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세탁기 소위 백색가전이라는 제품의 상품기획을 했었고, 지금은 마케팅을 하고 있다.
상품기획이라는 업무는 고객들의 취향이나 생활습관을 파악하여, 기존에 있던 냉장고나 세탁기를 얼마나 더 사용 편리하게 구조를 바꿀 것인지, 좀 더 큰 용량의 제품이 필요할지 고민하는 직업니다. 물론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일도 한다. 말 그대로 세상에 태어날 제품의 첫 시작이 여기서 시작된다.
반대로 마케팅은,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태어나기 직전의 혹은 막 태어난 제품이 성공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제품의 좋은 특징을 부각하고, 이 제품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제품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만든다. 물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이다.
나는 그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와 동료들은 가끔 일을 육아의 과정에 비유하기도 하고, 반대로 육아를 회사 업무에 비유하기도 한다. 출산한 동료에게 'NPI의 성공적인 출시를 축하한다"라고, 가정사를 회사일에 비유하는 건 꽤나 우울하긴 하지만 말이다.
종종 이런 일에 종사하다 보면, 가끔 영업을 하는 회사 임원들로부터 한 소리 듣기도 한다.
"너네들은 제품을 출시하기만 하면 끝이지만, 이를 키워나가는 건 영업이야. 너네들은 그 과정이 관심도 없지?"
50%는 맞고, 30%는 틀린 것 같다. 그럼 나머지 20%는? 그냥 그런 말을 듣기 싫다는 감정.
'나를 포함 우리 모두 이 회사에서 한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외침 정도.
자기가 기획한 제품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챙기고, 응원하는데 좀 소홀할 때도 있지만.
그리고 육아 "아이가 태어나면 잘할 것처럼 하더니 결국은..."
"나도 나의 아이가 성장하는데 무관심 할리가 없잖아! 일이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그래"
왜 나는 육아를 하는데, 사회라는 변명을 할까?
논쟁 돌리기
꼭 나의 불성실 때문에 "일"에 핑계를 돌리는 것은 아니다.그보다 우리 사회, 특히 직장 사회에 만연하는 깊은 폭력성에 돌리고 싶다.
직장 폭력이라고 하면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실제 무력이나 여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성희롱 또는 glass ceiling도 있지만, 남성을 포괄해 한국사회 혹은 직장에서 괴롭히는 것은 상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 또는 언어폭력.
"더럽고 치사해도 너 마흔 넘었는데 갈 데도 없잖아. 내가 시키는 일을 안 하고는 버틸 수 없을 걸"
외벌이 아빠들이 더 이런 마음을 느끼는 것 같지만 마음의 강도를 측정할 길이 없으니,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는 육아를 회피하는 좋은 변명거리 혹은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일"로 가사의 소흘함에 변명을 두기 싫었고, 가장의 무게를 빌미 삼아 무리한 일, 가정에 소홀하도록 하는 직장 내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태생이 반골인지라...)
그리고 2020년.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소위 학부모라는 어마어마한 대장정의 스타트 선에 서게 되었다. 많은 직장 여성들이 맞닥뜨린다는 큰 고비에 배우자를 대신해 내가 과감히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물론 이 것만으로 휴직의 결심을 굳힌 건 아니지만, 굳이 여기에 담고 싶지는 않은 그러저러한 사정들이다.
어느 날 회의 시간,
나 A 차장: "육아휴직을 쓰겠습니다."
동료 B 차장: "팀장님, 안 그래도 사람 모자란데 육아휴직으로 자리가 비면 어떡하라는 거죠?"
"A차장을 팀에서 빼버리고 딴 사람 받으면 안 돼요?"
동료 C 차장: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죠. 저는 휴직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팀장: "... ..."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그게 그렇게 조직에 문제 되는 일인가?남자의 육아휴직은 일하기 싫어서? 쉬려고? 이건 너무 하잖아!
