는 안전한 용량을 써요. 숨이 막히면 말씀하세요.

라고 반복해서 얘기했다.


CT 촬영 시간은 10분도 안 될 정도로 매우 짧았고 식염수 수액을 연결해주며 조영제 성분이 잘 빠져나가도록 30분은 더 맞으라는 얘기에 대기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지난밤 금식하라는 얘기 때문에 어제저녁 6시 이후로 물 한 모금도 못 먹은 탓인지 갈증과 배고픔,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눈치 빠른 우리 남편이 얼른 커피를 사다 주었고 정말 숨 한 번 쉬지 않고 꿀떡꿀떡 원샷으로 넘겼다. 아, 앞으로 이 맛난 커피도 못 먹게 되면 어쩌지. 혹시나 암이라 이런 커피도 마시지 못하게 되면 많이 슬플 것 같았다.


얼마 후 CT 결과와 자궁 초음파를 결과를 종합해 자궁근종, 난소낭종이 있고 자궁근종은 내 배를 꽉 채울 정도라 복강경 수술이 어려울 것이라는 최종 소견을 들었다. 일단 가로 10cm의 개복으로 수술을 생각해보고 혹시나 로렐린데포주사를 맞으면 크기가 줄어들지 모르니 오늘 주사를 맞고 가라고 했다. 수술 날짜는 다음 달 말. 2학기 개학 직후 그나마

수업을 쉬어도 타격이 적을 날에 하기로 결정했다.


로렐린데포주사.

자궁근종의 축소 및 증상의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이 호르몬 주사는 몸에서 가장 지방이 많은 곳에 맞는데 보통 배에다 놔주는 것 같았다.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참을만했다. 주사를 맞고 수술 전 검사까지

진행했다. 원무과 수납 후 압박스타킹을 받고 심전도, 심장초음파, 폐 X-ray,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받았다.

​검사 전에 병원비를 수납하는데, 진짜 뭔 병원비가 이렇게 비싼 건지. 이건 진짜 와. 병원을 원체 다니지 않아 실비보험을 안 들어둔 것이 후회가 됐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외래진료로 초음파 1-2분 봐준 게 이렇게나 비싸다니... 진짜 아프면 안 되겠다. ㅜㅜ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하니 예상치 못했던 조영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지는 듯한 느낌. 약간의 구역질과 어지러움. 물을

많이 먹고 조영제가 소변으로 배출되면 괜찮아진다기에 억지로 생수를 여러 통 마셔댔다. 또 CT를 찍게 된다면 이 끔찍한 부작용을 또 경험한다는 거야. 진짜 아찔했다. 나중에 일어날 사고에 비한다면 이

부작용은 애교에 불과했을 텐데. 이땐 미래를 알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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