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인생을 토해낼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배워야 할 일이라 생각지도 않는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지만, 딴에는 스스로 영법을 익히는 이도 있겠지만, 글을 쓰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문장이 앞뒤가 안 맞으면 쓰고 지우길 반복하면 되고, 그래도 막히면 부끄럼 없이 대할 수 있는 막역한 이에게 구조를 요청해도 된다. 맞춤법은? 그건 인공지능이 잘 잡아주기도 하고, 막상 남의 글을 읽는 이는 그깟 철자보다는 내용을 중시하기 마련이다. '어! 오타다.'하고 보물찾기 쪽지를 찾은 듯 기뻐할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건 그림을 그리듯 말의 색을 이해하는 작업일 수도 있다. 캔버스 위에 혹은 중이 위에 물감이 어떻게 스며드는지 이해하듯, 내가 '온라인'이라는 종이 위에 글을 올려놓을 때 같은 단어도 어떻게 변화하는지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차마 붓을 대지 못하는 것처럼 글쓰기의 첫 단어를 누르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지 모른다. 나 자신도 그러하니까.
그럼에도 일단 써 내려가면 그만이라는 느낌이 있다.
'까이것, 망치면 그만이지 뭐.'
'내가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것도 아닌데.'하고 아주 무책임하게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아마도, 그렇지 않고서는 써 내려가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깊어질 때 누구처럼 음악으로 마음을 풀지 못한다면, 더욱이 음치라 스스로의 목소리에 고막이 어지러워진다면 말이다. 또 누구처럼 운동을 잘한다면 시원하게 땀 한번 흘리고 털어버리겠지만, 시절이 시절이고 날씨도 날씨인지라 맘껏 뛰지도 못한다.
글쓰기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다만 글을 써 내려가 마음이 조금이라도 훌변해진다면, 실컷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싶은데 하필 오늘 만날 사람이 없다면 그렇게 글을 쓰거나 읽어 내려갔으면 좋겠다. 글의 힘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글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창조의 작업이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겠지만 말이다.
글은 무례하게도 나를 창조주의 반열에 올려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게임 속 세상이 나를 현실에서 데려가듯, 글이라는 세계도 참으로 손쉽게, 그리고 철저하게 나를 별도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렇게 가끔 나를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오늘 한 연예인의 결단에 대한 기사를 접하였다.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치 한 다리 건너 알고 지내던 사람의 소식을 접하듯 착잡하게 느껴지는 뉴스였다. 겉으로 보아오던 것과 달리 속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지만, 누구나 그렇듯 제삼자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견뎌보지'라는 마음을 놓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메모에는 무엇을 적어 놓았을지 모르겠지만, 그 끝을 담담히 써 내려간 글이 마지막이 아닌 시작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글로써 세상에 작별의 인사를 할 것이 아니라 글로써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면, 그렇게 글로써 잠시라도 도망갈 수 있었다면,
그렇게 별거 아닌 글자 속에 좀 숨어있었더라면 하고 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글의 힘을 아는 분들이라면, 가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비바람이 칠 때 자음을 지붕 삼고, 모음을 뗏목 삼아 그 어려운 물줄기를 잘 헤쳐나가시길,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러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