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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Nov 08. 2020

8. 수신증, 또 다른 병을 얻다.

수신증

콩팥에서 요관과 방광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히게 되면 소변의 저류가 발생하며, 이로 인해 막힌 부위 상부의 압력이 상승하여 콩팥의 신우와 신배가 늘어나 있는 상태

 

간단히 말하면 오줌 내려가는 길이 막혀 콩팥이 부었다는 뜻. 자궁을 적출하다 요관을 자를 수도 있다니, 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일단 의사 선생님은 수신증이 의심되니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치료가 가능한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다시 올 거니까 옷도 갈아입을 필요도 없고 얼른 준비해서 다녀오라는. 근데 링거에 피주머니까지 달고 가는 거냐고 물어보니 정 안되면 앰뷸런스를 태워서라도 이동시켜 주겠다고 얘기했다. 참, 세상 살다 보니 별 경험을 다하는구나, 쓴웃음이 나왔다.


일단 이동에 편리성을 위해 링거를 빼고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덕지덕지 붙어있던 반창고를 떼어냈다. 링거를 뺏으니 앰뷸런스 대신 일반 승합차를 이용해도 될 것이라는 얘기에 남편의 부축을 받고 힘겹게 의자에 앉아 40분 정도를 달려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여성병원에서 출발하기 전, 나를 수술해주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지정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소견서를 써주셨다. 이 소견서를 접수처에 내고 외래 진료를 부탁했는데 담당 직원이 난감한 기색을 비추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휴가 다녀오시느라 환자 진료가 많이 밀렸어요. 한참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다른 선생님으로 접수해 드려도 되나요?


여성병원에서 입던 핑크색 환자복에 피주머니를 두 개 차고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나를 보고 많이 급한 환자니 좀 여유 있는 분께 진료를 보게 하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이 기다려도 좋으니 꼭 소견서 적힌 선생님께 진료받고 싶다고 대답했다. 2시간은 기다릴 각오였는데 갑자기 10분도 안 돼서 이름은 불려졌다. 미리 연락을 받으시고 내 차례를 당겨서 해주신 건 같았다.


손목에 에르메스 가방 가격쯤 되는 시계를 차고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한 의사 선생님은 미리 받은 영상자료와 진료 기록, 소견서 등을 토대로 요관이 이렇게 절단됐으니 곧바로 요관 스텐트 시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다. 당장 여기 병원에 입원을 하면 내일 당장 시술을 잡아주겠다고 시원하게 얘기했다. 요관 스텐트를 끼면 수신증이 나아질 거냐는 나의 질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본인이 보기에는 절대 어려운 케이스가 아니라며 자신만 믿으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나는 일단 이 사람을 믿어야 했다.


궁금한 것이 없냐고 얘기하는 의사에게 자궁적출 수술 중 요관 손상이 흔한 사례냐고 물으니 가장 전형적인 수술 후유증의 하나이며, 해외 연구에 의하면 자궁적출 수술 천 명당 1.3명이 요관 손상을 입는다고 했다. 그 천 명 중 하나가 나였던 것. 999명은 멀쩡한 그 수술에서 불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자궁적출, 난소절제, 직장 절제를 받았던 나는 3일이 지나 산부인과가 아닌 비뇨기 의학과에, 그것도 병원을 옮겨 새로운 입원 수속을 밟게 되었다.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1인실을 원했지만 1인실은 혹시 모를 코로나 환자를 위해 남겨 두어야 한다며 간호 통합 병동 4인실로 배정해주었다. 그것도 가장 바깥쪽이라 시끄럽고 어수선한 자리. 싫고 짜증 나는 일에 연속이었다. 남편은 여성병원으로 돌아가 퇴원 수속을 밞고 짐도 챙겨 와야 했기에 당분간 혼자 있어야 했다. 여성병원에서 입고 있었던 핑크색 원피스 환자복 대신 대학병원에서 준 바지로 된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잠시 후 개인 정보를 기록해야 한다며 간호사실로 나를 불렀다.


키, 몸무게, 혈압, 체온,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고 가족 관계, 종교, 임신과 낙태, 출산의 횟수 등을 물었다. 생리주기, 마지막 생리, 지난 병원에서 한 수술 종류, 알레르기 종류. 뭐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질문에 대답을 다 하고는 다시 병실로 돌아가 남편을 기다렸다. 너무 외롭고 서러웠다. 원치 않게 병원을 바꾸는 것도 싫었고 요관 스텐트인지 뭔지, 그걸 받아야 하는 현실이 짜증 났다. 조금 기다리니 퇴원 수속을 마치고 캐리어를 돌돌 끌며 남편이 나타났다. 여성병원에서 발급해준 퇴원비 명세서를 보니 의료 사고 내서 다른 병원에 입원시킨 주제에 참 꼼꼼히 많이도 받아먹었다는 게 보였다. 진짜 미안하지도 않나? 멀쩡한 요관 자르고 콩팥 병신 만들 뻔했으면서 이렇게나 많은 돈을 받아? 아주 이가 갈릴 정도로 꼴 보기 싫고 악담을 퍼붓고 싶을 만큼 원망스러웠다. 돈은 돈대로 들고 몸은 다 망가지고 내 인생을 망쳐버린 의사 선생님이 죽도록 미웠다. 더구나 이 병원은 간호 통합 병동이라 보호자 상주가 안 되어 남편을 집으로 보내야 했다.


옆에 누워계신 할머니는 치매이신지 똥 냄새가 진동했고 기저귀를 갈아주러 온 간호조무사는 온갖 짜증을 내며 병실 안을 시끄럽게 했다. 그리고 내일 당장 시술을 해주겠다며 입원하라고 종용했던 의사에게 내일은 시술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일모레는 가능하도록 노력하겠다는데 장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정말 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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