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과목 선생의 비애
나는 국영수가 아닌 과학 선생이다.
요새야 과학이라는 과목이 중요해져서 좀 나아진 편이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새롭게 수업 시간표를 배정받을 때면 국영수 스케줄이 확정된 후 남는 시간을 배정받았었다. (이건 내가 다닌 종합학원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곳은 또 다른 시스템이 있겠지.)
주 5일 수업을 하는 학원이면 영어나 수학은 최소 6시간 이상, 국어는 4시간 이상, 과학은 고작 2시간이었다. 국영수 수업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배정받다 보니 수업 내내 농담 한 마디도 아닌 한 단어도 뱉지 못할 정도로 빡세게 수업을 해야 했다. 또한 국영수 선생님들이 학 학년 수업을 맡을 때 과학 담당인 나는 여러 학년, 여러 학교 학생을 맡아야 하니 일은 고되고 표시는 안 나고, 참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다 더해져서 시험 결과가 나올 때면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공개적으로 비판이나 독설을 듣기도 하고 각종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매번 운 좋게도 그런 비판이나 독설을 피하던 내게 드디어 운명의 그 날이 찾아왔다.
공포의 전체회의 시간, 60명이 넘는 선생들이 앉은 강의실. 마이크를 잡은 원장과 원감은 각 과목별 평균을 얘기하다가 드디어 나를 타깃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2학년 oo중 과학 평균이 너무 낮아. 당신 무능하다고 소문났어. 나니까 당신 써주는 거야.”
내가 맡은 반 12개 중 딱 1반, 그것도 엄청 망한 것도 아니고 좀 안 나온 거였다. 솔직히 눈물이 날만큼 억울했다. 나머지 11개 잘 나온 건 당연한 거고 하나 안 나오니 이 개망신을 주나?
그땐 나도 어렸지. 12년 전이니까. 그리고 미숙한 선생이기도 했다. 그래 인정 인정.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때, 영어 담당 선생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저런 얘기 듣고 난 창피해서 절대 못 다녀. ㅎ”
그 순간 창피함보단 오기가 불타올랐다. 그래 내가 반드시 보여준다. 너네들 두고 봐. 어?
그렇게 제대로 말아먹은 시험 후 2개월이 지나 다시 시험 대비 기간이 시작됐고 난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일을 했다. 아니 악에 바쳐서 독기를 뿜어냈다. 옆을 돌아볼 겨를도 밥을 먹을 여유도 없이 진짜 최선을 다 했다. 아이들을 쥐어짜고 수시로 보강을 불러대며 노력한 결과, 간절히 원하던 최고의 성적을 만들 수 있었고 학원 내 인기투표에서도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 (그 전에도 인기투표에서 항상 상위 랭킹이었지만!)
나는 이 결과를 만든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장과 원감, 이 두 부부는 어이가 없어했고 이제야 당신을 인정해주려는데 왜 이러냐며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냐고 물었다.
“네.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 그 학원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