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Branding

세상이 이 아이를 어떻게 보게 할 것인가

by 제성훈

참 무책임한 내용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스스로 어떻게 성장할지가 아닌, 세상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할 것인지 이야기한다면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을 하는 반면, 대한민국은 성적을 통한 줄 서기로 인해 대부분 아이들을 낙오자로 만드는 불행한 교육을 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막 그 불행한 줄 서기의 긴 여정을 맞이하는 우리 아이를 보며 나도 안쓰럽고, 적어도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 세상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라는 담론은, 조금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아이는, 뭔지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남보다 더 잘난 구석은 한 군데쯤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줄 서기 방식으로는 평가가 뒤쳐질지 몰라도 전혀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아이가 아니라는 부모 나름대로의 확고한 믿음에 기인하는 것 같다.

지금의 우리가 이야기하는 자존감이란, "내 아이는 그런 대접을 받을 아이가 아니다."와 같은 의미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면 말이다.


물론 나의 이야기는 자존감이라기보다는 '자존심'에 가깝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쉽게 혼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조차도 가끔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며칠 씩 보내고 있지?', '내가 이런 일 하려고 그렇게 애써 취직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래전 일이라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별로 친하지 않기도 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했던 대학 선배가 있었다. 참 대단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했다. 고시에 합격하고 처음 한 일이 뭔가 사증 같은 것에 직인을 찍는 일이었단다. 말하자면 자신의 가치에 비해 볼품없는 일을 하고 있더라는 것.


꼰대같이 바닥부터 하나씩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건 그저 쓸데없는 자존심에 불과한 것 같다. 정말 꼰대같이 말한다면... 처음 광고라는 것을 시작했을 때 내가 한 일은 아이디어 회의 중 마실 물과 과자를 사다 놓거나 선배들이 난상으로 떠든 내용을 회의록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회의록이란 것은, 이제 광고 콘셉트를 결정하는 위치에 올라갔음에도 아직 쓰고 있지만 말이다.)


어쩜 우리는 하기 싫은 일, 당장은 잘하지 못하는 것들에 '자존감'을 들이대며 피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진정한 자존감이란, 내가 무엇을 못하는지 알고 그 분야에서 훨씬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경외할 수 있고, 심지어 그나마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영역에서조차 더 잘난 사람을 만나더라도 쿨 내 나게 '쳇 하는 수 없지. 이번에는 내가 좀 부족했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이런 마음을 가지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자신도 아직 쿨 내 나게 못하고 있고 (술자리에서 그들의 뒷 담화를 하며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이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있다.) 아마 나의 아버지라도 그 정도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했을 것 같다.


정말 뻔한 이야기지만, 세상은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고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는 없기에, 누군가 나보다 잘하는 이들에게 때로는, 혹은 자주, 의탁하고 반대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줌으로써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패배주의와 자기 합리화일 수 있지만, 소위 경제학적 관점의 상대적 비교 우위와 분업의 원칙에 따라 내가 하는 일을 평가하지 않는다면, 결국 최정점의 위치에 있는 소수의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결코 행복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네, 세상이 변화하는 방향에 맞추어 우리의 아이들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 시대가 오면 디지털 플랫폼을 움직이는 0.1%도 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시스템을 장악하고 부를 다 가져갈 것이란 무시무시한 말을 떠들어댄다. 정말 그렇지도 모르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는 나의 아이들을 일단 이 레이스에 몰아넣어야 하는 것일까?


그보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든, 그 속에 본인의 위치가 무엇이든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 않는 정신력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말하자면,

잘하는 이에게 박수 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

그저 멍하니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은 치열하게 하되 그 결과에는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

끊임없이 노력하되 정상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더 올라갈 길이 남아있다는 긍정의 마인드가 있는 사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의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겠다는 건, 그런 욕심은 부모로서 충분히 내도 되는 것 아닐까?


1. 천천히 자신만의 목표와 속도로 걸어가기

지금 당장 주변의 속도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목표와 타임라인으로 움직이는 것.

참 지당하게도 맞는 말이지만,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부모의 지지가 필요하다. 너무 늦거나 뒤쳐진다고 부모조차 느끼고 휩쓸린다면 결코 자기 페이스로 갈 수 없을 것 같다.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으로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초등학교 2학년 처조카를 보고 있으면 벌써 나의 아이는 패배자가 되고 말지만, 내가 세운 이 아이의 올해 이정표는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렵거나 재미없지 않다.'라고 느끼는 것, 이 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인 것이다.


2.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사실 유치원 졸업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졸업 영상에는 원아 한 명 한 명의 사진이 나오며, 누구는 분위기 메이커, 누구는 독서왕 등등 칭찬들이 적혀 있었는데 내 아이의 사진과 함께 등장한 한 마디는 바로 '배려의 아이콘'이었다.


자식 자랑 좀 하자면, 나의 첫째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에 잘 귀 기울이고, 상대가 원하는 놀이를 같이 해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집에서 엄마 아빠에게 내는 짜증과 막무가내식 행동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반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바람직하게 첫 단추를 끼우는 것 같다. 물론 개중에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배신자도 있겠지만.


3. 철학으로 자신만의 가치 체계 세우기

이건 당장의 실천 과제라기보다는 중장기 목표이다. 소위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적 소양, 남의 생각을 포용할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가치체계를 확고하지만 유연하게 쌓아가기 위해서는 철학을 중심으로 한 생각의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를 배우기는 조금 어리니 나중에 가르치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이고, 주위를 챙기면서 갈 수 있는 사람. 이 정도면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변하든 퍽이나 멋진 사람으로 포지션 될 수 있고, 이 정도면 크게 낙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해지기 전까지 부모라는 방파제가 든든하게 막아주어야 하는 것. 그 길을 다짐하기 위해 이 글을 지금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는 내가 좋아하는 세 구절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다음 구절이다.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대강 번역하자면, "인간은 지지 않는다. 파괴될지 언정 지지는 않는다." 뭐 이 정도 될 것이다.


지지 않는 인간으로 나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 그 길을 지지 않고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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