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시험을 잘 봐도 그만두는 이유

난 식은 밥이 되었지.

by anchovy

여기저기서 취업이 힘들다, 경기가 좋지 않다... 이런 말들이 쏟아진다. 학원가는 불패신화라고들 하지만 학령인구가 줄고 경기도 나빠지면서 사교육비에 부담을 느끼게 되니 학원도 예전만 못하다는 분위기이다. 이렇다보니 학원이나 과외를 급작스럽게 그만두거나 바꾸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학원을 경영하는 원장이나 개인적으로 수업을 하는 선생님들이 힘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최근 수업을 그만둔 학생이 있는데 그 이유가 좀 특별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처음 이 학생을 만났을 때부터 특이한 아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보통에 18살짜리 남학생의 말투나 행동이 아닌 산전수전공중전을 다 겪은 중년 같은 느낌이랄까? 또래들이 풍기는 깨방정도 전혀 없고 암튼 뭔가 신기한 아이였다.


집에는 늘 혼자있는 아이라 엄마랑 길게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니 현재 하고 있는 사교육은 수학 뿐이었고 과학 성적이 너무 안 나와 어머니께서 수소문 끝에 나를 찾으셨다고 했다. 그럼 다른 과목은 잘 나오는 편이냐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참 재미있었다.


글쎄요. 그건 개인적인 내용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정말 저렇게 얘기했다. ㅎ 좀 웃겼지만 뭐 창피할 수도 있으니 저러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후 총 7번에 수업을 했고 중간고사를 치뤄 모든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시험지 좀 보여달라는 말에 물화생지 4과목에 시험지를 보여주는데 모두 90점대였다. 예상보다 좋은 점수라 다행이라는 말을 하니


이게 잘 본 건가요?


음. 이 반응은 뭐지 싶어 그럼 그 전에도 이 정도 점수를 받았냐고 했더니 그 전에는 60점대였다고 한다. ^^ 근데 이 녀석에 다음 말이 아주 기가 막혔다.


이 결과가 선생님 때문인지, 우연히 이 점수가 나온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오늘까지만 수업하려고요.


잉? 뭐라고? 이건 당최 뭔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물어보니 이번 결과를 통해 본인의 잠재력을 알았기 때문에 혼자 해보겠다는 것이다.


아. 그러셨어요. 그래. 30점을, 그것도 4과목 점수를 올려줬는데 그게 선생님 덕이 아니라 너에 숨겨진 능력이었다는거구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데 더 웃긴건 엄마는 민망해서 얘기 못하니 수업을 그만한다는 걸 아이보고 하라고 했다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이 굴욕감이란 글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 어떤 단어로도 묘사할 수가 없달까? 근데 생각해보면 나는 사교육을 하는 사람이니 효용 가치가 있을 때까지만 쓰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너무 생소한 이유에 당황한 걸지도.


아가야. 너에 숨겨진 능력을 찾아서 다행이구나. 앞으로도 그 능력 썩히지 말고 잘 활용하렴.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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