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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chovy Jan 13. 2021

136. 사흘 만에 짤린 선생님

학원에서 9인 이하 수업이 가능해지면서 시작하지 못할 뻔했던 특강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주 2회 예비 고 1 아이들 수업.

선행이 전혀 안 된 생 초짜 아이들.

예비 고 1 특강으로 국영수과, 4과목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화, 목요일에 특강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화요일에 수업을 하고 목요일에 출근을 하니 월요일에 처음 수업을 시작했던 신입 영어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원장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기에는 좀 민망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진짜. 내가 영어 선생님 새로 뽑느라 고생했잖아.



잉? 뭘 다시 뽑아? 영어 선생님 새로 뽑았던 거 아니었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수업을 하셨던 영어 선생님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첫 수업부터 시작되었는데 엄마들이 그 선생님과 계속 영어 수업을 하느니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당황한 원장은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 반에 영어 선생님께 전화해 해고를 통보했고 킵해 두었던 이력서 사이에서 단 몇 시간 만에 새로운 영어 선생님을 뽑은 것이다.


삼일 만에 해고당한 영어 선생님은 경력 15년에 고등부만 하시던 베테랑이었음에도 아이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해고 통보를 위해 전화통화를 하며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원장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밑에 사람도 보호해주지 못하냐며 울분을 토로하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해주는 원장을 보며 학원을 운영하기 위해 해고 통보를 해야 했던 난감한 입장이 이해되면서도 40대 늙은 남자 선생님이 이렇게 갑자기 해고됐을 때 얼마나 허망하고 속이 상했을까 걱정이 되었다. 강사의 목숨은 하루살이보다는 긴 사흘 살이인 건가. 씁쓸한 맛이 올라왔다.


그래도 과학은 별 말 안 나오더라. 국어도 선생 말이 너무 빠르다고 컴플레인 들어왔어.


내 목숨은 당분간 보장됐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말이 좀 빨라도 학원에 전화해서 불평을 하는 이 엄마들을 어찌하면 좋을지. 돈 낸다고 갑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영어 선생님이 해고되는데 큰 활약을 펼친 학생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리길


내가 엄마한테 그 선생님 단점 다 얘기했잖아. 우리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한테도 연락했는데 다들 비슷한 생각이라고 해서 학원에 전화한 거잖아. ㅎ. 나 때문에 선생님 바뀐 거야.


저 아이 하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선생을 내가 짤랐다며 자랑하는 모습과 그것에 낄낄거리며 동조하는 아이들을 보며 오만정이 떨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니 선생도 아이들에게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 학원에서 떠나신 영어 선생님!

부디 자신에게 걸맞은 좋은 곳에서 승승장구하시길 바랍니다. 여기는 부디 깨끗이 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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