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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Mar 17. 2022

너도 나도 우리의 속도대로 가면 돼

조바심은 접어두고 한결같음은 잊지 말기를. 

엄마, 내가 아까 **이가 하는 말 바로 알아듣지 못해서 기분 상했어?

아니~ 왜 기분이 상해. 모를 수도 있지. 넌?

나는 내가 못 알아들어줘서 좀 속상했어. 정확히 모르기도 했고, 말이 너무 빠르기도 했어.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지. 그리고 과학 좀 모르면 어때. 각자 좋아하는 게 있는 거지. 

내가 천천히 말하라고 하면 **이 기분 나쁠까 봐. 

그랬구나. 근데 왜 속상해해. 모를 수도 있지. 다 잘 알 수는 없잖아~

응, 지금 찾아보면 돼. 내일은 알면 되지 뭐. 그렇지? 다음에 **이가 이야기할 땐 대답해주고 싶어. 







유치원을 마치고 약속한 대로 꽃집에 갔다. 아이는 프리지어나 유채꽃처럼 노란 꽃을 사고 싶노라고 월요일부터 이야기했다. 안타깝게도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아파트 앞 꽃집은 문을 열지 않았고, 세 번째 헛걸음을 한 아이는 좀 김이 빠지는 듯, "노란 꽃을 사기도 전에 봄이 사라지겠네"하며 아쉬워했다. 너무 속상해 한터라 평소에 잘 사주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동갑내기를 만났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같이 다니지는 않았으나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고, 엄마도 섬세하고 부드럽고 아이도 긍정적인 터라 아파트 유일의 친구가 된 녀석이었다. 서로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함께 올라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가 과학이야기를 한다. 또래보다 똑똑하고 사고력이 좋은 녀석이라 꽤나 유창히 설명을 하기에 난 그저 귀여워보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는 잘 알아듣지 못했나 보다. 친구가 먼저 내리고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길, 친구가 말했던 것이 자신이 아는 것이 맞는지를 되묻는다. 맞는데 왜 아까 모른다고 대답했냐 물었더니 친구가 빠르게 말해서 다른 말을 하는 줄 알았단다. 친구는 살짝 말 속도가 빠른 편이고, 우리 아이는 말의 속도가 느린 편이라 듣기 평가가 어려웠나 보다. 다음에는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하지 그러냐는 내 말에, 친구가 마음이 상할까 봐 말하지 않겠다던 아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다음엔 친구가 빨리 말해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공부를 해야겠다며 과학책을 찾는다. 그런 아이의 마음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을 먹고 느긋하게 그림책을 보고 있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문을 여니 아까 그 꼬마 박사님이 두 손으로 꽃다발을 들고 가지런히 서서 우리 아이에게 꽃을 선물하러 왔다고 한다. 자신이 사고 싶었던 노란 꽃을 받은 녀석도 너무 기뻐하고, 기뻐하는 우리 아이를 보며 선물을 한 녀석도 신이 났다. "이 꽃 맞아? 사고 싶었던 꽃이 이거 맞아?" 신이 나서 묻는다. 우리 아이도 신이 나 평소보다 두배는 빠르게 "응응, 너무 고마워"를 외치며 꽃을 받아 들었다. 그런 두 녀석이 너무 이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선물 받은 꽃을 화병에 꽂아 식탁에 얹어두니 꽃향기가 온 집에 가득하다. 아이는 꽃의 향기를 맡으며 "엄마, **이 마음이 너무 고맙다. 졸릴 텐데 일부러 꽃을 들고 올라오고, 그렇지." 한다. 나도 일부러 늦은 밤 꽂을 들고 올라와준 **이도, **엄마도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어 자꾸만 꽃을 바라보게 되었다. 







문득 오늘 우리 아이 마음을 생각해본다. 친구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친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친구가 말하는 것을 잘 몰랐던 게 나름 속이 상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것으로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책을 찾아보았다. 다음에 친구가 그 이야기를 하면 잘 알아들어주리라며 공부를 한다. 나였으면 친구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게 미안해서 속이 상했을지, 내가 모른 게 속이 상했을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겠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늘, 나의 생각보다 한 발 앞서 성장해온 것 같다. 아이는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지 않는데 난 걱정이나 사랑이라는 핑계로 아이에게 꽤 많은 제한과 굴레를 씌워온 것은 아닐까. 양보하고 배려하는 아이가 되라고 키우면서, 정작 우리 아이가 양보받지 못하는 순간, 배려받지 못하는 순간은 몰라온 것은 아닐까. 


아이는 늘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큰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연습을 하고 공부를 해왔고, 자연스럽게 양보하고 기다리며 참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왔다. 누가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 늘 한곁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면서도 혹시 엄마가 마음이 상했을까, 친구가 마음이 상할까를 걱정하는 고운 아이. 


잠자리에 누워 '잠 잘 오는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꾸준하고 묵묵히, 하고 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멋있는 거라고, 다른 사람을 너무 많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과학도 잘 못해도 되고, 수학이나 영어도 잘 못해도 되니 행복한 사람으로만 자라면 된다고. 그 말을 듣던 너는 고개를 끄덕이며 늘 응원해줘서 고맙다고 말을 한다. 그제야 나는 불현듯 나의 육아 방침이 떠오르고 미안해진다. 다른 사람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대로 살아도 된다고 아이에게 수없이 말해주었는데. 


아이가 자신의 속도대로 묵묵히 쌓아온 아이의 역사들을 둘러보며 내 마음을 다진다. 부족한 엄마 곁에서 자신의 속도대로 커온 딸은, 늘 자신의 속도대로 자람이 중요한 것을 잊지 않은 듯하다. 내일 아침이 오면, 너와 나 모두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면 된다고, 불안해하지 말고 그저 한결같이 우리의 길을 걸으면 된다고 꼭 말해주어야지. 


오늘도 아이가 나를 키우는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지 고민이 되는, 그러면서도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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