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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8. 2020

7.  금식을 일주일 더 하라고요?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오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하셨다.


직장을 일부 절제해서 최소 1주일 금식이세요. 물도 절대 안 돼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운동도 하셔야 가스가 빨리 빠져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일부터 최소 7일간 물 한 모금도 먹지 말라고? 수업을 입원 2시간 전까지하느라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오늘도 하루종일 굶었는데! 그리고 먹지도 못하는데 운동을 하라고. 진짜 너무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다. 왜 직장을 절제한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소리 지르고 화내고 싶었지만 수술 중 삽관을 해서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열 때문인지 머릿속이 하얗고 사물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수술 후 2-3시간은 깨어 있어야 한다니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무통주사를 맞고 있지만 통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남편에게 전해 듣기론 배꼽을 일부 절개해 복강경으로 수술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막상 안을 들여다보니 수술할 부위가 너무 광범위해 결국은 배꼽 아래로 10cm 개복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자궁내막증이 너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자궁을 적출하고 회생 불가능한 난소 하나를 절제, 직장은 자궁과 난소를 제거하다가 손상을 입어 일부 절제가 된 것 같았다. 제거된 장기들을 쟁반 같은데 들고 나와 보여주는데 쟁반 한가득일 뿐 아니라 넘쳐흐르는 형상이었다고 한다.


복강경을 시도하려고 가스를 주입했으니 가스통, 개복으로 인한 심한 통증. 예상치 못한 복합적인 통증이 밀려왔다. 배를 만져보니 어디를 절개한지 알 수 없게 복대가 채워져 있는데 거즈가 배 전체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압박스타킹을 신어서인지 다리는 전혀 부어있지 않았고 이 와중에 얼굴은 멀쩡했다. 환자 특유의 퀭한 얼굴이 아닌, 내가 거울로 보기에도 뽀얗고 말간 멀쩡한 사람의 얼굴빛이었다. 다만 열이 계속 올라 해열제를 놓고 아이스팩에 물수건까지 머리에 올려두어도 열은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수술 후 다음 날, 고통스럽던 소변줄을 빼주더니 자가 소변을 2시간 내로 보라고 했다. 아니면 다시 소변줄을 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꼭 봐야한다고! 진짜 죽을힘을 다해 소변을 봤다. 방귀도 꼭 뀌어야 한다기에 온 정신을 집중해 방귀도 뽕 뀌었다. 그런데도 열이 계속 오르고 가스통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심호흡하며 누워있는데 왜 운동을 하지 않냐며 간호사 선생님이 호통을 치셨다.


어지럽기도 하고 피주머니를 2개나 달고 어디를 걸어요. 저 너무 창피해요. 그냥 병실에서 걸을 게요.


라고 대답하니


여기 제왕 절개한 산모들은 더 흉한 몰골이에요. 피주머니에 엉거주춤 다들 걸어요. 괜찮으니 그냥 걸으세요. 그래야 금식도 금방 끝나요. 물 드시고 싶죠?


물보다 시원한 커피가 먹고 싶었다. 진짜 미칠 것 같았다. 밥은 안 먹어도 되는데 커피를 못 마시니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 듯했다.


결국 커피를 빨리 마시기 위해 링거 거치대를 끌고 입원한 병동 복도를 왔다 갔다 10번을 반복했다. 2시간마다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조금은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지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열도 내려가다 다시 오르길 반복했다. 진통제와 해열제를 번갈아 투여해도 계속 아프고 계속 머릿속이 하얀 느낌이었다. 잠깐 잠이 들면 30분에서 1시간마다 깨어났고 자꾸 악몽을 꿨다. 일어나면 기억도 제대로 안 나는데 악몽이라는 느낌은 남아있는 꿈. 나는 너무 아파 죽겠는데 수술 후니 그냥 당연한 통증이라 생각하는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주말 내내 열과 통증으로 고생하자니 차라리 수술 중 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롭던 주말이 지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이 외래 진료를 보러 내려오라고 하셨다. 굴욕 의자에 눕게 한 후 초음파로 여기저기를 보더니 갑자기 일반 침대에 누워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기계로 살펴보더니 이내 표정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른쪽 콩팥 크기가 왼쪽에 비해 비대함이 발견되었다. 아무래도 CT를 찍어봐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응급으로 CT 촬영을 하게 되었다. 링거에 , 피주머니에, 주렁주렁 걸린 것도 많은데 거기다 조영제까지 넣으니 혈관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말 악,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미칠 것처럼 아팠지만 지금 참아야 촬영이 가능하다는 얘기에 눈물을 찔금 흘리며 꾹 참았다. 수신증이 의심된다는 진단 결과에 여기 병원에는 비뇨기 의학과가 없으니 인근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돌아오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지지리 복도 없는 년, 재수 옴 붙은 년.

나는 또 다른 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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