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수학을 좋아한다.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단계이다 보니 더하기나 뺄셈, 구구단 정도에 불과하다.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선행학습으로 진도를 더 뺀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아이가 학습지 중에서는 수학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아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티브이에서 본 만화 영화 속 세상을 나름대로 재구성하거나 책 속 세상을 다시 그려내고 그림을 그리며 혼잣말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 아이는 내성적이다. 그래서 수학이나 미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밖으로 나서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지도 않는다. 상점이라도 들어가면 조용히 내 옷을 끌어당기거나 귀를 가까이 대 달라고 해서 자신이 사고 싶은 것을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혹시 나도 모르게 농친 뭔가가 이런 성향을 만든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런 사건은 분명히 있었다. 딱히 사건은 아니지만.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뛰어노는 타입은 아니었고 만 세 살 때에도 계단을 두 손 두발로 기어 오르내리는지라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다." "넘어질까 봐 그런가 보다. 지 몸을 굉장히 아낀다." "조심성 많은 건 애비를 닮았네"라며 넘기고 말았다. 삼 년 전 어느 날, 한쪽 눈이 심하게 돌아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약시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나는 앞에서는 짐짓 알아듣는 척하면서, 진료실을 나서며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약시가 무엇인지. 쉽게 말해 사물의 거리에 따라 눈이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이 아이의 한쪽 눈은 그 기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심하다가도 교정을 하면 나아지고 정상인에 가깝게 된다고 한다. "그래 몹쓸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평생을 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 지금부터 안경을 쓰고 다녀야 하는 정도인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병원 밖 계단 난간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엉거주춤 하나씩 내려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약시여서 계단 높이가 가늠이 안된 것인데, 이걸 '조심성이 많은 아이'로 치부했던 것이다.
내 아이 행동 원인을 자신에 빗대어 섣부르게 단정 지은 부모의 오류를 범하고 만 것.
그렇게 첫째는 다섯 살 때부터 안경을 쓰고 있고, 아홉 살 때까지 정상 시력으로 돌아와야 한다는데 아직 반 조금 넘게 회복된 상태이며,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계단을 내려갈 때는 아빠인 나에게 꼬옥 붙잡아 달라고 손을 내민다. '모든 게 유전자로 인해 결정된다'는 우생학을 혐오하는 나인데, 내 새끼의 '조심성'을 그저 "나를 빼닮았네"라는 문장으로 끝내 버린 셈이다.
그것이 유전적 원인이든, 자신의 타고난 환경 또는 약시의 육체적 특징에 기인했든 내 아이는 쉽게 나서기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을 때'하는 타입으로 크고 있다. 놀이터의 놀이기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만 탄다. 나의 배우자나 부모님들은 가끔은 아이에게 앞에 나서라고 다그친다. 하면서 배우는 것이고, 실수하면서 나아지는 것이라고. 소극적인 성격이 아예 자리 잡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가지만 난 좀 다르게 하고있다.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 조용히 남들이 듣지 못하게 물어보기.
하기 싫다고 하면 강요하지 않지만 한 두 번쯤 시간을 두고 다시 물어보기
마지막에는 '잘 못할까 봐 걱정이 돼?'라고 물어보기
'그렇다'라고 하면 '잘 못해도 괜찮은데, 아빠랑 같이 둘이서 해볼까?'라고 말하기.
이 방법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면 대체로 자신 없어하는 일도 시도해보긴 한다. 물론 남이 보지않는 곳에서, 아빠인 나와 혹은 엄마와 둘이서만.
"그래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면 될 거야. 요샌 선행학습이 필수인데, 이런 것도 선행학습이지." 과감한 시행착오가 약이 아닌 사람도 있으니까.
실수를 두려워하는 성격이 되면 어떡하나 걱정도 들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울타리가 되어주면, 실수를 해도 비웃지 않을 내 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남 앞에 창피를 당하기 전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을 안다면, 그걸 먼저 나와 연습한다면, 잘할 수 있는 일이 어긋났을 땐 "이런! 실수를 하고 말았네. 하지만 원래 잘하는 일이니까 다음에 잘하면 돼.", 반대로 "원래 잘 못하는 일이니 이 정도만 했어도 나쁘진 않은 결과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도 섣부르게 단정 짓는 부모의 낙관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