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 이름엔 평등은 없지만

내가 찾은, 아빠가 해야 하는 일 첫 번째. 편견 없애기

by 제성훈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에 '이름'이라는 것이 붙는 순간 소위 '평등'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만다. 네이밍, 즉 이름 짓기는 사람이나 상품을 수많은 다른 것들과 구분 짓기 위해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거나 듣는 순간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특징이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가령 운동을 잘한다거나,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수학을 잘하거나. 그래서인지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이를 알게 되면 도전을 받는 느낌이 든다. 진짜가 복제품을 만나 싸우는 그런 SF 영화의 한 대목처럼. 특히나 그 사람이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나보다 좀 더 뛰어나다면 마음속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응당 그렇게 말해야 하지만, 이 차이는 개성의 표시, 혹은 공동체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역할 분담을 하기 위한 구분자이다. 즉 옳고 그르거나 뛰어남과 열등함의 잣대는 아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장 좋아하는 노래, 가장 친한 친구 등 순서 정하기를 하며, 이름은 어느새 하나의 순위 표시가 되어버리고 만다. (가령 수학을 제일 잘하는 건 OO라던지.) 그나마 그것이 '이름'일 때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지만 보통 명사가 되는 순간 일종의 차별이 되어 버린다.


고유 명사는 대체로 차이를 만들지만, 보통 명사는 때론 차별을 만든다.


시작은 일 년 전쯤으로 거슬러간다. 첫째 아이가 어느 날인가 붉은 계열의 옷을 입지 않겠다고 했다. "그건 여자가 입는 색이라고." 늙어서 붉은색 옷을 즐기는 나한테 배운건 아닐 테고. 하지만 그땐 "남자라면 핑크지!" 하고 웃으며 넘기고 말았었다.


그리고 또 몇 개월 지나 겨울왕국의 두 번째 돌풍이 시작될 때 아이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 했다. "그건 여자들이 보는 영화야." 유치원 친구들이 그랬단다. 1) 성 역할에 대한 관념이 상당 부분 자리 잡고 있었고, 2) 또래 집단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과연 또래가 다였을까? 무심코 우리가 하는 행동은 없을까?

"남자는 밥을 잘 먹는다고"

"남자는 징징거리지 않아. 원하는걸 똑바로 말하라고."

반면, 우리 어머니는 내 어릴적 이런 남자다움을 강제하진 않으셨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리고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항상 이름으로만 불렀다.


말인즉 나를 한 명의 사람인 '제성훈'으로만 대하고, 남과 여를 구분하는 가부장 사회에서의 '아들'로 대접하지 않았다. (일 년에 제사를 열 번이나 지내는 집안의 장남인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나는 내가 아빠가 될 때까지, 내 어머니가 나를 이름으로만 불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쇼핑센터를 다니다 보니 많은 엄마들이 혹은 아빠들이 특별한 의도 없이 당신의 자녀를 '아들~'이라 부르고, 또 상점 점원들도 우리 아이에게 "아들, 이 옷 마음에 들지 않니?"라며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들 둘의 아빠여서 그 단어만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딸~"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게임을 못하지?"

TV로 너튜브를 보고 있던 아들이 질문했다. (어린아이에게 너튜브를 보여준 것 자체가 잘못한 일이지만) 우리 아이는 요새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게임 중계에 빠져있고 특히 남매 콘셉트로 오빠 캐릭터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구독하고 있다.

" 탁O이 잘하는 거고 쪼O이 못하는 거지. 남자라서 잘하고 여자라서 못하는 거 아니야."

아이는 잘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하긴 웬만한 남자들은 게임에 미쳐있고 그중에도 잘 나가는 이들이 (꼭 실력만은 아니지만) 저런 프로그램을 하고 있으니 남자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에게 남자가 원래 이 바닥에 많으니, 남자가 더 잘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남녀의 실력이 아니라 모든 변수를 배제했을 때 남자의 모수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남자가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순히 확률의 문제라고 이해시키기 어렵다. 그렇다고 남자와 여자가 원래 잘하는 일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성 격차를 인정하는 발언이기에 이 마저도 바람직하지 않다.


난 "원래 다른 거야"라는 말이 불편하다. 출산과 같이 신체적, 유전적 상이점에서 오는 다름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누가 봐도 개인기나 노력에 의해 이룰 수 있는 일인데 지금의 현상이 그러하다고 하여, 어느 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원래 잘한다는 일반화와 확대 해석은 듣기 싫다. 늦자라 어렸을 적 남자답다는 일을 잘한적 없는 것도 이유이고, 남녀의 균등한 기회에 대해 못이 박히도록 주창하는 마누라에 교육된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보통 명사이든, 고유 명사이든
"OO는 원래 OO가 잘하게 되어 있는 거야."라는 말은 존재해서는 안된다.

내 아이들의 미래는 좀 더 열린 가능성이 있는 사회여야 한다는 이기적인 바람 때문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 원칙을 정하고 아이를 대하기로 했다.

첫 번째, 아이가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순간 바로 대응한다.

아이는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말에 차별적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잡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거나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아이가 생각하는 집단의 차이는 사실 개인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알려준다.

아이가 관찰한 혹은 들은 몇 가지 사례로 내리는 결론이 위험하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가끔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라도 주변의 정반대 사례를 들어 '항상 그런 건 아니다'라고 알려준다. "유 O 고모는 게임을 잘해. 유 O 고모가 이 게임을 한다면 탁O만큼 할 수 있을걸?"과 같이.


마지막으로, 편견이 이야기하는 '우위 집단에 속한 이'가 바로 잡는다.

참 슬픈 이야기지만 "A보다 B가 더 잘한다"라고 할 때 A가 "아니야, B가 항상 잘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면 변명으로 들리거나 오히려 측은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아직 영악하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겐 편견의 약자가 항변하기보다는 편견 속 강자가 강하게 부정하는 쪽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탁O은 열심히 연습을 해서 그런 거지, 남자여서 잘하는 것은 아니야." "너도 알듯이 아빠는 게임을 잘 못하잖아."라고. 차이는 개인에 존재하지만, 집단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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