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셔닝, 나는 어떤 아빠이고자 정한 적이 없다.

왜 남자의 육아는 때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까?

by 제성훈

10월 28일 일요일, 가을 소나기

육아휴직 결심 60일 전, 그리고 지금으로부터는 80일 전쯤.


일기를 쓰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첫째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출산 일기 비슷한 것을 쓰긴 했지만 태어난 순간부터는 그만두었다. 둘째가 생겼을 때도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맘먹고 뭔가를 써 내려갈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둘째가 크면 이 사실을 알고 꽤나 실망할 것 같다.


굳이 지금이 토요일임을 밝히는 것은 주말 독박 육아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가족이 함께하는 그 주말 말이다. 사기업에 다니는 일반 직장인인 나와 달리, 언론사에 다니는 마누라님은 일요일에 출근을 한다. 매 주는 아니고 한 주는 휴식, 그다음 주는 출근, 또 그다음 주는 출근 + 야간 근무. 세상에 어떤 일이 언제 생길지 모르니 저녁 7시에 내일자 신문 초판을 만들어 놓고 당직을 서다 새로운 뉴스가 생기면 급하게 갈아 끼우는 식이다.


솔직히 결혼 초기에는 이런 근무 패턴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고, 오히려 좋기도 했다. 유부남의 신분이었음에도 일요일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책을 본다거나 고급지게 전시회 같은 것도 다니고 가벼운 운동을 하러 갈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생활환경 속에서 살던 두 사람이 한 장소에 같이 부대끼다 보면 이런저런 부딪히는 것이 많기 마련인데, 나만의 시간은 생활의 숨통을 트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주 중에 하루를 쉬는 아내도 친구들을 만나거나, 평일 한낮에 홀로 삼청동길을 거닐거나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상황일 뿐...


아내가 육아휴직 중일 때에도 너무 늦지 않게 퇴근하고, 회식 자리도 적당히 빠지면서 혼자 육아를 다 뒤집어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육아를 위해 부부가 함께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면, 설령 가끔 한쪽이 더 많은 일을 할 때가 있더라도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둘째 아이를 위한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난 첫 일요일부터였다. 벌써 삼 년이나 더 지난 이야기지만.


아들 둘과 나만 집에 있으리란 상상은 솔직히 결혼 후에도 한동안 해보지 않았다. 네 살에 아직 말이 서툴러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듣기 힘든 첫째. 이제 막 돌이 지나 말도 못 알아듣고, 시작한 걸음마에 재미가 들어 아무거나 만지고 다니는 둘째를 하루 종일 혼자서 봐야 한다? 솔직히 그 첫날은 어땠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잔뜩 들어간 긴장감과 날카롭게 선 신경에 시간의 흐름도 놓쳤을 것이다.


당연히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닐 엄두도 내지 못해 몇 개월 동안 일요일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엄청나게 활동적이지 않지만, 집안에 있으면 아픈 것 같은(?) 혹 아플 것 같이 답답해하는 나로서는 정말 끔찍했고, 빨리 아이들이 자라기만을 바라고, 특히나 평일이 되어 출근을 했으면 싶었다.

'애를 볼래?', '밭을 맬래?' 하면 밭을 매러 간다는 어른들 말씀 틀린 게 없다.
그 때의 기분은 그러했다.


지금은 여덟 살과 다섯 살, 큰 아이 여섯 살 때부터는 삼부자가 함께 드라이브를 하거나 키즈카페에 가기도 한다. 가끔은 아이들만 키즈카페에 넣고 룰루랄라 쇼핑을 하기도 한다. (난 마케터니까 시장의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는 대의명분으로 ~)


그런데, 사람이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딴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왜 나만 독박 육아를 하는가이다. (많은 엄마들이 나의 이런 반응에 분노하겠지만.)

둘이 같이 쉬는 토요일을 제외하면 나는 일요일에, 아내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평일 중 하루를 쉰다. 물론 마누라님의 복직부터 나의 육아휴직을 앞둔 지금까지, 우리 부부의 휴일 외에는 장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신다.


내가 독박 육아라고 하는 이유는 일요일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쉬기 때문이다. 즉 나는 아내가 출근한 순간부터 퇴근까지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이고, 평일에 쉬는 아내는 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각부터 귀가 때까지 혼자 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아빠! 놀자'라고 하는 첫째와, 아직도 말이 서툴어 맘에 내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집어던지는 둘째를 하루 동안 대면하다 보면 역시 뭐든 평범한 것이 최고지,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기자 마누라를 두어 이런 독박 육아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얌전히 아빠 말을 들을 리 없는 아이들과 상대하다 보면, 평일에 혼자 커피 브레이크를 가질 아내가 때론 몹시 미워지게 된다.