아무도 왜 내가 육아휴직을 하려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열심히 육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나는 B 차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c 차장도.
이해라기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금방 수긍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할 일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자신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화가 난 것이고 결국 그는 그의 가족을 생각한 것이다. c 차장도 결국 이도저도 못하고 현실에 막혀있는 자신의 처지를 보며 나를 응원한 것은 아닐까?
그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은 나를 읽으려 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을 읽어야 한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는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또다시 화점 돌리기
부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육아과정에서, 특히 아이가 취학 전이라면, 부딪히는 순간은 저녁 식사 후 아니면 일요일 아침 즈음일 것 같다. 지독하게 못된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받거나, 말 험한 옆팀 선임과의 힘겨루기 마라톤 회의라도 하고 온 날은 이상하게도 마누라도 회사에서 비슷한 피로감을 안고 오는 경우가 많다.
결국 기폭제는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 하나, 혹은 아무 데나 벗어둔 옷. 집안일을 왜 안 하냐, 퇴근하고 오면 집 정리부터 할 생각은 안 하느냐...'파박'하고 싸움의 불길이 퍼진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토요일 내내 집에 있으면 엉망이 되는 법, 아무것도 안 한 파트너를 향해 일요일 아침이 되면 한 번 더 파박!
길지 않은 결혼과 육아 생활이긴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뻔한 이야기지만 부부도 "내가 한 육아"만 생각한다
의외로 육아에 대한 생각, 육아 방식에 대해 부부간에 대화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방식대로 방치 또는 방임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 되어 있어야 하는 일만 생각한다. 내가 당장에 한 밥상 차리기, 세탁하기, 걸레질 하기. "자신의 한 일"과 "자신의 해야 할 일"과 그 피로감만을 마음에 둔다. 그리고 "상대방이 하지 않은 것"에만 초점을 둔다. "그 일을 안 했다"만을 바라볼 뿐, "왜 못했을까"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은 아주 찰나만 생각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만나지 않은 시간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다면 난장판이 된 집안 상황에도 그렇게 분노의 역류가 치밀지는 않는다.
"오늘 세 시간도 넘게 회의를 했는데 아무것도 정리가 안됐어"
"그 XX 상무가 오늘도 또 이상한 업무 지시를 해서 점심도 못 먹고 일하다 퇴근했어."
이런 말을 하면 마누라님도 대개 화를 억누르거나, 좀 더 정중하게 "쉬었다가 빨래 좀 돌려줘"라고 한다.자기도 여차 저차 한 회사일이 있었는데 힘들었다는 등 오늘 우리 모두 컨디션이 별로라는 것을 공유하면서로에게 배려 혹은 눈치를 보며 다소 평온하게 지내게 된다.
대개의 세상 싸움은 일부 악의가 아니면, 몰이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서로 부부이고, 같은 아이의 엄마이고 아빠지만 꼭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고, 그동안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지 못하고, 그도 나의 시간을 모르니 그 시간만큼의 몰이해가 쌓여가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우리 품을 떠나 있는 시간이 더 길수록 또 우리는 아이에게, 아이는 또 우리에게 그만큼 오해와 섭섭함이 쌓이겠지.
너무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대화하기를 조금씩 실천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냥 퇴근이 아니라, 집에 갈 때 서로에게 "퇴근했어"하고 한마디 톡을 쓴다거나, 여기에 좀 보태어 "오늘은 좀 힘든 날이었어"라고 살짝 운을 띄워준다거나 말이다. 그건 징징 거림 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싸움을 방지하는 배려이며, 스스로가 직접 나서서 행동하는 자기 방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설명은,
마치 "오늘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A 부서와 회의가 있으니, 지시하신 일은 3시부터 하겠습니다."와 같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동시에 "가사와 육아"가 시차를 두고 잘 돌아갈 것이라는 투명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결국 고객의 마음을 잘 읽는 유능한 마케터처럼, 좋은 육아는 결국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이해와 배려를 하고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설계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시작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