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학원가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

by anchovy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블랙리스트.


학원가에도 '블랙리스트'라는 것은 있다. 모 대통령처럼 사람 하나를 매장시키고 손 발을 끊어버리는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지금처럼 sns가 발달되지 않았던 10여 년 전에도 인터넷 커뮤니티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기피 강사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었다. 내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면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하려면 자기 말을 들으라는 협박조에 얘기를 들은 적도 있으니 블랙리스트는 분명 존재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강사들 사이에서도 블랙리스트라고 불릴만한 학원 평가 커뮤니티가 있다. 물론 이 커뮤니티에 운영 취지가 오로지 블랙리스트를 알리는 목적은 아니지만 강사의 편의를 도모하다 보니 학원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실리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이 페이 미지급하는 학원에 대해 알리는 것이었는데 어떤 선생님께서는 학원 측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온라인 상에서 자신이 당한 일에 대해 정보를 노출했다는 점이 고소의 이유가 되다니, 참 씁쓸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다른 선생님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음에도 커뮤니티에 숨어 있던 학원 스파이에 의해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강사가 아닌 원장이 이 커뮤니티에 몰래 가입해서 염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원장과 선생 사이에서만이 아닌, 강사들 사이에서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내가 경험했던 일이 있었는데 경기도 일산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 어떤 남자 선생님이 회식 중에 동료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내용이 올려진 적이 있다. 그 이후 그 선생님은 그 지역에서 퇴출되었고 조금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문만 듣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일산에 살고 있어서 일산 지역 커뮤니티와 서울 지역 커뮤니티 모두 가입되어 있었는데 학원 회식 시간에 그 커뮤니티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성희롱했던 남자 강사가 어디서 일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우리 학원에 있으면 소름 끼치겠다고 농담처럼 웃고 떠들기까지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산 지역 커뮤니티 관리자와 오프라인 스터디 모임 때문에 채팅을 하게 되었는데 그 성희롱했다던 남자 강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강사가 내가 일하는 서울 지역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사실과 과목 등에 대해 얘기에 대해 듣고 뭔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ㅇㅇㅇ 선생님은 아니지요?"라고 물었는데, 헉! 그 퇴출 선생님이 바로 나와 일하고 있는 남자 사회 선생님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동료 여자 선생님께 "비싸게 굴지 말라고. 얼마 주면 나랑 할래?"라는 역겨운 얘기를 했다는 그 분이 내 동료라고!!!!


뭔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기분이었다. 진짜 이 분이 성희롱을 한 건지 한 사람만의 얘기로 속단할 수는 없으니 막무가내로 의심할 수는 없지만 꺼림칙한 느낌은 결코 지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이 선생님은 일산 지역의 소문이 학원 원장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물론 내가 얘기한 것은 아니고 원장끼리의 모임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결국 해고 조치를 받게 되었다.


나는 어떤 강사로 평가되고 있을까? 누군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비난받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9. 기술 가정 가르치는 과학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