그런 나의 육아 피로도는 저녁 7시쯤 절정에 다다른다. 하루 종일 같이 놀고, 말을 들어주고, 식탐 없는 아이들에게 두 번째 끼니 (점심과 저녁)를 억지로 떠먹이고 나면 탈진해 버린다. 특히 곧 아내가 퇴근하여 집에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좀 더 쉬었다가 같이 하자, 아님 좀 부탁을 하자는 마음으로 매번 마지막 긴장의 끈을 놓고 집은 어질러진 채 혼자 TV를 본다. (아이들은 그새 내 스마트폰으로 너튜브를 감상한다.)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었는데 당신은 이렇게 애들을 방치하면 어떡해?"
"육아휴직을 한다는데 내가 믿고 맡길 수 있겠어?"


그럼 모두가 예상한 바와 같이 '나는 그럼 하루 종일 집에서 논 줄 알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 번은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너무 심하게 화가 나서 '일을 당장 그만두라', '나도 평범한 주말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말하는 순간 아차 싶었는데, 역시나 아내의 눈에는 서러움, 분노, '너란 놈도 별 수 없는 놈이구나'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나도 아침마다 얼마나 힘든지 알아?


새벽같이 나서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기자들의 아침은 좀 늦게 시작한다. 세상에 돌아가는 일을 관찰하고 또 이를 정리하여 내보내다 보니, 한 박자 좀 느리기 일을 시작하고 또 그만큼 늦게 일을 마친다. 달리 말하면,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는 일은 나의 배우자 몫이다.


엄마들에게 오는 준비물, 행사 알림장, 공원에 단체로 가는 것도 매번 동의서를 써서 보내줘야 하고, 유치원비, 학원 교육비 꼬박꼬박 챙겨서 송금하고, 철마다 돌아오는 상담 시간에 한 시간 가까이 선생님과 통화하거나 휴가를 내 방문을 한다. 물론 어떤 학원을 어떠한 스케줄로 보낼지 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나 상담은 으레 그래야 한다 생각하는지 아이 엄마에게만 연락이 간다. 가끔은 아이의 친구들, 그리고 그 엄마들과 모여 키즈카페나 방방존을 다녀오기도 한다. 물론 그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한다.


그저 열심히 아이들을 보기만 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아이들의 관계 형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직장 동료 누구에게도 '휴직'이라는 단어를 뱉지 않았었다. 마음의 결심이 선 후에야 가장 최근에, 그것도 초등생 입학 자녀를 위해 휴직한 동료에게 그 생활이 어떠했는지 물었다.

"솔직히 엄마들하고 네트워크 쌓으려고 휴직했지"

"이런저런 정보도 얻고 내 아이도 잘 챙겨달라고 하려면 약 좀 뿌려야 하고."

"근데 차장님은 남자라 한계가 많을 텐데."

아차 싶었다. 내가 의미 없는 휴직을 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라도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마누라님은 이미 당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다 소진했는데. 어찌 되었던 지금의 유치원 엄마들과 네트워크가 있는 건 내 배우자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얻는 건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빠만이 할 수 있는 육아는 무엇일까?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겁이 난다. 난 좋은 아빠이고, 좋은 아빠일 수 있을까? 그저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있기만 할 뿐 무엇을 특별히 더 해주는 것도 없다.


무식하게 혹은 무모하게 일을 도전할 때도 있고 그럴 때 잘 풀리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날아온 각종 알림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열심히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육아에서도 '열심히만 한다'고 인정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


내 아이의 육아에서 어떠한 부분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마치 제품을 판매할 때처럼 마케터의 실력을 발휘해야겠다. 수많은 제품 중에서 유독 이 제품은 무엇이 뛰어난지 혹은 뛰어나 보이도록 할 것인지 포지셔닝 (Postioning) 시키는 일, 마치 그 일처럼 바로 나 자신의 역할을 정해야 한다.

- 오로지 아이들과 나와의 관계에만 올인하여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인가.

- 스타강사 못지않게 내 아이의 학업을 도와주는 러닝 메이트가 될 것인가.

- 과감히 학부모 네트워크에 빠져들 것인가.


아빠로서 나의 포지셔닝을 정리해야 할 타이밍.


아직 휴직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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